생태기행- 강화 교동도를 다녀오다.

2013년 10월 7일 | 생태기행

<화개산에서 바라본 교동도 평야>

 10월 5일 (토) 오전7시에 만나서 가을 생태기행으로 강화교동도를 회원과 비회원 13분이 다녀왔습니다.
강화 교동도는 우리나라에서 14번째로 큰 섬입니다.
교동도는 92,8%가 벼농사를 짓고 있으며 전체면적의 35,5%에 해당하는 농경지에서 생산되는 년 간16만톤의
교동도 쌀은 품질에서우수하며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고 고가에 판내되고 있습니다.
교동도가 넓은 농경지를 갖게 된것은 대규모 간척 사업을 통해서라고 합니다.
고려시대 몽골군에 대항하기 위해 강화도로 천도 했을때 매립하기 시작하였으며 고려 말 조선시대에 걸쳐군량미 확보차원에서 많은 매립이 이루어 졌으며 일제 시대에도 대규모 간척 사업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화개산 정상에서 >

목은 이색의 화개산 시

 

바다 속 화개산은 하늘에 닿았는데
산 위에 옛 사당은 언제 지었는지 모르겠네
제사한 후 한 잔 마시고 이따금 북쪽을 바라보니
부소산 빛이 더욱 푸르구나

 

*부소산 : 부시미산을 의미 합니다.

 

이색 [, 1328~1396]

 고려 말의 문신·학자. 삼은()의 한 사람이다. 정방 폐지, 3년상을 제도화하고, 
김구용·정몽주 등과 강론, 성리학 발전에 공헌했다. 
우왕의 사부였다. 
위화도 회군 후 창()을 즉위시켜 이성계를 억제하려 했다. 
조선 태조가 한산백에 책봉했으나 사양했다.

<창후리 선착장 어시장 모습>
우리나라 새우젓이 70%가 강화도에서 생산된다고 합니다.
각 어시장 가게마다 방금 잡아온 새우를 고르고 있었습니다.
손길이 바쁩니다.
가게마다 자신의 새우잡이 배가 있다고 합니다.

처음 만나 서로 인사 나눠고 교동 사랑회 김흥수 회원님을 모시고 강화 역사 문화 탐방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간곳은 조선시대 부터 많은 사람들을 치유했다는 찜질방입니다.
사용방법은 나무를 사용하여 찜질방안으로 나무를 넣어 달구는 것입니다.
다 달구면 재를 꺼내고 난후 밑에 나무를 깔고 거죽때기를 뒤집어 쓰고 있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예전의 장터가 그대로 남아 있는 교동 시장 골목…
채송화가 정겹습니다.
옛날 다방모습..
주변을 아기 자기하고 꾸며 놓았습니다.

화개사에서 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성찬이와 성훈이가 엄마 품에 안겨 있는모습이 정답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오는이 없고 가는이 없는 화개사는 …
방문하는 자의 오롯한 시간입니다.

교동향교의 모습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
공자님의 초상화가 유일하게 원본이 있는 곳입니다.
청개구리가 길(돌)에 납잡하게 붙어 있네요.
하마터면 밟고 지나갈뻔 했습니다.
청개구리는 돌이 온몸을 최대한 낮추고 있으면 자기가 아무로 못 볼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교동향교에 갔을때 사람을 만날수가 없었지만
행여 청개구리밟힐까봐 옆으로 옮겨 주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동도 가는 길에 현수막이 걸려있네요.
10/5 ‘전등사 가을 음악회’ 현수막에
안치환, 한영애, 이루마가 출연한다고 …
눈이 번쩍 뜨이고…
강화에서 1박 2일은 하루로 바뀌면서 오는길에 전등사 ‘가을음악회’ 보고 가기로 했습니다.
‘전등사 가을 음악회는 몇년 전부터 유명하다고 합니다.
한영애,안치환, 이루마등 출연을 했습니다.

 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쉬는 교동도….
고려 왕조가 39년을 몽골과 항쟁을 했던 섬
개성이 바로 눈 앞에 보입니다.
산에 나무가 없는 북한땅이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관방의 요충지, 중요한 중간 기착지
연산군의 유배지 , 왕족들의 유배지,
시각 장애인들을 위해서 한글 점자를 만든 분
세상의 빛이 된 사람- 박두성이 태어난곳 

 생태 기행에 참여 해 주신 모든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