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박넝쿨의 큰딸 정승은 회원이신 박순이님,여울님, 먼산님>
많은 분들이 일이 있어 함께 하지 못해 5분만 참석했습니다.
올라가기전 잠시 숨을 고르고 간단한 간식을 먹고 있습니다.
김포문수산은 마치 동네 뒷산 올라가는것 처럼 아담하고 정겨운 산이었습니다.
잘못가신다고 모두 걱정을 많이 했는데 힘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다녀왔습니다.
<소나무아래 피톤치드를 마시며 모두 즐거운표정 >
<여기가 김포 문수산을 나타내주는 이정표>
어디로 갈꺼나
<동막골로 가서 「동막골 사람들」영화나 한편 ....>
<소녀같은 여울님>
저의딸과 박순이님 시민산행과 인연이 되서 회원가입고 하시고 한남정맥시민산행을 든든하게 지켜줄것같은 좋은 예감이 듭니다.
<문수산 정상에서>
먼산님이 우릴 문수산까지 데려다 주셨어요. 먼산님 감사합니다.
<문수산은 다양한 나무들이 많았지만 신갈나무가 많았습니다.>
계양산에서 적은 숫자로만 보이는 떡갈나무가 여기서는 조금 많이 보였습니다.
<문수산성>
갑곶진과 함께 강화의 입구를 지키던 조선시대의 성이다.
조선 숙종 20년(1694)에 돌을 이용해 쌓은 석축산성으로 순조 12년(1812)에 고쳐 쌓았다. 잘 다듬어진 돌로 견고하게 쌓았고, 그 위에 몸을 숨기기 위한 방어시설인 여장을 둘렀다. 당시의 성문은 취예류·공해루 등 3개의 문루와 비밀통로인 암문 3개가 있었다. 이 중 취예루는 갑곶진과 마주보는 해안에 있었으며 육지로 나오는 관문의 역할을 하였다. 현재 해안 쪽의 성벽과 문루는 없어지고 마을이 되었으며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벽만 남아있다.
고종 3년(1866)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치열한 전투를 치른 곳이다.
강화도의 갑곶진(甲串鎭)을 마주보고 있는 해발 376m의 문수산(文殊山)의 험준한 정상부에서 서쪽의 산줄기를 따라 내려가, 문수골과 산성포의 두 계곡을 포용하여 해안지대를 연결한 포곡식의 산성으로, 현재 해안쪽의 성벽과 문루(門樓)는 없어지고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곽은 본래의 것이 남아 있다. 성이 있는 산은 비솔산(比率山) 혹은 비아산(比兒山)·통진산(通津山)이라고도 불려온 산으로 서쪽으로 강화도로 건너는 요충이었다. 고려말 몽고군은 이 산에 올라 강화를 바라보고 건너려 시도하기도 하였다. 산성의 명칭은 문수사(文殊寺)에서 유래하였다.
이 산성은 갑곶진과 더불어 강화 입구를 지키기 위하여, 1694년(숙종(肅宗)20)에 축성되었는데 기록에는 둘레가 5,529보이고, 여장이 2173첩(堞)에 서문·남문·북문이 있었으며, 강화부에 소속되어 별장 한사람과 군관 161인·사병 56명·돈군 6명·수첩군 80명·모입군 72명 등을 두어 지키고 있었다. 이후 1812년 (순조(純祖)12)에 대대적으로 중수되었다. 다듬은 돌로 견고하게 쌓았고 그 뒤에 여장(女墻)을 둘렀다. 당시 성문은 취예루(取豫樓)·공해루(控海樓) 등 세 개의 문루와 세 개의 암문(暗門)이 있었다. 이 가운데 취예루는 갑곶진과 마주보는 해안에 있었으며, 강화에서 육지로 나오는 관문 구실을 하였다.
특히, 이성은 1866년(고종(高宗)3)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치열한 격전을 치룬 곳으로 유명하다. 1866년 9월 7일 프랑스군의 로스제독이 규리르호(號)를 기함(旗艦)으로 하여 포함과 해방함 및 통보함 등 7척으로 600명의 병력을 이끌고 갑곶진에 상륙하여 이튿날 강화성을 점령하고, 18일에는 이곳 문수산성으로 침입하였다. 이때 문수산성에는 봉상시사(奉常寺事) 한성근(韓聖根)이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명령으로 광주(廣州)의 별파군(別破軍) 50명을 이끌고 수비하고 있었다. 프랑스군은 작은 배가 성의 남문밖에 다달아 정박하였는데, 한성근이 이끄는 우리 수비군이 프랑스군을 기습하여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결국 무기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한성근은 후퇴하였는데, 포수 4명이 전사하고 2명이 부상하였으며 1명이 포로로 잡혔다. 프랑스군은 2명이 전사하고 25명이 부상하는 피해를 입자 성안의 민가 29호를 불살라 버렸다. 이 격전으로 해안 가의 성벽과 문루 등의 시설이 파괴되고 성안이 유린되었다.
1995년에 일부가 조사되어 길이 16m이고 너비가10m 규모의 치성(雉城)이 서남쪽 끝에서 확인되었고, 평탄지에서는 성벽이 내외겹축 되어 있었음이 밝혀졌다.
<토종닭인 듯...까만것은 오골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