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천성산 녹색순례–생명의 속도로 가라–를 다녀와서 장정구/ 인천녹색연합 회원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땅의 자연과 온 몸으로 소통하기 위한 길 떠남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녹색순례가 내게는 복잡하고 각박한 현실세계를 벗어나는 하나의 탈출구로 다가왔었다. 태어나서 일주일 이상 집 떠나 자연 속에서 지낸 것은 대학에서 동아리활동의 일환으로 참가했던 목포에서부터 강화도까지 ‘전국대학생 서해안 갯벌탐사’가 처음으로 그 때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갯벌을 돌아보았는데, 300여명 참가자들은 새만금과 시화호 등 현안에 대한 운동성을 강조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서해안 갯벌 탐사와는 규모면에서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적은 인원이었지만 자발적으로 하던 일을 멈추고, 아무것도 이용하지 않고 직접 나의 두발로 자연을 느끼고, 배낭 맨 가슴으로 자연을 사랑하게 된 면에서 이번 녹색순례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5월 18일 –첫날 밤새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구경하며, 얼마 전에 장만한 디지털카메라를 손질하면서 수학여행 전날 같은 설레임에 한 잠도 잘 수가 없었다. 준비물을 확인하고 또 목록을 살펴보는 일을 뒤풀이하는 동안 어느덧 아침 6시, 백운역에서 만난 유종반 순례단 대장님으로부터 ‘하늘에 계신 분께서 순례기간동안에는 비 내림을 유보해주시기로 했다’는 말씀 함께 천성산이 물이 많은 산이라는 기억을 떠올리며 웃었다. 오전 7시 30분쯤 서울 성북동 녹색연합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활동가들이 순례준비로 부산히 움직이고 있었다. 대부분이 여성 활동가라는 사실에 놀라워하는 나보고 잘해보라는 유대장님의 말의 의미를 고민하다보니 오후2시30분 경부고속철도 천성산구간의 북쪽에 해당하는 원효터널공사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맘에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행정구역상으로 울산광역시에 속해 있는 삼동면 금곡리는 산신각과 아름드리 성황나무가 잘 보존되어있는 전형적인 농촌이었다. 13km가 넘는 터널공사로 인한 빈번한 대형덤프트럭의 이동은 길을 온통 상처투성이로 만들어버렸고, 개울은 흙탕으로 질식해가고 있었다. 성황나무 아래서 순례단 출정식을 가진 후 출강리 불당사를 거쳐 덕현마을까지 첫 산행으로 순례를 시작하였다. 발바닥으로는 몇십년 쌓였을 낙엽의 푹신함을, 피부로는 나뭇잎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의 상쾌함을 느끼고, 코로는 흙, 풀과 나무의 내음을 맡으며, 귀로는 바람에 나뭇잎들의 부대끼는 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5월 19,20,21일–천성산의 동쪽, 남쪽 걷기 [img:DSC06112.JPG,align=,width=550,height=413,vspace=0,hspace=0,border=1] 이제 막 모내기를 마친 논에서 들려오는 정겹지만 조금은 시끄러운 개구리소리도 오랜만의 산행으로 밀려오는 잠을 막지는 못했다. 마을회관 앞에서 눈부신 아침햇살 아래, 체조로 하루를 시작하는 순례단의 어깨너머 저 멀리 보이는 개울가의 은사시나무에 걸린 구름에 내가 비로소 고향에 돌아왔음을, 현실세계로부터 멀리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모내기를 하는 할아버지의 구릿빛 얼굴, 산비탈에 일렬로 늘어선 파란색의 공업단지의 건물들, 이 모두를 품에 안고 조용히 미소를 머금고 있는 어머니 천성산. 그런 어머니의 가슴과 옆구리에 인간들은 13km가 넘는 경부고속철도 터널을 뚫고 있다. 어디 그것뿐인가? 터널관리를 위한 1km에 이르는 보조 의 옆구리터널(사갱)을 3개나 뚫고, 각 옆구리터널마다 2km에 가까운 진입도로를 만들고 있다. 과연 KTX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에 주파하면서도 완성된 삶의 여유를 갖지 못하고 더욱 각박해지고 있는 인간의 속도가 한 그루의 나무를 오르기 위해 하루 종일을 보내는 이름도 모르는 애벌레의 속도보다 얼마나 더,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주진마을에서 법기저수지를 거쳐 다람쥐캠프장까지의 천성산 동쪽과 남쪽주변을 걷는 동안 내내 머릿속에서 울리던 ‘생명의 속도’라는 화두가 ‘천성산의 밤’, 지율스님과 함께한 자리에서 어렴풋이나마 정리할 수 있었다. 땅만 쳐다보며 정상으로 향했던 내가 숲 속에서 들려오는 물소리, 새소리와 바람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며 미소 짓는 모습을 갖게 되면서 ‘속도’라는 단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되었다. 5월 22일– 우리 5모둠 순례기간동안 함께 식사를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가깝게 지냈던 모둠원들… 5모듬의 정신적인 어머니로, 항상 어울림과 배려의 마음, 웃는 얼굴로 모듬 구성원을 편하게 대해주신 김혜애 정책실장님, 함께 걷지는 못했지만 지원팀으로 빠른 정보와 양질의 찬거리를 제공해주시고 사회적 합의와 개인의지 사이의 조화에 대해 좋은 말씀을 해주신 광주녹색연합 정호 국장님, 세심한 관찰과 해박한 지식으로 걷는 동안 풀, 나무, 그리고 동물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었던 박정운 국장님, 지하수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제기하면서 천성산 터널의 구체적인 문제점을 짚어준 윤상훈 순례단부대장님, 사진을 찍느라 바쁘게 왔다갔다 하면서도 재치있는 입담으로 모듬에 활기를 불어넣은 홍보팀 박경화 간사님,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가장 자연을 닮은 모습으로 모듬의 살림살이를 맞아준 김효정 간사님, 기획팀과 모듬의 소통을 담당하며 자칫 영성교육으로만 흐를 수 있는 순례분위기의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한 고이지선 간사님, 좋은 설명을 위해 위험한 쇠살모사까지 잡으셨던 애벌레 하정옥님, 순례후반기에 참가했던 작아 읽새 박선희씨와 해맑은 얼굴의 이윤미 간사님, 비록 우리 모듬은 아니었지만 각자의 삶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눈 최만종 간사님, 일천한 나의 카메라 지식에 많은 내공을 쌓아준 이재구 간사님, 꽃무늬반바지가 잘 어울렸던 함은혜 간사님, 바른 생활맨의 모습을 보여주신 최승국처장님, 등 등 순례단 모두 오래도록 함께 하고픈 이들이다. 5월 23일,24일 — 천성산 기슭과 능선 [img:DSC06459.JPG,align=,width=550,height=413,vspace=0,hspace=0,border=1] 순례 6~7일째, 우리는 천성산의 외곽부분을 걸으면서 쌓였던 피로를 화로방에서 풀어버리고 새로운 얼굴들의 활기로 어머니의 깊은 가슴 같은 계곡과 정족산, 천성산, 원효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으로 임도를 따라, 때로는 길 없는 곳을 헤쳐가며 발걸음을 옮겼다. 인간의 마지막 욕망인 무덤, 공원묘지의 거대함과 산 전체를 울긋불긋 수놓은 조화의 물결, 생태계보존지역으로 지정된 무제치늪과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화엄 늪의 펜스와 철망이 우리 안타깝게 했다. 오히려 작은 숲길에서 보이는 작은 풀꽃나무들과 어디에서나 들리는 검은등뻐꾸기의 소리, 오소리 똥굴, 안적암 본 붉은 저녁놀이 날 행복하게 해주었다. 예전부터 밤이슬을 피하기 위해 잠시 머문 나그네에게 베풀었을 곡차를 내어주시는 내원사의 비구니스님의 넉넉함과 마음의 여유로움이 바로 은은한 연꽃 향내이리라. 5월 25, 26일 — 화엄벌, 내원사계곡, 노전암 계곡 조사 [img:DSC06553.JPG,align=,width=550,height=413,vspace=0,hspace=0,border=1] 꼬리치레도롱뇽뿐 아니라 얘들도 천성산에 살고 있다! 애기나리, 은방울꽃, 삿갓나물, 여로, 원추리, 얼레지, 천남성, 은난초, 족도리, 꿩의 다리, 노루귀, 노루발, 현호색, 애기똥풀, 단풍취, 물봉선, 백선, 더덕, 엉겅퀴, 지느러미엉겅퀴, 취나물, 닭의 난초, 골풀, 광대나물, 윤판나물, 떡쑥, 조릿대, 생강나무, 국수나무, 으름덩굴, 서어나무, 찔레, 때죽나무, 산초나무, 개옻나무, 옻나무, 진달래, 산철쭉, 노린재나무, 황백나무, 신갈,떡갈나무, 굴참나무, 머루, 다래, 층층나무, 쪽동백, 오동나무, 물푸레, 쇠물푸레, 주걱댕강나무, 유혈목, 무당개구리, 쇠살모사, 산개구리, 청개구리, 민달팽이, 검은등뻐꾸기, 박새, 까마귀, 꿩, 직박구리, 붉은배새매, 황조롱이, 도롱뇽, 길앞잡이, 강도래, 날도래, 명주잠자리, 주홍하늘소, 털두꺼비하늘소, 말벌, 쌍살벌, 대벌레, 미유기, 파라미 등 조사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계곡물에 탁족을 하면서 눈감고 나의 무지로 내발길에 채이고도 불려지지 못한 뭇생명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5월 27일 –마지막날 돌아오는 길에 들린 또 하나의 무분별한 개발의 현장인 낙동강하구의 철새도래지인 을숙도를 관통하는 명지대교건설현장. 자연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부드러운 리더쉽으로 순례기간동안 모두에게 사랑을 한 몸에 받으신 유종반 순례대장님의 눈물은 굉음과 함께 온몸에 수십 개의 전봇대보다 훨씬 더 크고 쇠기둥이 박히는 을숙도의 눈물로 우리 가슴을 후벼 팠다. [img:DSC06134.JPG,align=,width=550,height=413,vspace=0,hspace=0,border=1] 얼마나 울어야 마음이 희어지고/얼마나 아파야 가슴이 열리고/얼마나 사무쳐야 하늘이 열릴까. 얼마나 미워해야 사랑이 싹트고/얼마나 속아야 행복하고/얼마나 버려야 자유로울까. 얼마나 태워야 오만이 없고/얼마나 썩어야 종자가 열고/얼마나 닦아야 거울마음 닮을까. — 내원사 선방 글 중에서 그동안 인정하기 힘들었던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의미를 가슴깊이 생명의 속도로 이해하면서, 순례 내내 나의 땀방울과 속세의 때를 씻어주었던 천성산의 손길이 고속철도관리공단 관계자들뿐 만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길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창에 비친 열흘 동안 기른 수염 속에서 찾은 내안의 또 다른 내 모습에 흐뭇해하면서 잠이 들었다. * 회원 장정구님은 인천녹색연합 소모임 자전거세상을 이끌어가고 계십니다. 얼마 전 큰 뜻이 있어서 일까요~ 운영하시던 일을 잠시 놓고 자신을 돌아보고 보다 의미있는 일을 찾겠다고 선언하셨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