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정맥 탐사 보고

2007년 11월 5일 | 성명서/보도자료

한남정맥 탐사보고

                                                               송홍선 농학박사·민속식물연구소장

 

걱정입니다. 시작부터 주제를 벗어날 것 같아서 입니다. 대신에 말을 높이겠습니다. 마무리도 예상할 수 없습니다. 필자는 한남정맥의 몇 번째 구간을 탐사하고 난 지금 무척 지쳐 있습니다. 시간의 개념도 없고, 공간의 관념도 없습니다. 다만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습니다. 낙서수첩을 뒤졌습니다. 어디서 인용했는지 ‘반드시 아이를 낳아본 자만이 산부인과 의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는 구절을 어렴풋이 보았습니다.

필자는 올해 한남정맥을 힘겹게 탐사하고 있습니다. 그 때마다 으레 만나야 하고 부딪쳐야 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곳곳에 자리 잡은 군부대였습니다. 군부대는 마치 임산부가 잉태한 아이처럼 산줄기에 숨어 있었습니다. 아니 산줄기가 군부대를 안전하게 품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필자는 탐사 중 능선을 우회해야 했습니다.
 
불편했지만 불평은 하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상황의 한반도 반쪽에 사는 한 일원이기에 참았습니다.

그렇지만 보기에 좋지 않은 광경을 볼 때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군부대 주변의 갖가지 쓰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군부대 안쪽은 볼 수 없었습니다.

쓰레기가 많지는 않았지만 자잘하게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음료수병, 식량포장지, 폐건전지, 폐타이어, 철조망, 얼크러진 전신줄 등이었습니다. 장소와 표지로 보아 군부대에서 버려진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부대시설물이나 초소 진입로 등에서는 드물게 폐시멘트, 폐벽돌, 폐목 등의 폐자재도 방치돼 있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생활 가구 등이 버려진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쓰레기는 민간인이 몰래 버린 것으로 추측됐습니다. 군부대 쓰레기더미를 쓰레기장으로 착각했던 모양입니다. 정말 보기에 좋지 않았습니다.

몇 개월 전에 군부대 쓰레기로 몸살을 앓았던 김포지역도 탐사 중에 둘러보았습니다. 당시에 떠들썩했기 때문인지 말끔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쓰레기를 수거해 간 모양이었습니다. 보기에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쓰레기더미에 눌려 죽은 식물이 다시 살아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쓰레기더미가 없었다면 소중한 본토식물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한 점이 사뭇 아쉬웠습니다.

이왕 식물 이야기가 나왔으니 몇 마디를 덧붙입니다. 초소 진입로 등의 시설을 하면서 야기된 식생 파괴입니다. 면적이 적어 적당히 넘겨버릴 만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입로 시설 때에 희귀식물이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무릇 위락시설이 들어서기 위한 환경영향평가 때에 발견되는 희귀 동식물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군부대 시설 때의 희귀식물 발견도 매우 중요합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이유만으로 군부대가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이는 한남정맥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산줄기에 해당합니다.

또한 한남정맥은 외국에서 들어온 귀화식물이 산 정상까지 분포지역을 넓히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귀화식물은 생태적으로 나무숲에 침입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군부대의 인위적인 간섭으로 산정까지 침입해 본토식물의 터전을 위협했습니다. 물론 필자는 군부대가 산야를 다소 훼손한다는 데는 동감하지만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좋은 점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군부대 때문에 등반객의 출입이 제한됐던 한남정맥의 몇몇 산줄기는 울창한 나무숲이 형성돼 있었습니다.

아무튼 한남정맥은 경기도 죽산의 칠현산에서 안성, 용인, 안산, 인천을 거쳐 김포의 북성산에서 멈춘 산줄기입니다. 해발 600m 이상의 산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산줄기가 여러 곳에서 단절됐지만 경기도민이 관심을 가져야할 자연자원의 유산입니다. 한남정맥이 잉태한 군부대. 해산의 날은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통일이 되는 날은 몇 곳에서 해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산야의 쓰레기가 줄어들 것입니다. 우리의 자연자원이 더욱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통일에 힘을 보탭시다. 그것이 해산을 도우는 일입니다. 아이를 낳아보지 않아도 산부인과 의사가 될 수 있으니까요.
 
2007. 11. 5 인천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