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둘레길] 3코스원적산둘레길_도심의 오아시스 / 시민 여가와 건강 활동의 거점

2021년 12월 2일 | 회원의날

인천녹색연합_회원모임_인천둘레길 3코스

도심의 오아시스 / 시민 여가와 건강 활동의 거점

 

                                                   글과 사진 – 박수택(회원, 생태환경평론가)

 

성급하게 겨울 문턱을 넘어갔던 날씨가 머리 긁적이며 슬쩍 다시 늦가을로 돌아왔다. 추위 걱정을 덜어낸 덕분에 길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11월25일 목요일 오전 10시, 약속 장소 ‘세일고등학교’ 버스 정류장에 모인 회원 시민은 안내인까지 10명, 체온 점검과 몸 풀기 준비 체조 후 세일고등학교 옆 도로 변 산길로 올라섰다.

원적산에 오르기는 어렵지 않다. 인천 부평구, 계양구, 서구 사이에 끼어 있으면서 큰 도로가 둘레를 지나는 까닭에 버스 노선도 여럿이다. 교통이 편리하고 산세도 부드러워 맘씨 좋은 이웃같은 산이다. 그런데… 깊지 않은 골에 거의 수직으로 돌을 쌓은 축대 옹벽이 중턱에서 아래로 내달린다. 비가 많이 내릴 때 물이 빠르게 아래로 빠지면서 흘러내리는 토사가 중간중간 모이도록 한 사방(沙防)시설이다. 개구리 두꺼비 뱀 같은 야생 동물이 들어가면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의 절벽이기도 하다. 자연에 인공 시설을 넣을 때 생태를 배려하는 자세가 아쉽다.

세일고등학교를 지나니 원적산공원이 왼쪽으로 나온다. 평일 오전인데도 아스팔트 포장도로 옆 너른 주차장에 차가 제법 들어찼다. 원적산공원은 조경이 아름답고 얼마 전까지 단풍이 보기 좋았다고 일행 가운데 한 분이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따로 날 잡아서 와 봐야겠다 생각하며 공원 북쪽 아담하게 솟은 장수산을 향해 가로수 길을 걷는다.

원적산과 장수산 사이 야트막한 계곡으로 물길이 보인다. 세월천이다. 지금 걸어온 길 이름도 하천 이름을 따서 세월천로다. 도로 옆 수직 돌 붙임 옹벽에 뚫린 관로는 분명 빗물 빼는 우수관이다. 맑은 날인데도 세월천으로 물이 콸콸 쏟아진다. 거품까지 허옇게 뜨는 걸로 미뤄 근처 주택이나 카페, 음식점에서 쏟아낸 생활오수임에 틀림없다. 인천 둘레길 3코스에 이런 모습이 있다니 실망스럽다. 인천시와 부평구의 하천 행정, 하수도 관리 부서가 현장을 돌아보길 권한다. 둘레길 걷기를 지역 환경 현황 살피는 기회로도 삼을 수 있다.

세월천로를 따라 동쪽으로 방향을 트니 왼쪽으로 고층 아파트 신축 현장이 우뚝 눈에 들어온다.  회갈색 콘크리트 더미가 장수산 발치에 바짝 붙어 줄지어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중이다. 전에는 서민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라 골목골목 아기자기 오밀조밀한 모습이 정겨웠다고 일행 중의 한 분이 말한다. 다 지으면 아파트 입주민들에겐 장수산이 눈앞의 정원처럼 보이겠지만, 아파트 밖 다수 시민들은 병풍같은 콘크리트 고층 건물에 시야가 막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경관 독점’, ‘경관 사유화’는 공평하지 않다.

장수산 등산로 어귀에서 잠시 쉬며 각자 소개와 인사를 나눈다. 일행 중에 원적산공원 조성을 비롯해서 인천시 공원 업무를 담당하다 은퇴한 분도 있어 다들 반겼다. 장수산 둘레길로 가는 오르막길로 접어들었다.

장수산 북쪽 중턱에서 부평 시가지와 천마산, 그 뒤로 멀리 계양산 정상이 보인다. 서쪽은 서구 가정동, 북쪽과 동쪽은 부평구 청천동이다. 동서로 가로지른 경인고속도로 너머는 계양구다. 빼곡한 시가지 사이에 끼어서 원적산, 장수산은 개발 전선의 위태한 비무장지대(DMZ)처럼 보인다. 회색 도시에서 푸르름이 그리운 시민들에겐 소중한 오아시스나 다름없다.

장수산 하늘다리에 이르자 북서쪽으로 멀리 천마산이 나타난다. 그 아래 아파트 단지는 한창 재개발중인 서구 가정동의 루원시티다. 나비를 테마로 한 나비공원이 장수산 서쪽 기슭에 자리한다.

장수산과 원적산을 잇는 구름다리를 건너 다시 원적산 자락으로 들어섰다. 다리 아래로는 세월천로의 고갯마루다. 동쪽으로는 원적산공원, 서쪽으로는 청천공단이 나온다

장수산 – 원적산 북서쪽 기슭으로 깊게 들어선 청천공단엔 중소기업 공장들로 빼곡하다. 과거엔 한센인들이 모여 살며 돼지, 닭을 키웠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한센병에 대해 무지하고 환자들에 대해 편견을 갖고 차별하던 시절이 있었다. 냉대 속에서 고통을 참아가며 꿋꿋하게 살아가던 이들의 가슴 저릿한 사연이 스며있다. 인천 지역사의 일부로 기억할 부분이다. 멀리 서구 가정동 루원시티 재개발 지역의 고층 아파트군이 원적산 능선 위로 솟구쳐 오르고 뒤로 천마산도 압도할 기세다. 저기 원래 낮은 집, 골목 동네 사람들은 또 어디로 갔을까?

겨울로 접어들어서 내년 봄까지 메마른 계절이다. 산불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탐방로 주변 곳곳에 방화수 담은 통이 보인다. 도시 가운데 있기에 누구라도 아무 때나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다. 시민 모두의 공유재산, 모두 함께 아끼고 지킬 일이다.

원적산 정상 원적정으로 가는 길목에 돌탑이 나타난다. 차곡차곡 둥그렇게 쌓아올린 정성과 수고에 고개가 수그러진다. 원적정 앞에 원적산의 지명과 전설, 건립 경위를 담은 안내판이 서 있다. 원래는 천마산, 철마산이라고 부르다가 인천시 지명위원회에서 원적산으로 정했다는 얘기다. 원적산은 한자로 ‘元績山’ 또는 ‘元寂山’이라고 하는데 원래는 ‘怨積(원망할 원, 쌓을 적)山’이라는 얘기도 있다. 옛 기록에 따르면 고려 때에 이어 조선 시대 중종 임금 때에 서해와 김포 한강 사이를 잇는 뱃길을 내려 애를 썼지만 중간에 놓인 원적산과 천마산 사이 바위 고개를 끝내 뚫지 못해 끝내 포기하고 말았다. 그 원통함이 사무쳐서 원적(怨積)산으로 불렀다는 얘기다. 더는 물길 뚫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고개는 ‘안하지고개’가 되고, 발음대로 아나지고개로 부른다는 사연이 있다. 아나지고개는 원적산과 천마산 사이, 계양구 효성동과 부평구 산곡동에서 서구 가정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이른다. 경인고속도로 서인천IC 근처로 보인다(아래 지도 참조). 부평의 굴포천(堀浦川)이 바로 운하를 팔 목적으로 원래 하천에 더해 인공으로 판 물길이다. 인천의 원통고개, 무너미고개 지명도 이때 붙은 것으로 전해온다. 옛 사람들이 포기한 한강-서해 인공 물길을 21세기에 들어와서 결국 다른 경로로 뚫고 만 것이 이명박 정부 시절 경인운하, 일명 ‘아라뱃길’이다. 정작 실어나를 화물도 여객도 경제성도 없는 세금 낭비 토목 사업의 전형임은 다시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원적정에서 간식을 들며 한숨 쉬어간다. 둘레길 걷기에 늘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원적정에 오르면 멀리 인천 풍광이 내다보인다고들 하지만 실제로는 나무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3코스 인증 스탬프 찍는 곳이 원적정 안내 표지판 옆에 있다. 스탬프북을 깊숙이 밀어넣고 스탬프를 꾹 누르면 깨끗하게 찍혀나온다.

원적정에서 서쪽 내리막길은 호젓하다. 낙엽더미가 폭신하다.  낙엽은 이윽고 갈라지고 부서지고 녹아 흩어져 땅으로 돌아간다. 자신을 떨군 나무에게 양분이 되어 새 봄에 새순으로 돋아날 것이다. 사람도 사회에, 남들에게, 보탬이 되지 않으면 낙엽보다 나을 게 없지… 버석버석 낙엽 밟으며 문득 깨닫는다.

아파트 단지와 큰길이 가까워지자 산길에 쓰레기 버리지 말라는 호소와 단속 경고판이 보인다. 경고판만 세울 게 아니라 엄정하게 책임을 물려야 마땅하다. 군대 야간 매복작전 식으로 한번 제대로 지켜서 단속하든지, 화질 좋은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면 어떨까? 단속 영상은 뉴스 소재도 될 수 있다. 자원봉사 시민감시단을 조직할 만하다.

가좌여중 쪽으로 내려와 석곶체육공원을 왼쪽으로 끼고 돌면 공중화장실이 나온다. 노상 주차장과 포장도로로 걷다보면 이내 다시 원적산 석남약수터로 가는 흙길로 접어든다.

서울지하철7호선의 인천 서구 석남역과 부평구 산곡역 사이 구간과 원적산터널이 등산로 주변 지하로 통과한다. 개발하고 이용하는 강도가 높은 만큼 도시 주변 숲은 더욱 세심한 보호가 필요하다. 마른 풀 사이로 어린 무당벌레를 발견했다. 맑게 빛나는 노란색이 예쁘고 귀엽다. 이 겨울 잘 견디고 새 봄에 힘차게 날기를 빈다.

숲 사이로 십자가와 건물이 보인다. 마가의 다락방이라는 기도원이다. 숲 곳곳에 놓인 의자와 비닐 덮개는 야외 기도 자리인 듯하다. 신약성경에 예수께서 밤중이나 새벽에 예루살렘 올리브나무숲(감람산)에서 기도한 대목이 있는 걸 보면 고요한 산숲은 경건의 장소로 어울린다. 여기에도 돌과 시멘트로 싸바른 수직 계단형 사방시설이 들어섰다. 홍수나 산 사태를 이렇게 하면 막을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

숲이 성글어졌다 싶더니 이윽고 찻길(원적로)이 보인다. 자동차 소음이 점점 크게 들린다. 원적산 생태통로는 철마산으로 이어진다. ‘인천 둘레길 제4코스-장고개’는 생태통로에서 시작한다. 터널을 지나니 세일고등학교 버스 정류장, 시작점이 종착점이다. 6.8km 거리를 걸은 시간만 2시간 14분, 평균 시속 3km,  휴식과 설명 시간을 포함하면 전체로 3시간 반 정도다. 3코스 원적산-장수산 둘레길은 대도시 인천의 시가지와 공단, 주거지 사이의 요긴한 쉼터요, 여가와 건강을 위한 활동공간이다. 걸으며 지형과 숲, 새와 곤충도 살펴 보고, 지역의 역사와 지명 유래도 새기고,  때로 환경 관리의 문제점도 살펴보면 그만큼 지역을 더 깊이 알고 이해할 수 있으리라. 걷기 코스는 배움의 교실이며 깨달음의 자리이기도 하다. (*)

* 인천 둘레길 3코스
– 6.9km,  3시간 소요
– 세일고 – 백련사 – 원적산공원 – 장수산하늘다리 – 나비공원인근 – 원적산 장수산 연결다리 – 원적정 – 석남3약수터 – 원적산생태통로 – 세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