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살짝 머금은 3월의 햇살아래 무의도 호룡곡산을 마음에 담고 온 울림이었습니다.
엉덩이만 돌리면 무의도에 닿는 배를 기다리면서 감나무님의 모든야채섞어주스를 마시기도 했고
해안가로 내려와서 싱싱한 굴을 맛보기도 했지만
그 중 참 좋았던 것은 아름다운 생명의 터, 갯벌이 내려다 보이는 산 위에 앉아
폭신한 낙엽 위로 각자 싸온 간식과 우리들의 이야기를 펼쳐놓은 시간이었습니다.
투명한 보랏빛에 녹아드는 마음의 이야기들은 맛있는 포도주보다도 향기로웠습니다.
<그리고 초록지렁이가 무의도에서 들려준 이야기들을 여기에 풀어봅니다>
질문을 잘 해야 잘 산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의 질문은 무엇일까?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 목숨
목숨인 생명에 대한 질문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어떤 질문일까?
세상에 나온 이유, 나의 가치는 무엇일까
생명의 참모습은 무어지? 생명이란 무엇이지? 어떻게 해야 잘 살아가는 것이지?
생명을 가진 자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의 질문을 끊임없이 하는 것.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은 ‘도’
생명이 서로 의지하고 돕고 사는 것. 그것이 도
쪽동백의 눈을 보며
새싹이 나오는 어린 봄, 잎과 가지가 나오는 청년의 여름, 열매가 맺어지는 노년의 가을이 있는데
이 나무에게는 언제가 완성된 때일까요?
열매를 맺는 가을? 왕성한 여름?
사실은 순간 순간이 온전하고 완성된 때입니다
겨울눈, 그 생명에게서 작은 싹이 나는 순간도, 잎을 펼칠 때에도 모두 완성된 때입니다
생명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완성되지 않은 순간이 없어요
나무를 보세요
<나무들의 매순간>
인간만이 생명의 법을 따르지 않고 있어요
늘 완성될 어느 순간을 향해가고 있어요
나무의 지금 이순간. 자연은 허튼 시간, 의미없는 시간이란 없는데
인간은 어떤가요 우리는 어떤가요
과정 자체가 온전한 순간임을 알면 매 순간 순간이 재밌죠
<아침에 출근할때 퇴근시간으로 달려가는 마음과 일주일을 보내며 주말을 기다리던 저의 마음이 떠올랐습니다
무위의 삶이란 내가 일을 하는 것에 마음의 호불호를 담지 않는 것이구나
나와 생각이 행동이 다른 동료를 싫어하거나 미워할 필요가 없이 내 의견을 말해보자
요새 너를 무겁게 하는 그 ‘마음’이란 녀석은 무엇이냐>
우리는 어쩌면 남을 살리기 위해 내가 잘 살아야 하는 것이에요
“어떻게 하면 사랑할 수 있을까?”
이것이 중요한 질문이 되겠지요
싹이 나고 꽃이 피는 봄에, 꽃은 피었으나 이를 한 무언가가 없어요. 그런데 왜 없겠어요
많은 생명들이 꽃을 피웠으나, 내가 했어요 하고 나서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무위. 함없는 함. 하기는 하는데 한 사람이 없는 것.
<이 때 저는 노자의 세가지 보물이 떠올랐습니다. 그 세가지 보물이 참 진리구나.
사랑, 아낌, 나서지 않음.
마음에 조금이라도 이기심이 들어가면 세번째 보물을 잊고 반대로 행동하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참나무가 내가 애벌레를 먹여살렸소 하고 생색내나요? 그러지 않지요.
참나무도 자연으로부터 대가없는 사랑을 받았으므로 애벌레에게 자신의 잎을 사랑으로 내어주지요
무위는 억지로 하지 않고(그리 되지도 않지요) 스스로 그러한 것. 베풀었다고 뽐내지 않는 것.
여기서 무위를 사랑이라고 바꿔도 같지요. 사랑도 무위. 내가 사랑을 준다고 뻐기고 대가를 바라고 그러지 않는 것.
자연이 자연답게 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무위이기 때문이에요
그럼 사랑이 사랑답게 될 수 있는 것도 순전히 무위, 주고도 안준척하는 것이지요.
지금 여기 산에 눈이 다 녹아 사라졌죠. 며칠전까지만해도 있었던 눈이요.
이 눈을 누가 녹였나요? 햇빛이 “여기 눈 내가 다~~ 녹였어.”하고 뽐내고 있나요?
햇빛이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다른 생명들도 아~ 그렇게 하는거구나 하고 닮아있지요
마음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본래의 마음과 에고의 마음.
본래의 마음이 무위의 마음이겠지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바라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그 마음을 잔이라고 표현했어요.
잔을 더이상 키우지 않는 것이 중생이라면, 잔의 수를 줄이는 것이 수행자라고 하네요. 더 나아가서는 잔을 없애라고 말씀하셨답니다.
그 잔을 채울 우물(세상)은 터무니없이 작으니, 자신의 잔을 더이상 늘리고 키우지 않는 것이 우리의 마음공부, 하나의 화두가 됩니다.
그런데 생명사랑과 생명의 눈을 갖지 않으면 잔을 줄일 수가 없는 거예요.
10억명이 살 수 있는 지구에 67억명이 살고 있으니 내가 3끼를 먹으면 지구 반대편의 또다른 내가 두끼를 굶고 있어요.
생명사랑의 눈으로 볼 때 다른 내가 굶고 있는지 지금 내가 내 잔을 키우고 늘릴 수가 있을까
내 생명이 내것인가요?
내것이라는 것이 없지요. 지금 나(초록지렁이)를 보고 초록지렁이 아닌 생명은 다 나가라 하면 남는 것이 있을까요
“우리나라의 중심이 어딘가”하면 흔히 청와대나 서울을 떠올리고,
“네 몸의 중심이 어딘가”하면 심장이나 머리를 말하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 몸에 아픈 곳이 있으면 온 신경이 거기로 가있지 않나요.
즉 내 몸의 중심은 가장 약한 곳 아픈 곳이라는 거죠. (도법스님)
한 나라의 대통령은 자기가 중심이라고 생각하면 안되죠. 우리나라의 가장 약한 곳, 아픈 곳에 시선을 중심을 둘 줄 알아야 하겠죠.
세상의 중심을 생명의 눈으로 보는 것, 그것이 사랑의 마음이죠
생명을 가진 자로서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201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