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울림 후기 2-달팽이의 걸음과 나의 걸음

2013년 12월 11일 | 울림

달팽이의 걸음과 나의 걸음
 
12월 7일 토요일 오전 9시 소라, 병아리, 꽃다지, 여울목, 코알라, 들풀, 초지쌤이 인천에서 출발했다.
청주 터미널로 햇살님을 만나러 가는 동안 문득,
 ‘내 아이를 어떤 아이로 키워야 하는가?’라는 낯익지만 직설적인 질문에 다시 부딪쳤다.
곰곰 생각해보았다. 그래서…….내린 생각.
 
내 아이는 이렇게 컸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
예쁜 것을 보고 예쁘다,
슬픈 것을 보고 슬프다, 라고 느꼈으면.
불의를 보면 분노할 줄 아는 그런 아이였으면.
 
그런 아이가 되려면 먼저 공감할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른 생명이 아름다운지, 예쁜지, 슬퍼하는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모른다면 
함께 공감하기는 힘들 것이다.
요즘 아이들이 타인에 대한 배려와 상대방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
우리 어른들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든 아이 뒤에는 병든 어른이 있기 마련이다.
아침에 딸내미한테 “안 돼!”라고 말하며 나왔던 게 생각나니 괜히 뒷덜미가 땡기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 여행은 이렇게 사람의 마음도 넓게 만들어주니, 또한 좋았다.
 
구미에서 출발하신 햇살님을 청주 터미널에서 11시에 만났다.
이렇게 모인 여덟 분이 올해 울림의 마지막 여행을 함께 떠나게 되었다.
도착한 곳은 충북 괴산 선유동 숨터. 최용순 대표님께서 운영하는 아름다운 흙집 펜션이다.
 
첫날, 거한 점심을 먹고 가을처럼 와있는 겨울을 맞으러 뒷산 오솔길을 거닐었다.
쭉쭉 뻗은 일본산잎깔나무의 고고한 자태를 멀리, 그리고 가까이 보았다.
거뭇거뭇 멍든 마음이 땅으로 내려와 누워있는 은사시 잎사귀를 밟으며 조용히 산길을 올랐다.
구석구석 눈에 뜨이는 작은 생명들을 보며 우리는 마냥 놀라워하며, 즐거워하며 걸었다.
산은 조용했고, 우리의 마음은 조용하기도 했고 들뜨기도 했다.
 
저녁을 먹고 흙집에 둘러앉은 우리들은 
ebs 다큐 ‘하나뿐인 지구’-왜 우리는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가-를 함께 보았다.
농촌에서 흙을 지키는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로움으로 고개가 숙여졌다.
 
빨간 담요 속에 우리의 발들이 모두 모여 수다를 떨 동안
우리들은 “달팽이 안단테”라는 책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달팽이 안단테”는 병든 작가가 바라보는 느림의 미학에 대한 책이다.  
 
달팽이의 걸음과 나의 걸음은 어떤 것일까?
생명의 속도는 생명을 가진 것들이라면 모두 각기 다르다. 
달팽이의 속도, 사람의 속도, 풀의 속도가 다른 것이다. 삶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람도 각기 자기의 생명의 속도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삶의 속도와 내 삶의 속도를 비교할 필요도 없다.
모두 다 “내 삶의 속도”로 살아가면 그만인 것이다.
 
작가는 병을 앓는 동안 움직일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달팽이라는 생명을 만난다.
건강했었더라면 볼 수 없었던 작은 생명체의 놀라운 세계를 알게 된다.
세상을 달리 보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지구 생명체 중 80%는 벌레나 곤충처럼 아주 작은 생명체라고 한다.
인간의 눈이 아니라 그들의 눈높이에서 보아야 볼 수 있는 것들이 그만큼 많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관심과 사랑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다.
일단 그들을 깊이 진정으로  만나야 한다.
 
작가는 작은 아파트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달팽이의 속도로 느리게 살면서
수많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졌고 결국 이렇게 말한다.
 
“달팽이의 타고난 느린 걸음걸이와 고독한 삶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어둠의 시간 속에서 헤매던 나를
인간세계를 넘어선 더 큰 세계로 이끌어주었다.
달팽이는 나의 진정한 스승이다.
그 아주 작은 존재가 내 삶을 지탱해주었다.”
 
밤이 이슥한 시간에 우리들은 별을 보러 밤 마실을 나왔고,
어린아이마냥 고개를 꺾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자리를 찾아보며 길을 따라 다시 돌아왔다.
 
다음 날 찾아간 산막이 옛길은 물과 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길이었다.
그네를 타며 내려다보는 풍경에 모두들 행복해했다.
 
올 마지막 여행은 별과 산과 물, 그리고 우리들이 거기에 있었다.
 
마음 가득 달팽이가 던진 물음 하나 들고 돌아왔다.
 
나는 언제 세상을 달리 보게 되었을까?
혹은, 언제 세상을 달리 보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