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7일, 정서진선착장 출입항통제사무소,
평소 굳게 잠겨있는 철책선 출입문이 활짝 열려 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생수 4천병, 2백상자입니다.”
“내일 100상자까지 합하면 총 1만병이예요”
인천 서구청 공무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연신 트럭에서 생수상자는 내리며 말한다.
“거동할 수 있는 주민들은 죄다 나왔어”
“헌데 섬에 노인네들뿐이니 어쩌겠어~ 배에까지 실어줘야지.”
상수도사업본부관계자, 해양경찰, 서구청공무원에 관광객들까지 나서 생수상자를 옮기는 사이 세어도 통장이자 정서진호 선장인 채수정씨가 대꾸한다.
올 들어 세 번째 세어도의 생태조사를 위해 나선 인천녹색연합 조사팀이 섬지역의 고령화, 식수문제 그리고 올 초여름의 극심한 가뭄을 몸소 느끼는 순간이었다.
세어도엘 가기 위해서는 정서진선착장이나 만석부두에서 인천 서구청 행정선인 정서진호를 이용해야 한다. 경인아라뱃길 인천터미널을 지나 김포방면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약 2~3킬로미터 가다보면 왼쪽으로 정서진선착장 출입항통제사무소로 사용하고 있는 작은 초소가 나온다. 여느 땐 출입항통제사무소 앞에 도착하면 철책선을 굳게 닫혀있고 관광객 서넛에 출입항업무를 담당하는 서구청 공익요원 1명이 전부다. 배 출발시간이 되면 인천해양경찰서 정서진파출소 소속 경찰관 2명이 경찰차를 타고 나타나서 간단한 신분확인과 인적사항기록 후 출입문을 열어준다.
우리나라의 섬들은 교통과 식수의 문제점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특히 작은 섬들일수록 물 문제가 심각한데 세어도 주민들 역시 올 가뭄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평상시 세어도 지하관정 수량은 하루 30톤으로 주민들이 사용하는데 큰 문제는 없다. 갈수기에는 지하수량이 줄어들거나 염분농도가 높아지는 것을 대비해 먹는 물을 제외한 생활용수는 지하수가 아닌 저수조의 물을 이용해왔다. 그런데 올 봄 가뭄이 유난히 심하여 저주조가 바짝 말라 바닥이 드러났고 녹조 발생으로 물고기까지 죽어나갔다. 먹는 물마저 부족해지자 상수도사업본부와 서구청에서 350ml짜리 미추홀 물 1만병을 긴급 공급하기에 이른 것이다.
생수상자를 트럭에서 수레에 옮겨싣고 250미터 선착장잔교를 이동하여 다시 배에 옮겨싣기를 수십분, 결국 출항 예정시간을 30분이나 넘겨버렸다. 힘찬 엔진소리와 귓밑을 스치는 바닷바람에 흘러내린 땀을 닦으며 하늘을 보니 햇볕은 여전히 쨍쨍이다. 서쪽으론 북한산과 계양산이 선명하게 한눈에 들어온다.
여전히 도심 속의 오지, 세어도
세어도는 행정구역상으로 인천광역시 서구 원창동에 속해 있다. 인천서구문화원자료에 따르면 원창동은 갯말, 환자곶으로 불렸는데, 갯말은 갯벌마을을 뜻하고 환자곶은 조선시대 흉년이나 춘궁기에 곡식을 대여해주고 추수기에 돌려받던 일명 양곡대여창고가 있었던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란다. 세어도(細於島)는 가늘고 길게 늘어선 섬이라는 뜻이고 서쪽에 떨어져 있는 섬이라 서천도(西遷島)라고도 불렸다. 세루 혹은 시루란 별칭까지 가지고 있는 세어도는 조선시대 삼남지방에서 세곡을 운반하던 길목이고 한양으로 가는 마지막 정박지로 한때는 60~70호에 이를 정도로 번창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남북으로 갈라져 한강뱃길이 막히면서일까? 지금은 옛 영광을 뒤로 하고 10여가구만이 어업과 텃밭을 가꾸며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세어도가 외부로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가 정서진호다. 예전에는 일주일에 서너번 동구의 만석부두에서 행정선이 다녔는데 2011년 정서진선착장이 만들어지고 나서는 정서진호가 세어도와 마주보고 있는 정서진선착장을 하루 한번 왕복하고 있다. 보통 정서진선착장에서 오전10시에서 세어도로 출발하고, 세어도에선 오후3시경 정서진선착장으로 돌아온다. 물때에 따라 배 운항시간은 유동적이고, 한강물이 쏟아져 나오는 염하수로에 선착장이 위치하다보니 배로 오가는 시간은 5분도 안되는데 물살이 쎌 땐 배를 접안하는데만 10여분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
10억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정서진선착장은 만들고 군부대와 해양경찰의 협조로 출입항통제사무소를 열었지만 세어도는 여전히 출입이 자유롭지 않다. 특히 정서진선착장으로 연결되는 대중교통편이 없어 세어도에서 나온다하더라도 서구나 인천시내로 갈 수 있는 방법이 마땅하질 않다. 해서 정서진호는 한달에 서너번 생활필수품구입 등 세어도 주민들의 위해서 뱃길 40여분거리의 만석부두를 오가고 있다.
‘인천 마지막 오지, 세어도에 전기가 공급되다’, 2007년 2월 28일자 지역신문들에서 일제히 보도한 내용이다. 육지에서 700m밖에 안되는 세어도에 외부에서 전기가 공급된 것이 5년 전이다. 21세기 들어서도 세어도에선 호롱불과 촛불이 어둠을 밝혔고 2007년까진 육지와 해저케이블로 연결되기 전까진 자가발전기로 아주아주 귀한 전기를 불편하게 사용해왔다.
“요즘 유명세를 타면서 사람들이 제법 찾아와요.”
“재래식화장실을 보고 모두 기겁을 해요.”
“또 식당이 있나? 슈퍼가 있나? 관광객이 와도 걱정이예요”
얼마 전까지 통장으로 마을일을 봤던 장혜숙씨는 세어도를 찾는 관광객이 달갑지만은 않다. 상하수도가 연결되어있지 않아 깔끔한 도시민들에게 푸세식 화장실을 안내하기도 민망하고 가뭄엔 언제 지하수에 짠물이 스며들지 몰라 손님들에게 시원한 냉수 한 사발 마음놓고 권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경인아라뱃길, 상처투성이 세어도에 개발 광풍을
“저기가 쓰레기매립장이야, 매립지가 들어서고 나선 고기잡이가 신통치 않어”
“기형물고기도 잡히고,,,,, 보상을 받긴 했지만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마을 어귀에서 평생을 세어도에서 사셨다는 한 어르신은 동쪽을 가리키며 한숨짓는다.
세어도에서 정서진선착장을 바라보면 그 너머가 세계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수도권쓰레기매립지이다. 80년대 중반 동아건설에서 매립을 시작하기 전까지 철새도래지로 천연기념물 제257호였던 곳이다. 1천만평이 넘는 이곳 매립지(김포매립지 또는 동아매립지로 불림)의 북쯕 절반은 수도권쓰레기매립지가, 나머지 남측 절반은 경제자유구역 청라지구이 되었다. 세어도 바로 앞의 수도권쓰레기매립지에는 1992년부터 지금까지 20년간 1조2천5백만톤의 쓰레기가 매립되었고 작년에도 400만톤이 넘는 쓰레기가 묻혔다.
세어도와 정서진선착장 사이에 세어도 주민들이 ‘켬’이라 부르는 작은 무인도가 있다. 이 섬은 잠수함과 모자를 닮았다고 해서 최근 관광객들이 잠수함바위, 삿갓바위라 부르고 있는데 원래부터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고 한다. 주민들에 의하면 지금보다 훨씬 크고 둥글었던 것이 1960년대 인천연안부두 매립공사에 필요한 골재를 공급하기 위해서 깎아내면서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렇게 세어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외부의 근대화와 발전을 위해 파헤쳐진 현장은 선착장 앞산 채석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어도와 주민들의 아픔과 상처는 이뿐이 아니다. 인근의 영종도, 용유도, 삼목도 사이의 갯벌을 매립하여 인천공항이 만들어지고 영종도 준설토투기장이 건설된 이후 세어도 북측 황산도쪽의 갯벌이 높아지고 염하수로는 점점 깊어졌다. 영종대교와 초지대교가 만들어지고 굴포천방수로(현 경인아라뱃길)공사 후 물의 흐름이 바뀌어 남측 갯벌에는 모래가 쌓이고 지천이던 가무락, 바지락과 굴이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효용성이 없어지자 금새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방치되던 세어도가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경인아라뱃길 개통으로 K-Water(한국수자원공사)에서 경인아라뱃길 인천터미널에서 세어도까지 100명 정원의 유람선을 운항할 계획이라고 알려지면서부터다. 벌써부터 인천 서구청에는 관광객맞이를 위해 둘레길조성, 어항정비에 분주하다. 섬의 자연생태와 문화는 한번 훼손되면 다른 지역보다 더 회복하기 어렵다. 세어도와 주민들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하루 100명의 관광객은 주민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어도를 완전히 다른 섬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세어도는 이미 학습한 바 있다. 2007년 전기가 들어오자 인천 서구청에서는 서구의 유일한 유인도인 세어도에 어촌체험마을조성사업을 추진하였다. 국비를 지원받아 세어도의 자연환경, 생활문화과 연계한 생태관광 기반시설을 조성하여 어업인의 소득증대 및 어촌환경 보호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마을종합안내소 및 체험교육학습장, 밭농사 체험장, 갯벌체험장 접근로, 휴게쉼터, 바베큐장 등을 만들었다. 세어도 어촌체험마을 운영․관리 조례 및 시행규칙을 제정하고 어촌체험마을 운영위원회도 조직했다. 그러나 2008년 첫해 3천명 넘던 관광객이 2009년 900여명, 2010년 600명으로 급감하여 결국 중단되고 말았다.
“관광객이 오면 뭘 해.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어촌계에선 체험비로 1인당 몇천원 받은 게 고작이야. 근데 쓰레기며 화장실이며 뒤처리만 해야 하니 주민들도 달가워하지 않았지.”
어촌계원으로 어촌체험마을 운영위원회에 함께했던 채수정 통장은 인프라구축 등 관광객을 맞이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외에도 세어도 서쪽으로 세계최대라는 인천만조력발전소와 신규 준설토 투기장이 계획 중이다. 이들은 모두 강화도와 영종도, 세어도 사이의 갯벌을 매립하는 토목사업으로 치명적인 환경피해가 불가피하며 주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또한 세어도 동쪽으로는 정서진선착장 인근에 수리조선단지가 계획되고 있다. 선박수리에서 발생하는 유독성페인트, 중금속, 폐유 등은 세어도 바다를 또다시 황폐화시킬 것이다.
세어도의 숲길과 뚝방길에서 드넓은 갯벌을 바라보다.
“ 와~ 저어새다.” “ 저기 봐, 노란색의 꾀꼬리가 날라가네”
세어도 생태조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탄성을 연발한다.
세어도 갯벌은 북쪽과 서쪽으로 넓게 펼쳐져 석양에 갯골을 가르며 돌아오는 고기잡이배, 저어새와 두루미의 비행은 한폭의 근사한 풍경화를 만들어낸다. 세어도 갯벌이 키우는 저어새와 두루미는 인천의 대표 새이다.
검은얼굴 주걱부리(Black-Faced Spoonbill) 저어새는 전세계 2천5백여마리밖에 없는 천연기념물이고 멸종위기1급 조류이다. 대부분 강화도와 비무장지대, 즉 인천앞바다의 무인도에서 태어나는데 세어도와 영종도 사이에 위치한 수하암에서도 매년 100여마리의 저어새가 태어나고 세어도와 영종도 사이 갯골에서 먹이잡이 부리질을 한다.
‘두루두루’ 하늘을 향해 소리내며 암수가 함께하는 춤사위가 매력적인 두루미도 전세계 생존개체 2천여마리로 멸종위기조류이다. 학이라고 불리며 인천의 시조(市鳥)인 두루미를 요즘 인천에선 동검도와 세어도 갯벌에서만 관찰이 가능하다.
세어도는 숲과 숲길도 일품이다. 마을 어귀의 용트름나무와 고욤나무, 김첨지나무라는 애칭의 고로쇠나무와 당제를 지냈던 소나무들은 모두 백년 넘게 세어도를 지켜왔다. 밤나무와 굴피나무, 리기소나무로 이루어진 숲길에선 ‘스르르~스르르~’ 풀매미소리와 그윽한 숲내음, 숲길바닥의 흩뿌려진 밤꽃들은 도시에서의 찌든 삶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세어도에서 봄에는 보라색의 타래붓꽃을, 여름에는 붉은 참나리를, 가을에는 흰 개미취를 만날 수 있다.
그 외 엄나무, 물푸레, 단풍나무, 진달래, 자귀나무, 엄나무, 오동나무, 멍석딸기, 노간추, 팥배나무, 보리수나무, 누리장나무, 국수나무, 아카시나무, 쥐똥나무, 두릅나무, 쉬나무 등등
세어도의 또 하나의 명물은 뚝방길이다. 세어도에는 간척을 위해 둑을 쌓은 곳이 4곳이 된다. 대부분 미완성이거나 일부가 무너졌지만 뚝방길을 따라 걷다보면 일일이 돌을 등짐으로 나른 인간의 집념과 수만년 세월동안 한강 임진강 예성강에서부터 떠내려와 쌓인 갯벌의 장엄함에 숙연한 마음까지 든다.
세어도, 지속가능한 섬으로 생태교육의 현장으로
예전에는 63빌딩이나 인천대교, 소양강댐, 포항제철소 같은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보려고 관광버스를 대절했지만 요즘은 가족들과 구불구불 옛 마을과 마을길을 천천히 걷고 때묻지 않는 자연, 야생화 자생지, 습지와 갯벌의 가치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올해 서부교육지원청과 인천녹색연합은 세어도에서 인천의 미래를 책임질 우리 아이들의 자연생태학습 현장의 가능성을 찾고 있다. 인천녹색연합에서는 한달에 한번 40여명의 중학생들과 세어도의 인문환경, 자연생태 모니터링을 진행하며 지역주민들을 만나고 있다. 서부교육지원청은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연생태학습을 실험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150여개의 섬이 있지만 체계적인 보전관리 및 지속가능한 이용정책이 수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관광객들만 늘어나고 있다. 꾸준한 모니터링을 통해 주민들 삶의 질도 높아지고 그 섬의 지속가능 방안에 대해 미래세대와 함께 고민하고 그들의 생태적 감수성을 높여주기 위함이다. 청소년기에 형성되는 논리적, 비판적인 사고와 자연환경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세어도가 최적지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이렇게 잘 보존된 섬이 있는 줄 미처 몰랐어요.”
“고향처럼 편안한 세어도에서 오래도록 아이들이 자연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서구 연희동에 살면서 세어도 생태조사에 참여한 진달래회원의 소박한 소망이다.
경인아라뱃길 개통으로 투기꾼들은 호시탐탐 개발기회를 노리고 있는, 그동안 외부의 필요에 파헤쳐져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은 세어도의 갯벌과 숲이, 마을과 주민들이 잘 지켜지기 위해서는 세어도 주민뿐만 아니라 지역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나서야 한다.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과 그들이 미래를 펼쳐갈 인천바다에서 지역주민들과 함께 고민하며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인천시민의 마음의 고향이자 치유의 섬, 세어도’를 그려본다.
글/사진 장정구
* 이 글은 작가들 2012가을호에 실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