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산 나무 위 일기: 16일째-17일째

2006년 11월 15일 | 한남정맥•공원녹지

나무 위 시위가 장기전으로 진행되면서 슬슬 책을 읽을 여유도 생긴다.모임의 선배가 보내 준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을 읽으며 어떻게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 옳은 지 우리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잃어가며 살아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했다. 11.10 (금) “16일째” 루게릭 병으로 하반신부터 서서히 제 기능을 잃어가는 은사님 모리를 만나 그가 죽기 전까지 함께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한 글인데 마음에 들어왔던 여러 부분 중 일부를 따로 적어보았다. “경험에서 벗어나기” “감정들에 온전히 자신을 던지면, 그래서 스스로 그 안에 빠져들도록 내버려두면, 그래서 온몸이 쑥 빠져들어가 버리면, 그때는 온전하게 그 감정들을 경허말 수 있네. 고통이 뭐지 알게 되지. 사랑이 뭔지 알게 되네. 슬픔이 뭔지 알게 되네. 그럼 그때서야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좋아, 난 지금껏 그 감정을 충분히 경험했어. 이젠 그 감정을 너무도 잘 알아. 그럼 이젠 잠시 그 감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겠군.’이라고 말이야” [img:025.jpg,align=right,width=290,height=210,vspace=0,hspace=5,border=0]일상생활에서도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얼마나 외로운가. 어떤때는 눈물이 날 정도로 쓸쓸하지만, 울어선 안되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혹은 상대에게 사랑이 솟아 남을 느끼면서도, 그렇게 말하면 관계가 변할까봐, 두려워서 입을 다물어 버린다. 모리선생님의 접근법은 완전히 반대다.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감정으로 세수를 한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상하지 않는다. 도움이 되면 도움이 됐지. 경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매 순간 모든 경험에 충실해야 하지 않는지… 11.11(토) “17일째” 바람을 대신해 나무의 가지를 잘라준다. 나무의사 우종영 선생은 신을 대신해서 자연을 대신해 나무를 돌보는 소명을 가진것이다고 생각하며, 새를 대신해 벌레를 잡아주고, 바람을 대신해 가지를 잘라주고, 비를 대신 해 물을 뿌려준다. 바람을 대신해 나무의 가지를 잘라준다는 것은 즉, 바람이 나무의 가지를 잘라준다는 것인데… 전혀 생각도 못 했던 바람의 가지치기 난 지난 바람이 많이 불던 날 밤 가지가 바람에 잘리는 것을 보았다. 엄청난 바람에 의해 무참히 나뭇가지가 잘려나간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의 약한 부분, 쳐내야만 하는 부분을 바람이 잘라줬구나. 나무가 바람의 도움을 받는거구나. 바람이 나무에게 폭력을 가한 것이 아니었구나… 어쩌면 다시 거센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 잘리는 소리를 들어도 그때 겁먹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지치기를 해주는 바람의 손길을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11월 12일(일) “18일째” “엄마 저 조만간 산으로 출장가요” “얼마나?” “한 보름쯤” “어디로 가는데 그렇게 오래가냐. 보름내 안오냐?” “응. 그냥 산으로 가” 대충 얼버우리며 장기간 집을 비우게 될 것이라 미리 통보하고 “엄마 나 출장 잘 갔다 올께요. 한 11월 10일 경에 올꺼야!”라며 나무에 오르는 아침 커다란 베낭을 지고 집에서 나왔다. 그때 본 엄마의 모습 이후 18일만에 처음이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방학마다 시골을 갔던 시절 이후로는 그렇게 오래 집을 비우고 부모님 식구들 모습을 못 본게 처음이네… (물론 밖으로 여행을 다니고 한둘안은 다른곳에 두어달 머물기도 했지만 그때도 일주일에 한 번은 집에 왔었다.) 여행도 길어야 3박 4일 5박 6일이었고 그렇게 출장간다고 하며 나와 놓고서는 지역 언론사에서 취재가 들어오고 어떻게든 내가 아닌 다른 경로로 부모님이 아시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그보다는 내 입으로 말씀드리지 낫을 것 같아 나무에 오른지 이틀째 전화로 말씀드리긴 했었다. 하지만 굳은 날씨가 계속될 날은 점점 추워지고 걱정하시는 부모님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엄마, 아빠 번갈아가며 전화하시며 당장 내려오라시고, 가서 끌어내리기전에 들어오라는 엄포를 놓으셨다. 그런 부모님이 오신다고 전화를 하셨다. 전날 핸펀베터리가 빨리 닳아서 내내 꺼져있었는데 통화가 되지 않아 얼마나 마음 조리셨으면… “뭣하러와! 오지마! 안와도 건강하게 있으니까 오지마!” 하며 오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내 행동이 부끄럽다거나 후회를 한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이 모습을 부모님께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겉으로는 강한 모습을 보이시지만 이 모습 보면 속이 얼마나 타실런지… 마음 아파할 부모님께 너무나도 죄송하기에… 오시는 길에 뭐 먹고 싶은 거 없는지 묻는 전화에 “쫄면”을 얘기했더니 쫄면 한그릇과 사람들이 먹을 김밥을 사오셨다. 눈도 못 마주치고 계속흐르는 눈물 콧물에 자주 등을 보였다. 멀리서부터 오시면서 손을 흔들어주셨지만 막상 얼굴 빛이 붉어진 엄마, 나무 위에 올라있을 딸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자주 땅으로 떨구시는 아빠. 화난 사람처럼 무표정으로 응시하는 동생. 모두다 걱정과 염려가 담긴 애정의 모습이었다. 아무쪼록 아프지 않게 건강히 잘 보내고 잘 해결되서 빨리 내려가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인 것 같다. 엄마, 아빠.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