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일생

2016년 8월 9일 | 성명서/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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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이작도 앞바다에는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보호되고 있는 풀등이 있다. 풀치라고도 부르는 풀등은 썰물에 드러나고 밀물에 잠기는 모래섬이다. 이 풀등에서는 금빛 모래와 파도가 만나서 생기는, 날마다 다른 모습의 다양한 물결무늬 연흔(Ripple)이 일품이다. 그런 풀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조사결과 3년마다 면적이 20%씩 감소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풀등 감소의 첫 번째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바닷모래 채취다.

모래의 또 다른 이름은 골재다. 골재(骨材)의 사전적 의미는 ‘하천, 산림, 공유수면 등의 암석 모래 또는 자갈로서 건설공사의 기초재료로 쓰이는 것들’이다. 인천 앞바다에서 매년 600만㎥~1천만㎥(바다모래 1㎥는 약 1.5톤)의 바다모래를 퍼냈다. 그동안 퍼낸 바다모래는 공식적으로 2억5천만㎥가 넘는다. 이는 서울에서부터 부산까지 경부고속도로(약 400㎞) 위에 가로 25미터, 높이 25미터의 모래성을 쌓을 수 있는 양이다. 집계되지 않은 모래까지 하면 최소 10억톤의 모래가 골재용으로 인천 앞바다에서 육지로 옮겨졌을 것이라 알만한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바닷모래는 빨대로 바지선 위로 빨아올려진 후 경인아라뱃길 인천터미널 인근 등의 해사부두로 옮겨진다. 레미콘에서 시멘트와 섞인 바닷모래가 향하는 곳은 대부분 아파트 건설현장이다. 해양보호구역 풀등과 그 주변에서 퍼낸 모래들은 인천과 경기, 서울의 아파트가 되었다. 송도와 영종, 청라신도시, 검단지구, 가정지구 등 빼곡하게 들어차는 아파트 숲에서 모래들은 콘크리트 속 화석이 되고 있다. 낮은 주택은 흙벽돌도 가능하지만 고층 아파트들에서는 고강도 콘크리트를 위해 모래 사용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건설업계는 이야기한다.

노후하거나 수명이 다한 건물들뿐 아니라 도시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개발이익을 위해 쓸만한 건물을, 멀쩡한 도시를 밀어버리고 새로 건설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인천 구월동과 신현동의 나지막한 ‘헌’ 아파트가 있던 자리엔 고층의 ‘새’ 아파트가 빼곡하게 올라갔다. 최첨단, 미래도시, 명품도시의 루원시티를 만들겠다며 가정동에서는 멀쩡한 마을과 건물들을 밀어버렸다. ‘헌’ 아파트와 멀쩡했던 건물의 콘크리트는 어디로 갔을까?

인천 서구에는 세계 최대 쓰레기 매립장이 있다. 수도권 쓰레기 매립장으로 반입되는 쓰레기의 절반가량은 철거된 건물 즉 건설폐기물이다. 매립장 반입료가 오르면서 건설폐기물들은 쓰레기매립장 옆 순환골재업체들로 우선 보내진다. 잘게 부서진 건설폐기물은 부력과 풍력, 자력 등을 이용해 재활용과 매립용, 소각용으로 선별된다. 지난해 인천에서 이런 과정을 거쳐 재활용된 순환토사가 287만톤이다. 순환토사 등 순환골재 사용량은 꾸준하게 늘고 있지만 여전히 도로 복토재 정도로만 사용된다.

지구의 용암 마그마가 굳어진 바위는 수 만년 세월을 거쳐 모래가 되었다. 그 모래들이 지금은 100년도 못 견디는 콘크리트 덩어리가 되었다가 급기야는 쓰레기 취급 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인간의 시간보다 훨씬 긴 세월 인천경기만 생명들의 터전이었고 그 자체로 세계적 자연유산이었다.  / 장정구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장

 

* 이 글은 2016년 8월 9일자 경기일보 인천논단에 실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