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의 냄새- 11월 울림 후기

2013년 11월 5일 | 울림

비가 내렸다.

날씨도 쌀쌀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얼굴들에서는 봄처럼 환한 웃음꽃이 피어났다. 

개들의 무조건적인 사랑.

몇 분만 잠시 자리를 비우고 문에 들어서도, 엄청 혼을 내고 잠시 후에 다시 만나도,

반갑다고 꼬리를 살살 흔드는 개들의 환영은

인간들의 차가워진 마음에 불을 지피기에 충분하다는 말들이 차에서 오고가고….

우리는 문수산 산림욕장에 들어섰다.

발을 내딛자 화~~악 콧속으로 스미는 너만의 냄새.

나무의 냄새, 돌의 냄새, 숲의 냄새, 자연의 냄새, 생명의 냄새, 사랑의 냄새.

 

식물이 내뿜는 향기는 나도 살고, 너도 살고 함께 살 수 있는데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적인 향기는 인간만 좋자고 만든 것.

결국 그 향기는 인간에게도 해가 된다는 말씀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노자는 인간의 자발성과 자율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자연이 갖고 있는 자율성과 자발성은 의식없이 자연스럽게 저절로 타고난다.

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의식하면서 산다. 

의식은 자기주장이고 자기를 알아달라는 생각이며 이것은 곧 분별과 차별로 이어진다.  

자연은 선과 악이 따로 없다. 단풍잎을 보며 선하다고 하나, 악하다고 하나,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노자는 이것을 유무상생이라 했고, 부처는 중도의 삶이라 말했다.

분별과 차별이 없는 삶인 것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이 살아가는 생명살이는 사실, 생명 본연의 모습인 유무상생의 모습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만큼 의미 없는 일은 없다.

옳다고 생각하여 발을 내딛는 순간 나머지는 옳지 않게 된다.

자연은 자기를 의식하지 않고, 일부러 자기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자연스럽게 자기를 드러내도 다른 것들과 조화롭다.

노란 단풍잎으로 자기를 드러내도 얼마나 조화로운가.

나무를 보면 주장하지 않고 주장하는, 드러내지 않고 드러내는

생명의 본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생명의 본모습이 왜곡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인간 본연의 참 생명 모습이 가려진 모습 중 하나가 에고다.

에고는 분별과 차별을 통해 자기를 드러내려고 한다.

자기를 내세우려고 한다.

타인과 갈등이 생길 때는 생명의 왜곡된 모습인 에고가 시키는 일이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모든 모습이 에고가 생각하고 시키는 결과물인 것이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반생명적인 에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정자에서 비 듣는 소리를 들으며 시를 읽었다.

도종환 님의 ‘가을 사랑’, 김용택 님의 ‘가을’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은 날카롭게 반응하는 자녀들을 보며 그것도 생명의 한 현상이라 생각해야 한다.

그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사춘기 아이들이 날카롭게 반응하는 것은 나를 알아달라는 현상이다.

그것은 당연한 생명의 현상인 것이다.

밥 먹으면 나오는 방귀를 몹쓸짓이라 하지 않듯이 사춘기 현상들도 몹쓸짓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단풍나무가 멀리서 보면 노란색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온갖 색이 다 있다. 

 문수산을 등 뒤에 남기고 돌아서니 비가 그쳤다.

초지님께서 해주신 말씀들을 저마다 가슴에 새기며 비내리는 가을에 흠뻑 취하다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