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정맥 시민탐사⑥] 수원과 용인의 허파 광교산

2007년 10월 12일 | 한남정맥•공원녹지

  수원시와 의왕시를 잇는 1번 국도가 한남정맥의 주능선을 가로지르고 있는 지지대 고개부터 이번 탐사는 진행되었다. 지지대 고개는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제를 지내고 환궁할 때마다 떠나는 발걸음이 느릿느릿했다 하여 한자 느릴지(遲)자를 두자를 붙여 지지대 고개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프랑스 참전 기념비 옆으로 수원시 종합 관광 안내도와 광교산 등산 안내도가 커다랗게 걸려 있다. 지지대고개의 이정표를 따라 걸어가면 양 옆에 이고들빼기와 구절초와 물봉선이 반갑게 맞이한다. 고속도로 지하통로를 통과하고 약간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산행은 시작된다. 달리는 경적소리에 잠시 뒤를 보면 손에 잡힐 듯 북수원IC가 시야에 들어온다. 잘 닦아놓은 신작로 같은 능선 길은 철탑을 지나 산마루까지 두 사람이 다정스레 손잡고 걸어도 될 만큼 부드럽게 잘 다져져 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구간은 나무목으로 계단을 만들어 놓아 흙의 유실을 막고 산행하기 편리하게 해 두었다. 조금 올라가면 수의사거리가 나오고 왼편으로 의왕시로 내려서는 길이 있고 오른편으론 파장동 정수장으로 표시가 되어 있지만 나무로 길을 막아 놓았다. 다시금 내리막과 오르막을 반복하는데 왼편엔 녹슨 철조망 울타리가 앙상한 뼈대만 드러내고 곳곳에 블록으로 만들어진 방호벽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굽은 소나무처럼 완만하게 오르다보면 왼쪽방향으로 시계가 걸려있는 나무와 산불감시초소가 보인다. 바로 광교산 헬기장에 이른 것이다. 이곳은 배낭을 메지 않은 채 산 밑의 동네에 사시는 분들이 자주 찾는다. 광교헬기장   그늘 한 점 없는 광교산 헬기장을 떠나 발걸음을 재촉한다. 좁은 길을 내려갔다가 잠시 오르면 벤치 4개가 놓인 봉우리가 나오고 여기서 숨을 고르고 급경사의 통나무 계단을 지나면 안부삼거리의 이정표가 보인다. 소나무가 능선 가운데 있는 삼거리를 지나 뚜렷한 내리막길로 가다 다시 올라가면 금세 통신대헬기장에 이른다.  헬기장 한편에 수원시 상광교동과 의왕시 왕곡동을 나누는 수원시 경계표가 허수아비처럼 서 있다. 광교산길잡이를 맡으신 환경을생각하는교사모임(환생교)의 전 회장인 김형인씨는 “상광교동은 광교저수지에서 올라오는 긴 골짜기를 가진 동네인데 예로부터 불당골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고 “고려시대에는 89개의 절이 있었다는 기록처럼 절이 많은 불교성지였다.”고 한다.  이정표 너머로 보이는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갔다 왼편으로 오르면 마루금을 차지하고 있는 미군통신부대의 철조망이 흉흉한 모습을 드러낸다. 등산로는 오른쪽으로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진행되고 나무로 보수되어 있는 등산로를 내려가다 오르면 백운산의 통신기지로 올라가는 후문이 나온다. 길 따라 오르면 바로 시멘트 계단길이 펼쳐지는데 지루하기 그지없다. 광교산 갈림길  철망 따라 걷다보면 끝나는 지점에 이르러 기운을 차리고 물 한 모금 마시는 사이 백운산갈림길의 이정표가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왼편으로 가면 백운산 줄기가 나오고 오른편으로 돌면 억새밭이 이어진다. 여기서부터 많은 등산객을 만난다. 백운산과 광교산, 청계산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합세하기 때문이다.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가면 제법 커다란 돌탑이 보이고 이정표에 억새밭이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시루봉까지는 1,094m나 남아있다. 조금 더 걷다보면 삼거리가 나오고 왼편으로 올라가면 작은 돌탑이 있고 그 너머엔 커다란 통신탑이 멍하니 서 있다.  오르막 능선을 오르자 커다란 바위봉우리에 도착한다. 사방이 탁 트여 시원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울창한 숲이 가픈 호흡을 하며 숨을 내뱉고 있다. 경기남부의 허파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 가야 할 능선과 고개를 돌리면 미군통신부대의 시설물도 보이고, 수지구 고기동과 멀리 분당 일대의 아파트가 보이며, 관악산과 지나온 능선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하지만 개발의 삽날에 무참히 파헤쳐진 광교산 자락은 각종 개발과 훼손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탐사대를 이끌고 있는 인천녹색연합의 신정은(29)간사는 “하루빨리 광교산 보전계획이 수립되어 일체의 개발을 제한하고 수원, 용인, 의왕, 성남의 허파로서의 구실을 다 할 수 있게 지자체는 물론 시민까지 나서서 광교산을 살려내야 한다.”고 말한다.  새로 세워진 경기방송 송신소를 지나 뒷동산 같은 편안한 능선을 따라가면 미색의 초소와 나무의자가 좌우로 있는 노루목을 만난다. 노루가 다니는 길목이라지만 그 지명에 대한 유래의 정확한 근거는 미약하다. 약간 오르막길로 오르면 설치장소에 걸맞지 않는 운동기구가 외롭게 널려있는 노루목 대피소가 나온다. 대피소 안에는 ‘숲은 우리의 희망과 미래가 있습니다.’라는 푯말에 등산객에게 협조하는 사항을 적어 놓았다. 그렇다. 우리는 숲의 주인이 아니고 숲의 초대를 받은 손님으로 온 것이다. 그러기에 숲에서 자라는 풀 한포기라도 귀한 것이고 나로 인해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심하고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광교산 시루봉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면 광교산 시(詩)판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완만한 길을 따라 몇 발자국 옮기니 오늘 탐사의 최고봉인 광교산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수원성이 연상되는 정상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 정상비에는 광교산의 유래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수원의 북쪽에서 찬바람을 막아주며 수원 시가지를 품에 안고 있는 해발 582m의 광교산은 원래 이름이 광악산이었다. 고려야사에 의하면 서기 928년 고려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친히 정벌하고 귀경하는 길에 광악산 행궁에서 군사를 위로할 때 이 산에서 광채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광경을 보고 부처의 가르침을 주는 산이라 하여 산 이름을 광교산이라 하였다.”  한남정맥은 그 지형이 양팔로 수원시를 감싸 안은 듯한 형국으로 북, 동 및 서쪽의 3면이 광교산 줄기에 에워싸여 남쪽만이 넓은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사방을 내려다보면 움푹 팬 수지구 고기동과 멀리 분당 일대의 아파트가 보이고 연주대를 비롯한 관악산 줄기와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마루금을 따라 내려서면 이후 길은 뚜렷하게 외길로 이어진다. 김준룡장군의 전승음각과 비로봉  조금 내려오는 능선길 오른편에 김준룡 장군의 전승음각화 이정표가 있다. 등산객이 많이 이용하는 능선은 어른 무릎 높이만큼 훼손이 되어 움푹 패인 채 방치되어 있고 곳곳에 나무뿌리가 앙상하게 드러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에 수원시 녹지공원과의 한 관계자는 “광교산은 수원 시민뿐 아니라 인근 시에서도 많이 이용하고 있어 부분 휴식년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예상보다 빨리 등산로가 훼손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내면서 “광교산이 건강해 지고 살아날 수 있도록 성숙한 시민의식과 복토운동에 적극 동참해 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그래도 진행해 온 정맥능선 가운데 가장 정비도 잘되고 보존도 잘되어 있고 시에서도 관리에 힘을 쓰고 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빼곡히 들어선 나무들이 치열하게 그 생을 살아 왔음을 느낄 만큼 비좁게 기지개를 펴고 자라있다. 몇 몇 나무엔 이름표를 달아 놓아 지나가면서 나무의 이름을 불러주며 나무의 생김새와 잎새를 관찰 할 수 있게 해 준 것도 고마운 배려다. 신갈나무, 떡갈나무, 밤나무 등을 바라보며 걸으면 어느새 토끼재에 이르고 오른편으로 가파른 나무계단의 내림길이 있어 사방댐과 종점으로 안내한다. 삼거리를 지나 오른편 길로 올라가면 팔각정이 있는 비로봉에 도착한다. 잠시 쉬었다 가라는 뜻에서일까. 팔각정에 오르면 ‘산중의 좋은 친구는 숲속의 새요 세상에서 가장 맑은 소리는 돌 위에 흐르는 물소리다.’라는 글귀가 목판이 걸려 있고 함께 나옹선사의 시가 바람에 날리며 자신을 돌아다보게 한다. 이곳에는 많은 등산객들로 분빈다. 여기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수원시 장안구 일대의 아파트와 멀리 의왕시의 아파트 단지가 시야에 들어온다. 팔각정을 내려와 형제봉으로 이어가는데 갑자기 길이 훤해지듯 넓다. 오름길을 잠시 오르면 콜크보드가 깔린 나무계단이 나오고 짧지만 힘겹게 오르면 형제봉이 손사래 친다. 형제봉  형제봉에는 이미 많은 등산객들이 자리를 잡고 수원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형제봉은 광교산 남쪽에 있는 돌산으로 봉우리가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어져 마치 형제처럼 솟아있어 형제봉이라 불린다. 정상의 한쪽에선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는 분들도 있고 어린아이들은 정상의 기쁨을 맛보는지 밝은 표정이 푸른 하늘과 닮아 있다.  잠시 여정을 풀며 수원시와 용인시를 내려다본다. 곧 원천유원지도 개발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을 생각하니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용인은 난개발의 상징 도시답게 산자락 깊숙이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는 것처럼 야금야금 파헤쳐져 있다. 몇 해 전만해도 개발이 더디었는데 전원주택의 검은 그림자가 산 아래까지 짙게 드리운 채 산을 향해 어슬렁거리며 기어 올라가고 있는 모습에 고기동을 슬픈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급경사가 몇 군데 이어지고 몸이 움직인 대로 내려오면 어느새 수많은 등산객들의 인파 속에 묻히게 된다. 하지만 토사의 유실로 ‘U’형으로 깊게 파인 등산로는 내려오는데 많은 장애를 주었다. 수원시는 펜스를 설치하여 등산로의 넓어짐을 방지하려고 애쓰지만 몰려드는 등산객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인 듯하다. 환경전문가들은 “몇 개의 주 등산로라도 계단식 나무데크를 설치해야 황폐화를 줄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백년수 정상을 지나 경기대로 내려오면 반딧불이 화장실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반딧불이 화장실은 지난 1999년 용변을 보면서 광교산의 자연 풍광을 감상할 수 있게 설계된 화장실로 제1회 아름다운 화장실 대상을 받았다.  짧다면 짧은 구간이지만 오늘 탐사는 한남정맥의 희망을 보았다. 한쪽에선 개발로 산 정상까지 파헤쳐진 상태로 방치되다시피 수수방관하고 있을 때 그나마 한쪽에선 부분휴식년제를 실시하고 있어 지금의 생태계를 유지 할 수 있는게 아닌지 생각된다.

글쓴이 : 한남정맥 시민탐사대원 이종대

*상기글은 두차례에 걸쳐 진행된 광교산 시민탐사의 내용을 재구성하였습니다. ◎ 시민탐사 광교산 탐사일짜 : 2007년 9월 1일, 9월 29일 탐사구간 : 지지대고개~광교헬기장~시루봉~비로봉~형제봉~반딧불이 화장실 참가자:  이서기, 김형문, 이장수, 서영길, 심유정, 이종대, 이성호, 송수은, 송홍선, 신정은             하천조사팀 – 장정구, 노현기 도움주신분 : 하광교동마을통장 정면채, 전 전국환생교회장 김형문, 수원환경운동센타 이우정, 홍은화 ◎ 차기탐사일정 일정 : 10월 13일~14일 구간 : 용인 할미성 ~ 석성산 ~ 부아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