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둘레길]인천의 으뜸산 계양산 품에 안겨 걸음마

2021년 10월 1일 | 회원의날

인천녹색연합 회원모임 – 인천둘레길(1코스 계양산둘레길)

인천의 으뜸산 계양산 품에 안겨 걸음마

                                                                        글,사진 – 박수택
                                  (인천녹색연합 회원, 생태환경평론가, 전 SBS환경전문기자)

코로나 덕분에 거의 만날 맘으로만 ‘해외’ 여행이다.  ‘방콕’ 여행이라고도 부른다. 방에 콕 처박혀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만지작거리는 일상을 보낸다는 사람이 많다. 마음도 몸도 지루하고 답답하다. 코로나바이러스 이기려면 맑은 공기 마시고 땀도 좀 흘리며 체력을 단련하면 좋겠다 싶은데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문득 휴대폰 화면에 메시지가 떴다. ‘인천녹색연합 9월 초록통신~인천둘레길걷기_계양산둘레길’, 그래 이거로구나, 지체없이 참가 신청하고 9월27일 월요일 아침 길을 나섰다.

계양산이라는 지명은 옛날부터 계수나무와 회양나무가 자생했기에 계수나무의‘계’와 회양나무의‘양’을 합쳐 만든 이름이라고 전한다(한국지명유래집, 국토지리정보원). 계양산은 인천 부천 김포는 물론 한강 북쪽 고양 파주에서도 우뚝하게 잘 보인다. 한강하구지역이 평야와 낮은 구릉인 터라 계양산이 해발고도 395m에 불과하지만 존재감은 높다. 주위로 펼친 산자락도 길고 넓어서 거느린 언덕과 골도 제법 많다. 기분 전환 체력 단련으로 오르는 사람도 많아서 수도권 서부에서는 손꼽히는 자연이다. 이런 정도의 산이라면 개발 바람을 피하기도 어려운 법이다. 사실 산자락이 뭉텅이로 밀려나갈 뻔한 위기가 닥친 적도 있었다.


계양산은 대중교통으로 쉽게 갈 수 있다. 인천지하철1호선 계산역에서 내려 5번 출구에서 북쪽으로 6백m쯤 걸으니 계양산성박물관이 나온다. 박물관 앞까지 가는 버스 노선도 있다. 박물관 옆 조개 모양 지붕을 인 야외음악당 앞이 모이는 지점이다. 인천녹색연합 신정은 활동가가 이날 활동을 준비하고 이끌었다. 걷는 길 안내인 정운채 선생은 공직 은퇴 후 숲 해설가의 길을 걸어오신 분이다. 코로나 탓에 안내 활동을 거의 못 하다가 오랜 만에 나왔다며 걷기 애호가들을 반기신다. 명단을 확인하고 체온을 잰 뒤 코스 소개와 몸풀기를 마치고 기슭을 따라 시계 반대방향으로 출발했다.

초입 산길은 야자섬유 매트를 깔아 걷기 수월하고 단정하다 5분쯤 걸으니 임학정과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정상으로 오른쪽은 어린이공원으로 내려가는 길목이다. 우리는 북쪽으로 난 중턱 둘레길로 내처 걸었다. 길 오른쪽 숲이 성근 곳에 이르자 멀리 한강 너머 북한산이 보인다. 고양시 전경도 반갑긴 한데 최고 59층 주상복합단지가 삐죽 솟은 모습이 거슬린다. 주위와 조화롭지도 못한 초고층 건물은 욕망의 바벨탑이다. 고개를 돌려 나무와 풀, 꽃, 무당거미로 눈을 씻고 해설로 귀를 닦았다. 소나무와 리기다소나무, 잣나무를 잎 모양과 갯수로 구분하는 요령을 알고나니 숲이 더욱 친근하게 보인다.

숲의 나무들은 대부분 밑둥에서 줄기가 둘, 셋, 넷으로 갈라져 올라간 맹아목이다. 나무를 땔감으로 쓰던 시절의 흔적이다. 계양산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속살을 아낌없이 베어주고 세월을 약으로 삼아 스스로 회복했다. 베어져 나간 밑둥에서 돋아난 눈(맹아)이 세월을 타고 다시 나무로 소생하고 숲을 이뤘다. 다시 울창해진 숲에 도토리, 밤이 주렁주렁 달리고 익어 바닥에 깔렸다. 머리에 까만 베레모를 쓴 것 같은 물까치 무리가 펄펄 날아다닌다. 날카로운 목청의 직박구리, 톤 높은 박새 소리가 산길을 울린다. 늦가을에서 초봄까지 계양산은 야생조류 관찰 탐조활동으로도 좋겠다 싶다.

무당골약수터에 이르렀다. 그리 깊지 않은 계곡에 제법 졸졸 물이 흘러 내려간다. 물골 주변에  무속인들의 신당이 여럿 있었고 소원 비는 푸닥거리도 성행했다고 한다. 무속인들은 여기를 신령한 산의 기운이 모인 곳으로 여겼을 터다. 큰비에 계곡물이 불어도 넘치지 않을 둔덕도 널찍한 것이 그럴 법도 하다. 다시 걸음을 옮겨 고랑재고개를 넘어가니 솔밭쉼터가 나왔다. 키 큰 리기다 소나무밭 사이사이로 탐방객들이 옹기종기 느긋하게 앉아있다. 우리 일행도 널찍하게 퍼져 앉아 가져온 간식을 나눴다. 숲해설가 정 선생님은 오카리나로 청아한 선률을 울렸다. 영화 ‘미션’의 주제곡 ‘넬라환타지아’…내 삶의 미션은 어떠했나 고개를 숙였다.

그렇지, 솔밭쉼터는 15년 전 어떤 미션의 현장이었다. 계양산 북쪽 자락 아름다운 숲을 밀고 대기업 롯데건설이 골프장을 들이겠다고 나섰다. 2006년 10월 26일, 환경시민단체의 20대 신입 여성 활동가가 나무 3그루에 의지해 10m 높이에 올라 농성을 시작했다. 계양산에 닥친 위기를 알리기 위한 고행은 56일 동안 이어졌다. 윤인중 목사가 뒤를 이어 고공투쟁은 154일 동안 지속됐다.  여론이 일어나고 지역시민사회가 힘을 모아 대응에 나섰다. 대기업도 만만치 않았다. 자연환경 조사에 손도 대고 언론 취재 보도에도 제동을 걸었다. 시민들은 더욱 뭉쳤다. 6년에 걸친 싸움 끝에 결국 골프장 인허가 취소를 따냈다. 이명박 정부의 환경파괴가 한창이던 시절에 보기 드물게 값진 승리였다.

둘레길은 당시 솔숲 나무 위 투쟁의 현장을 지나간다. 솔밭쉼터 가장자리 물이 흐르는 계곡 옆이다. 자연 보전 투쟁 승리의 현장엔 아무런 표지도 없다. 둘레길 스탬프북을 폈다. ‘ 01코스–계양산의 역사와 숲을 만나는 길’이라고 소개한다. 계양산은 옛 부평도호부의 진산이며, 경로 가운데 솔밭쉼터는 골프장 조성사업으로 훼손될 뻔한 곳이었지만 시민들의 노력으로 소나무숲을 지켜냈고, 여름 밤엔 별빛 달빛만큼 아름다운 반딧불이를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씌어있다. ‘시민들의 노력’에 불을 붙인 주인공이 바로 인천녹색연합 신정은 활동가다. 일행은 박수로 감사를 표하고 15년 전을 상상하며 기념해야 할 나무를 올려다 보았다.

솔밭쉼터에서 둘레길은 남쪽으로 꺾여 계양산 정상의 서쪽을 이룬다. 점점 오르막으로 가팔라진다. 피고개다. 과거 김포 서울 쪽에서 인천으로 넘어오던 고갯길이라는데 지명 유래가 궁금하다. 옛날 해주 정씨 형제가 어렵사리 과거에 급제하고도 억울하게 관직을 삭탈당하고 이 고개를 넘어오다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해서 피고개라고 부르게 됐다는 해설이다. 피고개를 넘어 징매이고개로 가는 길에 크게는 쌀푸대 작게는 메줏덩이만한 바윗돌이 무더기로 비탈을 덮은 너덜겅을 지난다. 널린 돌더미를 차곡차곡 정성스레 원뿔 모양으로 쌓은 탑이 여럿 시선을 끈다.

계양산 서쪽 능선은 징매이(징맹이)고개 위 생태통로를 거쳐 천마산으로 이어진다. 고개 능선을 따라 중심성이 있던 자리라는 표지가 보인다. 중심성(衆心城)이란 1883년(고종20년)에 부평 고을 백성들이 서쪽 해안을 방비하기 위해서 마음을 모아 쌓은 성이라는 뜻으로 당시 부평부사 박희방이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 해는 바로 일본의 압력으로 인천마저 개항한 해다. 1876년 일본과 맺은 병자수호조약에 따라 부산, 원산, 인천을 개항하기로 하고도 인천을 가장 늦게 연 까닭은 서울에서 가깝기에 불안해서였다. 조정이 진정으로 백성과 한 마음이었다면 나라를 빼앗겼을까, 중심성 빈터에서 역사의 교훈을 새긴다.

징매이고개를 오른쪽으로 끼고 동쪽으로 내리막길은 계양산 장미원으로 이어진다. 다양한 품종의 화사한 장미가 향기를 풍긴다. 길은 폭 10m 가량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었지만 차는 다니지 않아 쾌적한 편이다. 길 양쪽 느티나무가 시원하게 터널을 이뤘다. 산림욕장이다. 계양문화회관까지 오르막 내리막 0.7km를 걸으며 해설가는 겨울에 눈썰매장으로도 훌륭하다고 귀띔한다. 계양문화회관에서 경인여대 앞을 지나 종점 계양산성박물관까지 마지막 0.9km를 채웠다. 힘 들이지 않고 느긋하게 도란도란 재미있게 4시간 동안 1만6천 걸음의 코스였다. 계양산의 품은 넉넉하고 푸근했다. 다음 제2코스는 또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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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기 포인트 > 인천 부평의 진산인 계양산은 자연 생태 역사 문화 콘텐츠를 고르게 갖췄다. 단순한 걷기보다는 해설 안내를 받거나 관련 자료를 미리 살피는 것이 좋다. 인천 종주길 전체 코스는 대부분 한남정맥과 겹치는데 모양이 용의 형상과 비슷하다.

<아쉬운 점> 연무정(궁도장)이 안내도에는 야외공연장 근처로 나와있지만 실제로는 알 수 없거나, 포털 지도에서 연무정을 입력하면 경인교대 북쪽 시립계산궁도장으로 안내한다. 초행자들에겐 혼란스럽다. 지점 간 거리도 실제 표지판과 홈페이지 안내 정보와 다르다. 계양산성박물관에서 임학정까지 거리가 임학정 안내 기둥엔 0.3km, 계양구 홈페이지엔 0.45km로 각각이다. 인천시나 계양구가 관심을 갖고 고쳐주면 좋겠다. 둘레길의 마지막 경로인 계양문화회관에서 경인여대를 지나 야외공연장으로 가는 0.9km구간은 차로 옆으로 시끄럽고 삭막하다. 경인여대 뒤쪽 숲길로 이어주면 좋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