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생겨나는 수만 톤의 쓰레기는 다음 날이면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눈앞에서 사라졌으니 잘 처리된 것 같은데,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는 기사는 연일 쏟아집니다. 영화 <문명의 끝에서>는 쓰레기가 파도를 이루는 선별장, 그물에 걸린 새우만큼 하천을 뒤덮은 비닐 쓰레기, 사용 종료를 앞둔 수도권 매립지까지… 쓰레기 문제를 직면할 수 있는 현장을 담았습니다. 녹색연합은 지난 6월, 두 차례(6/18, 6/26)에 걸쳐 제21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경쟁부문 대상을 수장한 <문명의 끝에서>를 함께 보고 수도권 매립지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영화를 보고 현장에 다녀온 시민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눕니다.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새로운 문명의 시작이길
처음에 제목만 들었을 때는 벌써? 문명의 끝이 왔나 했었다.
이 영화를 제작한 임기웅 감독이 오랜 시간 멀리서, 때론 가까이서 작업하는 모습들을 종종 봐왔다. ‘문명의 끝’이란 주제를 가지고 무엇을 담았을까? 호기심을 갖고 영화 속으로 따라 들어갔다.
메캐한 냄새를 풍기며 쓰레기 소각장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숨이 탁! 멎을 것 같은 답답함이 밀려왔다. 우리가 수없이 쓰고 버린 쓰레기들이 묵직한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쓸모 있는 것과 그 곳에서조차도 쓸모없어 버려지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장면이 바뀌어 도시는 철거와 재건축의 전쟁터와 같다. 건물을 철거하면서 발생한 건축 쓰레기들이 마지막 길을 떠나고 그곳에서 재개발의 희망에 꿈을 걸었던 사람들이 기다리다 못해 묵묵히 묵혀온 삶의 터전에서 마치 쓸모 없어져 버려지는 쓰레기들처럼 다시 낯선 곳을 향하는 사람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게 되지만 남들처럼 번듯하게 살아보고픈 아파트의 꿈을 품고 산다. 이루어질 수 없는 허공에 그려놓은 꿈들…
도시는 여전히 개발이라는 이름하에 폭력에 가까운 철거가 진행되고 또 쓸모 없어진 흔적의 산물들은 자신들이 묻힐 곳을 찾아 떠난다. 확정되지 못한 꿈의 계획을 포기할 즈음에야 개발이란 싹이 슬그머니 지상으로 올라온다. 이제 더 이상 찾아갈 곳도 없는 사람들, 내 삶의 꿈과 땀이 고스란히 남아 묵은 장맛 같은 그곳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뿌연 안갯속에 시야는 흐려진다.
수없이 쏟아지고 버려지는 쓰레기들, 그 속에서 실낱같은 삶의 희망을 줍는 사람들, 정들었던 삶의 터전에서 다시 길을 찾아 떠나야 하는 사람들. 마치 도심 속의 유목민이 되어 버린 듯한 광경들이 커다란 선풍기 바람 속으로 흩날리며 떨어지는 비닐 조각들이 겹쳐 보이며 우리네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무엇을 찾고 무엇을 위해 무엇을 얻기 위해 살고 있는가? 지나쳐 가는 장면들 속에 가여운 내가 보인다. 눈물이 난다. 원망도 슬픔도 아닌 그런 눈물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앞으로만 치달리는 세상에서 앞만 보고 달려간 그 끝에서 …
이 세상의 모든 뭇 생명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새로운 문명의 시작이길 …
– 인천녹색연합 문경숙 평생회원
외계인의 발매트가 되기 전에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을.
여러분은 폐지 주우시는 노인을 본 적이 있나요?
저는 아파트 생활 시작한 후론 어르신들을 자주 뵙지 못합니다. 예전에 제가 살던 동네에는 폐지를 주워 병든 남편을 수발하고 혼자 남겨진 손녀를 키우시던 마음 좋은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집에 책과 종이상자가 보이면 할머니 집 앞에 놓아 드리곤 했습니다.
오늘 그 집이 영화에 나왔습니다. 지금은 재개발을 앞두고 모든 집이 비워진 상태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손녀는 다 커서 엄마와 다시 사는 듯합니다. 재개발 공지와 함께 어디론가 떠나버리신 어르신, 재개발이 아니었다면 돌아가시는 길에 조문이라도 하고 왔을 텐데. 어르신의 환한 미소가 그립습니다.
영화 ‘문명의 끝에서’는 제 고향 인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영화를 보는 동안 덤덤하고 씁쓸하면서도 추억이 떠올라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화가 나고 마음이 아프고 걱정도 됩니다. 화가 나는 이유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쓰레기의 양 때문인 것 같고 마음이 아픈 것은 많은 쓰레기로 망가지는 땅, 산, 하천, 바다. 그리고 쓰레기와 석탄, 석유, 천연가스 연료 소각 시 나오는 미세먼지와 분진으로 혼탁해진 공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걱정이 되는 것은 또다시 마계 인천으로 불리는 것은 아닐까.
인천은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될만큼 가치 있는 갯벌을 갖고 있습니다. 그 갯벌은 이제 서울, 경기, 인천 도시의 쓰레기를 품고 오염물질을 품고 포화 될 정도의 이산화탄소를 품고 있습니다.
서울, 경기에 사는 사람들은 알까요? 내가 버린 쓰레기가 어디로 가는지? 아마 여기 인천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잘 모를 거예요. 쓰레기는 불편함이 당장 생기기 전까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닐 테니까요.
평소 쓰레기 문제에 관심은 편입니다. 10여 년 전 미니멀리즘이라는 생활방식을 접하면서 그 관심이 제로웨이스트, 환경활동과 접목되더라고요. 그렇게 친환경, 천연 제품을 생활 속에 들이기도 하고 무겁지만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대유행을 통과하며 넘쳐나는 비닐,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크게 대두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폭증하는 배달 음식 주문, 어디서나 보이는 일회용 비닐장갑-그 즈음 어딜 가도 다 일회용 장갑이 보였어요-매일 버려지는 마스크…. 회수가 안 되는 비닐 쓰레기를 보며 한숨을 쉬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며 ‘쓰덕’(쓰레기 덕후)까지는 아니지만 어느새 쓰레기가 궁금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자연에서 분해되지 못하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습니다. 녹색연합의 활동을 지켜보며 후원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던 차, 제가 궁금한 쓰레기가 주제인 행사가 열린다고 해서 얼른 신청을 했습니다.
<문명의 끝에서>는 보는 내내 집중하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사는 곳이 인천이라 인천 지역의 이야기가 중심인 영화에 점점 빨려들어 갔습니다. 급기야 너무 몰입한 나머지 영화가 끝나고는 조금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폐지를 줍는 노인들의 이야기부터 고물상에서 벌어지는 자원순환의 실제, 재개발의 광풍 속에 나오는 건설폐기물 문제까지. 아, 저 쓰레기는 어디로 가서 얼마나 쌓여있을 것인가!
우리 문명의 소비 끝에 버려지는 물건들의 종착지! 쓰레기 매립지에 가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영화에서 본 심각한 문제들을 내 눈으로 확인하는 시간이란 생각에 저는 다소 비장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여러 이미지에서 본 커다랗게 쌓인 쓰레기 산이 떠올랐고, 그곳을 위험하게 누비는 나의 모습이 상상됐습니다. 옷은 튼튼한 작업복 같은 것을 입어야 하나 고민하면서 도착한 수도권매립지는 제 생각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쓰레기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쓰레기가 하나도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냄새도 없고 위험해 보이는 환경이 없는 공간이 기이하게 느껴졌습니다. 쓰레기를 보러 왔는데, 쓰레기가 없다니! 우리는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한 버스를 타고 편안하게 쓰레기 매립지에 올랐습니다. 이런 견학 코스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습니다.(사람들이 쓰레기를 보러 자주 오는군요!)
쓰레기 문제는 너무나 심각하지만 자고 나면 말끔히 사라지는 덕에 우리는 문제를 잊고 삽니다. 수도권매립지의 모습은 마치 ‘은폐된 진실’ 같기도 했습니다. 쓰레기를 너무나 깨끗하게 잘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쓰레기 산에 조성된 녹지도 그 바로 아래에 쓰레기가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었습니다. 이건 뭐지? 싶은 부조화의 상태가 탐방 초반 저의 마음을 어지럽힌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시 돌이켜 보면 우리의 쓰레기가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매립지의 역사와 규모 또 이후의 문제들에 대해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매립지관리공사는 그 일을 잘해내야 하는 게 맞고요. 만들어진 쓰레기를 잘 처리하는 한 편, 그 심각성을 알리고 쓰레기를 줄이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행사를 준비해 주신 녹색연합 활동가들, 그리고 일정 내내 동행하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신 임기웅 감독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 녹색연합 회원 조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