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 따라, 고라니 만나면, 고라니와 놀려면

2006년 1월 17일 | 갯벌

인천경제자유구역 청라지구에 지금 무슨 일이? 청라지구 고라니 청록파시인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박두진의 ‘해’란 시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고등학교 때 이 시를 접했을 때 선뜻 다가오지 않았다. 사슴을 따라가고, 만나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사슴과 어떻게 놀 수 있다는 말인가. 그동안 나에게 동물의 모습은 하얀 실험실에서 연구되고, 실험되던 동물들이었고, 나의 일용한 양식이 되어주던 동물도 있었다. 버려져 도시의 골칫거리가 된 동물들도 있었고, 철장에 갇혀 아이들의 새우깡이나 과자를 받아먹던 동물의 모습도 기억되곤 했다. 동물은 인간에게 이로운 존재이지만, 그의 생명은 얼마든지 인간의 편의를 위해 하찮아질 수 있는 것이다. 즉, 동물은 이용할 수 있으되, 동물의 친구가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img:DSCN0037.JPG,align=,width=550,height=366,vspace=5,hspace=10,border=1] 경제자유구역 청라지구가 무엇인교? 인천 서구의 한 10차선 중봉로. 운전자들은 마치 카레이서가 된 냥 속도를 겨루고, 광음의 소리로 주변을 압도한다. 이뿐만 아니다. 어느새 은근히 풍기는 매캐한 냄새들로 내 코는 킁킁 대며 발산지를 찾고 있다. 이 냄새의 근원지는 청라지구 바로 옆에 위치한 하수종말처리장, 생활폐기물소각장, 분뇨처리장 등 유해업소에서 내뿜는 연기였다. 그 옆으로는 추수를 끝내고 광량한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아직도 일손을 놓지 못한 농부아저씨의 손발이 바쁘기만 하다. 과연 여긴 어디고,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국제경쟁력과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만들겠다는 미명하에 정부에서는 2003년 인천을 비롯한 전국 3개 구역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하였다. 부산․ 진해, 광양만 그리고 인천이 바로 그곳이다. 그 중 인천은 송도국제도시, 영종지구 그리고 이번에 방문한 청라지구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img:DSC03628.JPG,align=,width=550,height=412,vspace=5,hspace=10,border=1] 서구 경서 연희 원창동 일대에 위치한 이곳은 약 542만평으로 여의도의 6배가 넘는 면적을 자랑(?)한다. 이 광대한 땅은 처음에는 갯벌이었다. 1992년 청라도, 일도, 이도 등 일대의 섬들을 연결하여 매립한 후 농지로 사용해왔다. 이후 인천시, 토지공사, 농업기반공사(구 한국농업공사)는 이곳을 대규모 국제금용 비즈니스 및 관광중심으로 선도하겠다는 부푼 꿈으로 막대한 세금을 퍼부어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가 갔을 때도 이미 한편에서는 택지를 조성하기 위해 분주하게 덤프트럭이 모래를 퍼 나르고 있었다. 심곡천의 갈대밭, 우리들이 살고 있어요. 반면 한쪽 편은 농경지, 그리고 다른 한편은 사람의 손이 잘 닿지 않는 심곡천을 중심으로 드넓은 갈대밭이 펼쳐져 있었다. 황금의 갈대밭은 명주필처럼 부드러운 속살을 가지고 있었고, 바람의 손길에 따라 넘실거렸다. 아무리 보아도 물리지 않는 풍광에 넋을 놓고 있을 터에 저쪽에서 고라니를 봤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말로만 듣던 고라니를 이렇게 빨리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낼 줄 몰랐다. 야생의 습성을 간직하며 사람의 손길을 피하는 고라니가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나도 보고 싶어서 얼른 전망이 좋은 곳으로 올라갔으나 이미 자취를 감춘 후였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 길에 들어섰다. 무성한 갈대밭은 왜 여기에 들어왔냐고 날 나무라는 것 같다. 논리나 사람의 언어는 이들의 세계에서 잊혀진 채, 필요도 없어진 것 같다.   곳곳에는 매립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염생식물과 물컹한 땅은 본래의 습성을 아직도 잊지 못한 채 염분을 밖으로 토해냈다. 마치 눈처럼 땅위에 핀 하얀 꽃을 살짝 찍어 먹어보았다. 미세한 짠맛을 느낄 수 있었다. [img:DSC03663.JPG,align=,width=550,height=412,vspace=5,hspace=10,border=1] 땅 위에 눈이 닿는 곳마다 고라니를 비롯한 너구리, 꿩 등 다양한 동물들의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이미 계양산을 비롯한 인천의 대부분의 산들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까닭에 고라니를 비롯한 야생동물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바로 도로 옆에, 공업 지대 옆으로 이렇게 많은 야생동물이 살고 있다니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img:DSC03678.JPG,align=right,width=230,height=168,vspace=5,hspace=10,border=1]더 이상 나에게 고라니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무래도 마음의 준비가 부족했나보다. 동물원에서 바라보는 동물처럼 한없이 신기롭게, 한없이 불쌍하게만 여긴 건 아니었나 싶다. 동물에 대한 동정과 신비화는 당장의 관심은 이끌어낼 수 있겠지만, 동물과의 진한 연대감과 함께 나눈 우정은 당장의 관심을 지속적인 애정으로 이어질 수 것이다. 또한 이곳은 야생동물뿐만 아니라 철새들에게도 기가 막힌 보금자리였다. 가을 추수가 끝난 평야의 낙곡과 심곡천의 물은 철새들에게 먹이와 쉼터를 제공하여 수천마리의 오리 떼를 볼 수 있었다. 비상하며 이루는 군무를 바라보며 우리는 연신 “와~”라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입은 그렇게, 손도 카메라 셔터 누르기에 사정없이 바쁘게만 돌아갔다. 청라지구는 고라니를 비롯한 동물들과 철새들에게 소중한 보금자리이며, 나에게도 그동안 도시에서 볼 수 없었던 드넓은 하늘과 동식물을 만난 잊지 못할 장소로 기억될 것이다. 철새들이 여유롭게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나도 간만에 여유와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환경영향평가는 이들의 발자국과 날개짓을 부정하다 어떤 지역에 개발 사업을 시행할 경우 그 개발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예측하여 이후 야기될 환경적, 생태적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환경영향평가는 그동안 그 목적에 맞게 잘 운영되었는지는,,, 글쎄 고개가 설레설레 흔들어진다. KTX의 천성산 관통에 관한 환경영향평가 역시 구색 맞추기란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이곳 역시 청라지구에 관한 환경영향평가는 정말 ‘대충, 대충’ 이뤄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실제 눈으로 확인했던 고라니는 이곳에 살고 있지 않는 것으로 조사되었고, 철새들의 보금자리에 관한 대책도 실증적인 연구나 조사 없이 다른 곳으로 날아가면 되지 않겠냐라는 무책임한 대책만 늘어놓았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눈앞에 있는 그대로를 믿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진실한 일은 눈앞의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일들을 훌쩍 건너 뛰어간 이유는 무엇일가. 또한 이 뿐만 아니라 지금 경제자유구역 사업은 이런 환경적 측면뿐만 아니라 중복투자로 인한 혈세낭비나 부풀려진 수요, 성과주의 운영 등의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img:DSC03742.JPG,align=,width=550,height=412,vspace=5,hspace=10,border=1] 고라니 따라 고라니 만나면 고라니와 놀려면 청라지구에서 우리는 고라니의 발자국과 똥을 따라 고라니를 만났으나, 친해지지는 못했다. 서로의 생의 온기를 미처 확인하기도 전에 고라니는 우리를 피해 도망쳤다. 이 발걸음은 닭살 커플처럼 “나 잡아봐라~”하는 사랑스런 애정행각이 아닌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달아남이었다.  지금과 같은 환경영향평가와 개발계획은 이후 철새나 이곳에 사는 야생동물의 행방은 알 수 없게 만들 것이다. 어떻게 하면 고라니에게도, 인간에게도 이로운 길을 찾아낼 것인가는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구해야 할 것이다. 고라니를 따라, 고라니를 만나면, 고라니와 함께 놀고 싶은 우리의 소망이 있는 한 언젠가는 그런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2006.    1.    17                                                                  생태도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