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산 둘레길을 아시나요

2009년 12월 3일 | 울림

계양산의 둘레길
 
  
인천에는 유일하게 큰 산이 한 군데 있다.
큰 산이라 해보았자 395m 밖에 되지 않는 낮은 산이지만 280만 인천 시민들과 인근의 김포나 일산, 
서울 등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계양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삼국시대때 축성된 계양산성을 끼고 오르는 연무정입구는 가장 많은 발길이 닿는 곳이고 
경인여대 뒤쪽인 관리사무소에서 오르는 길은 맑은 약수터가 있어 사랑을 받는 코스이다.
다남동 군부대 근처에서 오르는 길은 계양산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소나무숲으로 이어지는데 인근 
가까운 지역이나 아는 사람들에게만 열려 있는 특별한 곳이다.
한편 경인여대를 지나 산림욕장에서 가는 길은 계양산을 한남정맥으로 이어주는 관문역할을 하면서 
둘레길로 나아가는 통로를 열어주는 코스이기도 하다.
 
계양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에는 울창한 숲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소나무숲 외에 150년 이상 된 갈참나무와 지금까지 한국전쟁의 참화를 겪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된 서어나무 군락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숲길도 있다.
제주도에는 올레길이 있고 지리산에는 매동마을부터 시작하는 둘레길이 있다.
하지만 계양산에는 아직 이름도 지어지지 않은 둘레길이 숨겨져 있는데 높은 산의 올레길이나 둘레길
에 비하여 조금도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숲길이 존재하는 것이다.
계양산의 둘레길은 산림욕장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인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경인교대역에서 내리거나 산림욕장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이번에 새로 
설치해 놓은 징맹이 생태터널쪽으로 올라오면 계양산성 중심성지터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을 지나
면 오른쪽으로 꺽어지는 길이 있는데 둘레길은 여기서부터 이어진다.
 

 

▲ 산림욕장에서 줄곧 오르면 돌밭이 나온다. 사람들은 정성스럽다. 
층층이 돌을 쌓으면서 어떤 마음의 기원을 올렸을까.
 
산일엽초  돌밭 옆에서 발견하였다. 
잎은 같이 한무더기로 있는 것 같지만 한잎 한잎 독립되어 피어있어 일엽초라 한다.
 
 ▲ 민들레  내 님은 누구일까 아직까지 날아가지 않고 있네
 
 ▲ 찔레     군부대옆에서
 
 ▲ 호랑버들
 
 

 가을은 낙엽 밟는 소리에서 시작한다.
‘시몬 나뭇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너는 좋으냐 낙엽밟는 소리가.’ ‘낙엽은 버림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 ~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리니.
레미 드 구르몽의 “낙엽”이란 시이다. 시에서처럼 낙엽은 기울어져 가는 저녁노을같이 우리의 마음을 
정갈하게 가라앉혀 준다.
아무도 밟지 않았던 소소한 낙엽길을 따라 내딛는 발걸음은 시인이 아니더라도 그대로 낭만적이 된다.
 
중심성지터를 지나 돌군락을 돌아 피고개 산아래 철탑쪽으로 오르면 넓지 않은 평지가 나오는데 이곳
에서 왼쪽길에 있는 굵은 줄을 잡고 내려가면 대양개발이 자기네 땅이라고 선을 그어놓은 철책선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가면 가파른 오르막 길이 나오는데 
무릎이 좋지 않다면 중간쯤 오른편에 길이 있으니
그 길로 곧장 간다.
이 길은 가파른 오르막길과 다시 만나게 되는데 수 분 내에 헬리콥터 착륙장에 도착하게 된다.
여기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왼편 아래 길로 가면 계양산의 왼쪽 옆구리쪽에 해당하고 군부대의 뒤쪽
길이기도 한 고즈넉한 낙엽길이 계속된다.
군부대가 나오기 전 푹신한 낙엽에 등을 누이고 나무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햇살을 맞이해
본다. 눈을 감고 숨을 멈추고 코끝으로 들어오는 신선한 숲의 향기를 맡으며 명상에 잠기니 오전 반나절간의 고생이 보상된다.
 
이제 둘레길의 중간을 넘어섰다.
둘레길의 절반은 소나무숲 옆길에서 이어진다.
이곳에서부터 연무정까지 가야 둘레길이 완성되는 것이다.
사실 소나무숲길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길이다.
우리는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가는 것이다.
앞으로 전진하면 낙엽이 쌓이고 이끼가 끼고 물이 흐르는 소개울길이 나온다.
소개울길을 쓰러진 통나무로 이어놓았는데 아슬아슬해 보였는지 그 길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간 흔적이
보인다
소로길을 따라 오르니 주등산로로 이어진 길이 나온다.
이 길은 하느재고개에서 소나무숲길로 내려오면서 만나는 길인데 결국은 연무정까지 이어지는 길인 것
이다.
꼬박 5시간 반이 걸리는 길을 걸으면서도 내내 즐겁고 행복한 마음이 넘쳐 흐른다.
어느 때 다시 이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이 찾아올 수 있을까.
낙엽이 깊게 쌓이고 이끼가 두툼하게 끼어도 찾아가는 길을 기억할 수 있을까.
 
하지만 슬프게도 그 길은 이제 머지않아 없어질 것이다.
아련한 그리움에서 헤어나오기 전, 기억에서 가물가물 사라지기 전에 이 산은 통째로 뒤엎어질 것이다.
개발의 광풍을 타고 무엇이든지 이득이 된다면 골목길 슈퍼라도 하는 대기업의 횡포 때문에 이 길은 곧 골프장이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의 이해가 걸리지 않으면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다.
사라진다 해도 잠시 동정의 눈빛을 보내고 한숨 소리를 곁들이지만 자리를 벗어나면 그 일은 타인의 몫
으로 남는다.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 아니기 때문에 행동으로 나서길 주저한다. 하지만 그것은 고스란히 
내 아이들과 후손들에게 한일합방과 같은 치욕적이고 후회스런 결말을 남겨줄 것이다.
그 날이 오기 전에 다시 이 둘레길을 걷고 싶다.
아름다운 숲 속의 향기가 오래도록 내 나이테를 싸고 돌 수 있도록.

 

 ▲ 대양개발이 자기네 땅이라고 그어놓은 철책선. 오르다 뒤를 보면서 눌렀다. 이 길을 조금 가다 보면 오르막길이 나온다
 
 ▲ 계양산 뒤쪽으로는 이렇게 울창한 숲들이 능선을 덮고 있다. 훼손되지 않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다
 
 ▲ 시몬 나뭇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너는 좋으냐 낙엽밟는 소리가.
낙엽은 버림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리니.
 
 
 ▲ 이제 군부대 뒷길로 이어지는 길이 줄곧 이어져 있다.
 

 

▲ 대양개발 철책선을 넘어 헬리콥터 착륙장을 지나 점점 숲으로 들어갑니다.
 중년의 아름다운 여인을 가방도 앙증맞은 두명의 찍사여인이 경쟁이라도 하는 듯 찍어댑니다. 
 뒷사람들도 흥미로운 뒤돌아서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