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와 조사의 차이

2008년 4월 19일 | 회원소모임-기타

 

  제가 아끼는 제자 중에 하나가 어느 날 새를 공부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절더러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 오기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순수 과학을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저이기에 말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씁쓸했습니다. 저는 분류학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대충 그쪽의 분위기는 알고 있기에 몇 글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제가 종종 학생들과 토론을 할 때 등장하는 주제 중에 하나가 연구와 조사입니다. 연구는 무엇이고 조사는 무엇인가를 한 학생이 물어온 적이 있습니다. 대답이 궁한 저는 연구는 끝나고 논문을 쓰는 것이고 조사는 끝나고 보고서를 쓰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후 이와 관련된 내용으로 많은 토의가 진행되었고 그런 과정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생각들이 도출되더군요.

  저는 환경과 관련된 내용으로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환경을 보존하느냐 개발하느냐는 선악의 싸움이 아니다. 우리가 아파트에 살면서, 차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개발을 악으로 간주하는 것은 누워서 침을 뱉는 행위다. 다만 지나친 개발이나 재화를 목적으로 하는 개발을 막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논리의 싸움이다. 논리적으로 어디가 우세한가에 따라서 개발이 될 수도 있고 보존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전 보존, 보전, 보호의 의미를 분명하게 가르치려고 노력합니다. 보존이 어려우면 보전으로 또 그마저도 어려우면 보호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 논리의 싸움에서 우리는 매번 졌고 그래서 결국은 모든 개발을 허용한 것입니다. 그런 논리의 싸움에서 우리의 무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왜 그곳을 보존해야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그래서 전 과거 많은 환경운동가들에게 전문가가 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야만 지킬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많은 영역에서 독자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에게 환경 전문가가 되라는 것은 너무나 큰 부담이었습니다.

  그럼 결국 해결할 길이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는 이미 다양한 분야의 환경 전문가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하지만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잘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생태에 관심이 있고 생물에 관심이 있는 어린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열심히 공부를 해서 석사도 받고 박사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아무리 박사를 받았지만 직장에 취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직장 자체가 얼마 없는 상황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전문 분야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대부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욕을 합니다. 한 때 저도 그랬습니다. 왜? 당신은 연구는 하지 않고 조사만 하십니까? 조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학위가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이런 말을 들은 그들은 속으로 그랬을 겁니다. ‘그럼 난 뭘 먹고 살라는 말이냐? 그렇게 말하는 너희들이 내 생각 한번 해 준적이 있느냐? 너희들이야 직장 있고 먹고 살만 하니까 환경이니 생태니 떠드는것 아니냐? 여가 활동으로 운동삼아 올라갈 산이 없어지는 것이 그렇게 억울하냐?’ 결국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개발의 편에 서서 자연환경조사보고서도 만들어주고 환경영향평가서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돈도 벌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환경과 생태를 부르짖는 환경단체나 운동가들이 얼마나 가증스러워 보였을까요?

  결국 우리는 근본적으로 우리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적으로 내 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까지 그들에 관해 아무런 관심도 없다가 그들의 삶의 방편을 보고 그들을 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타당할까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정답은 제목에 있습니다. 그들에게 조사만이 아닌 연구로도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합니다. 우리는 수가 많고 그들은 수가 적습니다. 물론 전체에 비하면 우리도 수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들 보다는 많습니다. 정부에 건의를 하든, 따지든, 데모를 하든 해야 합니다. 제 솔직한 심정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올라갔으면 하는 것이 바람입니다만, 쉬운 일이 아니겠죠.

  이런 부분이 어렵다면 같은 비중에서 같은 자격으로 환경단체가 참여하는 조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미(나쁘게 말하면) 돈에 발목 잡힌 많은 연구하는 사람들이 개발 쪽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 미련을 가지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마음에도 들지 않는 보고서를 쓰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일을 주는 것입니다. 정말로 자기가 원해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쓸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줘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언제든지 다시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가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저도 제 제자들에게 떳떳하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