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번째 녹색순례 후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2017년 6월 8일 | 기타

섬 면적 20%에 미군기지가 주둔해 있고, 주일미군의 74%가 위치해 있는 오키나와. 이곳으로 스무번째 녹색순례를 떠났습니다.

녹색순례는 전국녹색연합 활동가들이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열흘, 환경현장을 직접 걸으면서 자연의 생명력과 아픔을 절절히 느끼며, 내 삶과 활동을 돌아보는 성찰의 장(場)입니다. 1998년 처음 시작한 순례가 올해 20주년을 맞이해 군기지 문제로 고통받는 오키나와로 순례(5월25일~31일)를 떠났습니다.

한국에서도 평택미군기지 문제로 주민들이 살던 터전에서 쫓겨나야 했고, 부평미군기지와 용산미군기지 등 미군기지에서의 각종 환경오염문제가 확인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사드배치로 인해 성주 주민들은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군기지로 인한 끊임없는 갈등과 환경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기지, 후텐마 기지

오키나와의 한 도시(기노완시) 면적의 25%를 차지하는 후텐마기지. 이 곳은 오스프리라고 하는 전투수송헬기가 24대나 있습니다. 도시 한복판에 위치한 이 기지로 인해 도시는 단절되었고 주민들은 각종 군폭음(소음)과 사고위협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후텐마폭음소송단에 참여하고 있는 한 주민은 녹색순례단에게 이러한 상황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후텐마부지_1

△ 기노완시 한복판에 위치한 후텐마기지. 도시는 단절되었다.

마을이 먼저 있었으나 태평양전쟁에서 일본 패전 후 주민들이 수용소로 감금된 사이 후텐마기지가 들어섰다고 합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마을을 비집고 들어선 미군기지의 헬기 유도 구조물이 인가에 인접해 있어 아슬아슬해 보였습니다. 밤 10시 이후에도 헬기가 이착륙하고 있으며, 실제 추락사고도 발생하고 있다는 주민의 증언이 이어졌습니다. 현재 후텐마기지에는 불과 200여명만 일하고 있어 지역경제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위협적인 미군기지가 아닌, 이 부지를 다른 용도로 활용한다면 지역경제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국의 미군기지와 마찬가지로 후텐마기지의 환경오염 문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미군기지에서 발생한 오염물질이 인근 바다로 흘러들어가 해조류에서 PCBs물질이 검출되기도 했답니다. 후텐마기지에 전투수송헬기인 오스프리가 들어선 2012년부터 매일 미군기지 반환요구 시위가 이루어지고 있는 기노완시의 평화를 빌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후텐마기지_2(국제대학)

△ 오키나와국제대학 옥상에서 바라본 후텐마기지.

후텐마기지_3(국제대학)

△ 2004년 헬기 추락사고 당시 사진들

2004년 헬기 추락사고가 발생했던 오키나와국제대학에 도착한 순례단은 교수의 안내에 따라 현장을 둘러보았습니다. 대학 도서관 내에 전시된 그 당시 사고현장 사진들을 보며 충격적인 설명을 들었습니다. 일부 미군이 노란 방진복을 입고 추락헬기를 조사하는 사진에서 추락헬기에 방사능 물질이 포함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는 겁니다. 사고지역 토양조사 결과, 방사능 수치가 높게 나온 곳이 있었지만, 미군은 자연계에서 나올 수 있는 수치라고 하며 흙을 반출해 갔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대학교수는 설명했습니다. 방사능 무기의 존재를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학교 옥상에서 후텐마기지 내부를 볼 수 있었고, 약 700m 정도 떨어진 곳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헬기 소리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헬기 추락사고 이후에도 여전히 학교 위로 헬기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 조선인의 아픔

고엽제발견

△ 가데나기지 일부 반환지역으로 체육시설로 조성하려고 했으나, 고엽제가 발견되면서 주차장으로 조성

순례 삼일째, 아시아에서 가장 큰 3대 기지라는 가데나기지의 일부 반환지역을 지나갔습니다. 70년대 반환된 이 일부지역을 체육시설로 조성하려고 했으나 공사 도중 엄청난 양의 고엽제 드럼통을 발견하면서 주차장으로 조성했다고 합니다. 이후 도착한 요미탄촌 바닷가에는 전쟁 당시 미군을 공격하기 위해 일본군이 어뢰를 숨겨두었다는 동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다시 이동해 마주한 것은 ‘한의 비’였습니다.

조선인 비2 조선인 비

오키나와 전쟁 준비와 진행 과정에서 1만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이 낯선 타지 오키나와로 끌려와 강제노역을 했습니다. 당시 일본군의 부대 일지엔 군부들이 건축자재와 탄약, 식량 등 군수물자 운반 작업에 하루 11시간씩 동원됐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한의 비’는 2006년 조선인을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비석으로, 이곳을 찾은 순례단은 ‘한의 비’ 앞에서 묵념을 하며 이들의 넋을 위로했습니다.

 

  • 헤노코신기지 건설반대를 위해 13년간 농성 중

이미 주일미군의 74%가 위치해 있는 오키나와에는 새로운 미군기지가 건설 중에 있습니다.

기노완시에 위치한 후텐마기지 반환운동이 일어나자 이를 명분으로 미군은 후텐마기지 시설을 기존의 슈워브기지로 이전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헤노코기지 라는 새로운 복합기지를 조성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미군은 1966년, 훈련장, 해군과 공군이 결합된 복합기지를 조성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그 지역으로 헤노코를 상정하고 있었던 겁니다.

헤노코 신기지 계획지 앞에서 설명△ 신기지 건설계획지인 헤노코 바다 앞에서 관련 설명을 듣고 있는 순례단

헤노코기지 건설반대_바닷가농성

△ 헤노코신기지 건설 반대를 위해 13년 넘게 농성 중

슈워브기지 앞

헤노코 신기지 건설반대 집회_2 헤노코 신기지 건설반대 집회

△슈워브기지 앞에서 헤노코기지 건설반대 집회 중인 주민들

 

헤노코 신기지 건설반대 집회_연대

△헤노코기지 건설반대 집회에 연대하고 있는 순례단

이에 헤노코 지역 주민들은 헤노코 바다 앞에서 4000일 넘게, 슈워브기지 앞에서 1200일 넘게 천막농성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슈워브기지를 통해 8시, 12시, 3시 하루 세 차례 공사차량이 드나들고 있는데, 주민들은 맨몸으로 공사차량을 막아내다 경찰에 의해 끌려가야만 했습니다. 순례단이 지지방문한 날은 슈워브기지 앞에서 대규모 집회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이에 이틀 전부터 준비한, 노래와 춤으로 연대했습니다.

헤노코 바다는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듀공의 서식지이자 산호군락지로, 560여종의 멸종위기종을 포함해 5400여종의 생물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곳에 미군기지가 들어선다면 이들의 목숨도 위태로워지고 이 아름다운 바다도 볼 수 없게 됩니다.

슈워브기지 탄약고에는 소형핵무기, 생화학무기 등이 있다고 90년대 발표된 바 있습니다. 이런 곳과 연계한 최첨단 신기지인 헤노코기지가 건설된다면 평화가 아닌 전쟁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만이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 전투연습장이 되어버린 아열대 원시림, 얀바루숲

얀바루숲_헬기장

△ 아열대 원시림인 얀바루숲의 헬리포트(헬기장) 계획지

얀바루숲_농성장 앞

△ 헬리포트 건설 현장을 경찰이 지키고 있는 모습

미군이 낯선 아열대림과 날씨로 인해 베트남전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자, 미군은 일본 북부지역 아열대림에서 전투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한 정글전을 위한 전투훈련시설이 되어버린 얀바루숲 일부에는 훈련과정에서 고엽제가 살포되기도 했습니다. 전투연습 뿐만 아니라 2007년부터 헬리포트(헬기장)기지 건설을 시작해 현재 22개의 헬리포트가 위치해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6개를 추가 건설하려고 하자 주민들은 농성장을 꾸려 반대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비행훈련으로 밤늦게까지 폭음에 시달리고, 불안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주민들이 생업을 뒤로한 채 거리로 나선 겁니다.

얀바루숲_딱따구리

△ 얀바루에서 서식하는, 전세계 유일한 생물종 ‘노구치게라’

‘동양의 갈라파고스’라고도 불리는, 일본 열도 중 최고의 생물다양성을 간직한 숲 얀바루. 날지 못하는 새인 ‘얀바루쿠이다’, 딱따구리의 일종인 ‘노구치게라’ 등 전 세계에서 유일한 생물종들이 살고 있습니다. 현재 주민들은 얀바루숲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군과 일본은 이 생명들과 주민들보다 평화가 아닌 또다른 전쟁만 불러일으키는 군사시설 증강에만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사드배치 결사반대

△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성주주민들이 얀바루숲 농성장을 방문해 연대하고 걸어둔 현수막

 

1만명의 조선인을 강제로 끌고가고, 오키나와인 세 명 중 한명은 목숨을 잃게 만든 전쟁. 이번 순례를 통해 평화를 위한다는, 전쟁을 종식시킨다며 군시설을 증강하려는 정부와 군의 어리석음을 직접 보며 느꼈습니다. 헤노코기지 건설 반대활동을 하는 주민들의 말을 떠올려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우리는 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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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순례기가 여섯차례에 걸쳐 ‘경향신문 향이네’에 실렸습니다.

[1]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일본과 중국의 긴장 http://h2.khan.co.kr/201705261632001

[2]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기지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 http://h2.khan.co.kr/201705282125001

[3] 오키나와에 배어있는 조선의 피와 눈물 http://h2.khan.co.kr/201705291057001

[4] “더 이상 기지는 필요 없다” 미일동맹의 헤노코 신기지를 반대하는 오키나와 http://h2.khan.co.kr/201705301246001

[5] ‘과부제조기’에 맞선 다카에 주민들 http://h2.khan.co.kr/201705311402001

[6] 오키나와 가데나 반환기지의 고엽제 매립현장 http://h2.khan.co.kr/20170601165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