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떠나는 인천섬순례 둘째날.

2008년 10월 20일 | 섬•해양

 아침 8시 무렵 다시 자전거에 올라 출발할 때 사위는 안개에 둘러싸여 있었다. 마치 몸으로 안개를 걷어내며 달리는 느낌이었다. 희뿌연 안개의 바다 속에 둥실 떠올라 있는 들녘 아주머니들의 모습은 왜 그리 그리움을 남겨놓던지. 오늘은 교동도로 건너갔다 섬을 둘러본 뒤 강화도로 다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이른 아침의 바다는 하늘빛을 띠고 있어 하늘과 바다가 하나로 보였다. 교동도로 가는 배 위에서 우리 일행을 한 차례 떠들썩하게 한 일이 있었다. 갈매기 떼가 배를 뒤쫓아 온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기대하고 온 것이겠지만. “얘들아~ 어여와 이거 묵어라!” 옆에서 강철 오빠가 소리 지르기에 뭔가 하고 고개를 돌려 보니 오빠는 양손의 가운데 손가락을 세우고 갈매기들한테 들이대고 있었다. 잠시 후에는 누구에게서 얻은 새우깡을 오른손에 잡고 여전히 왼손 가운데 손가락은 들어 올린 채 “얘들아- 이것이 똑같은 것이여! 어여와 묵어!” 소리쳤다. 갈매기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10분은 금방 지나가 우리는 어느새 교동도에 첫발을 딛고 있었다. 교동도는 섬이면서도 어업보다는 농업의 비중이 더 큰 곳이었다. 한 개 면에서 생산되는 쌀보다 이곳 섬에서 더 많은 쌀이 생산될 정도다. 과연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길은 끝없는 농지 사이를 요리 조리 돌아나 있었다. 우리가 제일 먼저 들린 곳은 바다와 뻘이 펼쳐진 곳이었다. 이곳을 배경으로 모두 부산하게 기념사진을 찍었다. 각 모둠별로도 포즈를 취해가며 찍는데 고은이가 내게 카메라를 건네주며 자기 조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알겠다고 서있는데 옆에서 불쑥 병린이가 다가왔다. “언니, 언니 지금 뭐해?” “그냥 사진 찍으려고..” “응, 그래?” 갑자기 병린이의 손가락이 얼굴을 쓱 긋는데 무언가 차갑고 미끈한 게 느껴졌다. “야! 이게 뭐야?!” 하는데 천연덕스럽게 “언니, 수염도 필요한 것 같아” 내 코 밑에 두 줄을 더 긋는다. “병린! 너 가만 안둬!” 당장 갯벌로 달려가 한 줌 진흙을 잡아들었다. 그 이후 펼쳐진 쫓고 쫓기는 뜀박전과 상대 팔이 얼굴에 못 닿도록 벌인 몸싸움은 꽤나 치열해서 다 끝나고 난 뒤의 얼굴은 땀과 진흙 범벅이 돼버렸다. “언니, 프링글스 같아.” 떠나기 전 카메라를 들이대며 나은이가 평해준 말이었다.



다음 목적지는 석모도, 미법도, 서경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또 다른 포구였다. 감자가 간식으로 나눠졌는데 강철 오빠가 “감자는 설탕이 있어야제.” 하며 설탕을 한 주먹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웬 설탕? 소금이겠지” 다들 한마디씩 했지만 “아, 전라도는 설탕이래두” 하는 말에 더 이상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의외로 설탕에 찍어먹은 감자는 맛있었다. 간식을 끝낸 몇몇 일행은 저 앞에 펼쳐진 갯벌로 아예 뛰어들었다. 나도 얼른 따라 들어갔다. 검은 벌판에 첫 발을 내딛을 때의 그 느낌이란 도시에서 평생을 살아도 느끼지 못할 것이었다. “자연이 진정한 놀이터야.” 옆의 누군가가 던진 이 말이 그렇게 공감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갯벌 위를 걷는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고 즐거웠다. 거기다 망둥이와 게까지 있었으니 신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곳은 곧 조력 발전소가 세워질 곳이라는 것이었다. 남, 북으로 두 개의 방파제가 섬 사이에 놓여 물을 막게 될 것이라고 한다. “방파제가 세워지면 여러분이 보시는 이 갯벌의 일부는 육지화가 되고 다른 일부는 물 아래 잠겨버립니다. 결과적으로 갯벌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죠.” 설명을 들으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내가 발 디뎌 본 이 곳 갯벌이 다음 세대 어디쯤에서는 아주 사라질 땅인 것이다.




점심은 면사무소 앞에서 먹었다. 화개산 정상에 올라가기 위해서였다. 그곳에 서면 바다 건너 북한 땅이 훨씬 잘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그 경관을 보기 위해 흘려야 했던 땀 값은 꽤나 비쌌다. 계속해서 오르막길만 올라야 했던 것이다. 약간의 평지와 내리막길을 바라고 바랐지만 산길은 그런 우리의 기대를 가차 없이 저버리고 저 꼭대기를 향해 끝없이 비탈져 있었다. “자전거 타는 게 더 쉬운 것 같아.” 오죽하면 누군가 이 말을 했을까. 그래서 드디어 정상에 도달했을 때는 모두 환호했다. 이제야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 때문이기도 했지만 좁은 산길을 벗어나며 갑자기 탁 트이는 시야에 반사적으로 나오는 환호이기도 했다. 저 아래 산허리를 감싸며 노랑의 논밭과 푸른 바다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평화로운 정경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저미게 했을지는 모를 일이다. 여기 서니 북한 땅은 이렇게 손에 잡힐 듯 생생한데.. 나는 자연만을 대했을 때 남과 북 사이에 놓인 금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오직 사람만이 아무 표지도 없는 자연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그어 놓았다



화개산에서부터 강화 유스호스텔까지의 돌아오는 여정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유스호스텔에서 묵는다는 기쁨이 참 컸다. 우리는 강화도 시민연대 김순래 선생님의 강연을 듣기 위해 부지런히 씻고 저녁을 먹었다. 선생님의 얘기는 강화도 개발 계획에 관한 것이었다. 현재 두 곳에서 조력 발전(강화, 인천 조력 발전소)이 계획되고 있으며 이것들이 충분한 사전 조사를 거치지 않고 이루어지려 한다고 했다. 그러나 섣부른 개발은 생물 다양성을 파괴, 변질시킬 뿐 아니라 콩팥과 같은 갯벌을 소멸시켜 버릴 것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생각해 보았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쳐 버린 ‘갯벌’이란 말은 더 이상 추상적 단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햇볕 아래 검은 윤기로 반짝이는 생명의 땅이었다. 발을 철벅 철벅 빠뜨리며 걷다보면 어느새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주는 땅이었다. 그런데 그 누가 이 땅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를 권리를 가졌다는 말일까. 사람들은 참 이상한 존재였다. 보이지 않는 금을 긋고 보이지 않는 권리를 말한다. 이것이 인간 사회에 불가피한 현상이라 할지라도 나는 자꾸 바라게 된다. 가끔씩이라도 그냥 있는 그대로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떨까 하고. 갯벌을 조력발전소가 세워질 땅으로 보기보다 갯벌 자체로 바라보고 북한 땅이든 남한 땅이든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땅 자체로 바라본다면 사람들이 조금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인천자전거섬순례 둘째날의 기록 — 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과  김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