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번째 녹색순례:동백꽃 다시 핀다 후기]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이어진 이 길을 걸어 나아가다.

1998년부터 시작되어 올해로 21번째를 맞이한 녹색순례는 제주 4.3 70주년인 제주의 자연과 4.3 유적지를 걸었습니다.

녹색순례는 일주일에서 열흘 동안 자신의 두 발로 직접 길을 걸으며 환경현장과 그 곳의 역사를 알아보며 지난 삶의 길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삶과 활동의 방향에 대해 고민합니다.

제주의 4.3 평화공원을 시작으로 선흘리, 북촌 너븐숭이, 제2공항예정지, 가시마을, 강정마을, 송악산과 한라산을 지나 관덕정을 마지막으로 하는 일정으로 4월 3일~4월 12일까지 9박 10일간의 순례가 진행되었습니다.

 

< 70년이 지나도 과거가 아닌 현재를 말하는 제주4.3 >

 

제주를 다니면서 발길 닫는 곳곳이 4.3의 현장이었고 아픔이 느껴지는 장소였습니다. 제주의 자연 속에, 마을에, 심지어 관광지로 알려진 곳에서도 4.3의 흔적이 보였습니다.

제주 4.3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 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 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독선거, 단독정부를 반대하여 1948년 4월 3일 무장대가 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입니다.

 

  • 사려니 숲길과 동백동산

제주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한 번은 꼭 가본다는 사려니 숲길은 빽빽한 삼나무가 울창하게 자리 잡아 아름다운 산책로로 유명합니다.

이 아름다운 삼나무 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4.3길 속 이덕구 산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덕구 산전은 무장대사령부인 이덕구 부대가 주둔하던 곳입니다. 이덕구 산전 주변으로 4.3 당시에 토벌대를 피해 은신하던 봉개리 주민들의 은신처도 곳곳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이덕구 산전 터와 제주4.3의 희생자를 기리는 글귀

 

3일째 되는 날의 밤은 선흘1리 경로당에서 지냈습니다. 선흘1리의 삼촌(제주에서 ‘삼촌’이란 친척 및 가까운 이웃에게 사용하는 명칭으로 남녀 관계없이 손윗사람을 지칭한다.)들에게 제주 방언으로 된 노래인 ‘고찌 글라(같이 가요)’를 불러드리고, 볍씨학교 학생들의 공연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밤을 보냈습니다.

4일째 되는 날 아침, 선흘1리 마을을 떠나 동백동산으로 향했습니다. 람사르 보존습지로 지정된 먼물깍 습지와 동백나무 천연림이 있는 동백동산은 사계절 푸른 활엽수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백동산 안을 걷다보면 도틀굴을 발견하게 된다. 도틀굴은 ‘초토화 작전’(해안선을 기준으로 5km 밖에 위치한 주민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대응하겠다는 작전)을 피해 산으로, 동굴로 피신했다가 희생된 주민이 목숨을 거둔 곳입니다. 이 당시 200여명의 선흘리 주민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제주 4.3 당시에 많은 제주 주민들은 죽음의 그림자를 피해 제주의 곶(숲)에 숨어 생활했습니다. 현재 제주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인 훼손되지 않은 자연환경 속에 잊혀 지지 않고, 잊을 수 없는 제주 4.3의 기억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 북촌 너븐숭이와 가시마을

북촌 너븐숭이는 북촌리 마을주민 300여 명이 희생된 서러움이 남아 있는 장소입니다.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 의 배경이 된 곳이 북촌리입니다. 1949년 1월 17일, 북촌리 가옥 400여 채가 불에 타고, 두려움에 떨던 주민들은 2연대 3대대에 의해 북촌국민학교에 강제적으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북촌초등학교 인근의 너븐숭이와 당팟에 끌려가 사살되었습니다.

△북촌 너븐숭이 4.3기념관 인근의 애기무덤

 

가시마을은 1948년에는 약 360여 가호가 모여 사는 큰 마을이었지만, 4.3 당시에 초토화 작전과 소개령으로 많은 마을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가시마을의 4.3길을 따라 고야동산, 한씨방묘, 구석물당, 마두릿동산 등을 4.3을 겪은 마을 삼촌(어르신)의 설명과 함께 걸었습니다. 가시마을 4.3길 곳곳을 걸으며 설명해주시던 삼촌은, 당시에 어렸던 당신은 키가 조금이라도 더 컸으면 지금 이렇게 우리를(녹색순례를 온 활동가와 회원들을) 못 만났을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씀하셨습니다.

 

< 지키기 위해 끝낼 수 없다 >

 

2015년 11월 국토부와 제주도는 ‘공항 인프라 확충 사전타당성 검토보고서’를 근거로 제주 성산읍 지역을 제 2공항 계획 부지로 선정했습니다. 이에 제주제2공항 성산읍반대대책위원회에서 제주 제 2공항계획을 반대하는 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관광객 수가 증가했고, 제주의 관광 활성화와 증가하는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함이 제주 제 2공항(이하 제2공항)의 주된 계획의 이유입니다.

하지만 제2공항 계획이 확정되면, 계획된 부지에 위치한 4개의 마을 주민과 예정 활주로 상의 동·식물은 사는 곳을 잃게 됩니다.

△제주 제 2공항 예정지

 

순례일정 중 방문한 강정마을도 해군기지에 맞서 생명평화운동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2007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이 결정되었습니다. 강정마을 주민들의 동의 없이 진행된 해군기지 건설에 마을주민들은 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회(이하 해군기지대책위)를 꾸려 10년 동안 투쟁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강정마을 인근 바다는 연산호가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30분 안에 10여개의 법적 보호종을 확인할 수 있는 바다였습니다. 제주 송악산과 서귀포 해역은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연산호 군락을 볼 수 있기에 학술적인 가치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해군기지가 건설된 후 아름답던 연산호 군락은 훼손되어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연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중요한 신당(神堂)과 신목(神木)이 파손되면서 지역문화와 역사도 상처를 입었습니다.

8일째 되는 날, 생명평화 100배와 해군기지 반대에 맞선 시위 및 퍼포먼스를 강정마을 주민들, 해군기지대책위와 함께 하면서 10년째 투쟁을 이어오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느끼고, 생각해봤습니다.

△강정마을 생명평화운동의 내용을 엿볼 수 있는 현수막(위),  해군기지반대 시위와 퍼포먼스(아래)

 

제주 4.3은 무고하게 희생당한 주민들, 피해자·가해자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 부딪히는 이해관계, 연좌제로 인해 억울함과 고통을 묻은 채 살아왔던 사람들, 역사적으로 명명(命名)되지 못한 채 남아있는 사건으로 지금도 끝나지 않은 우리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제주의 제 2공항 예정지 계획이 가시화되면 훼손되고 고통받을 수 많은 생명들, 강정마을의 해군기지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생명들.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역사 위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같이 서 있고, 같이 이어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글 : 인천녹색연합 신을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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