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정맥시민탐사⑦] 용인의 진산 석성산

2007년 10월 29일 | 한남정맥•공원녹지

이번 일곱번째 진행되는 한남정맥 시민탐사는 이틀에 걸쳐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에 위치한 향린동산부터 시작되어 할미성, 석성산, 멱조고개, 부아산, 명지대학교까지 이어지는 약 1.6km에 이르는 구간이었다. 향린촌과 할미산성 동백리 향린촌은 정치․사회적인 변화가 심하고 서울의 인구집중, 도시공해문제가 제기되면서 전원도시를 그리워할 무렵인 1970년 숨 막히는 도시를 벗어나 푸른 숲, 맑은 물,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나무와 꽃을 심고 가꾸어 알뜰한 정원을 꾸며 살기 위하여 향린교회 교인 30명을 포함해 초기 100여명이 황무지 야산이었던 이곳을 개간하여 만들었다. 향린촌은 경기 용인시 구성읍 동백리에 약 23만평의 야산 능선에 둘러쌓인 협곡과 분지로 88골프장과 경계를 맞대고 있고, 한 가운데 냇물과 전답을 두고 있는 전원주택단지이다. 한남정맥 안자락에 자리잡은 부촌 향린동산 산길에 흉물스럽게 방치된 향린동산 경계철조망 오붓한 이야기를 나눌 틈도 없이 이내 향린정상로 이정표가 보이고 이곳에서 왼쪽으로 접어 빙 돌아가면 갈래길이 나오고 왼쪽으로 가면 향수산등산로라는 푯말이 소나무에 걸려있다. 정맥은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경계울타리로 보이는 흉물스런 녹슨 철망을 따라 편하게 걷다보면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가 보이고 갑자기 급해진 능선 길을 힘들게 오르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할미산(349m)에 도착한다. 인천녹색연합의 신정은(여)간사는 “기능을 이미 상실한 철조망이나 산불감시초소는 철거하여 원래 숲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좋겠다.”며 “방치되고 있는 철조망은 자연경관을 헤칠 뿐 아니라 자라는 나무의 껍질을 뚫고 들어가 나무를 죽게 할 수도 있다.”고 나지막하게 말한다. 초소의 사다리는 이미 벌겋게 녹슬고 중간 계단이 떨어져 나간 지 오래다. 지나가는 등산객이 전망을 내려다보기 위해 초소에 오르다간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는데 저토록 방치해 놓은 것을 이해할 수 없다. 할미산성은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과 처인구 포곡읍의 경계에 위치한 할미산의 정상과 그 남쪽의 능선 일부를 둘러싼 석축산성을 일컫는다. 산성에 대한 기록은 증보동국문헌비고에 폐성되었다고 등장한 이후 어디에도 확인되지 않다가 일제 감정기에 간행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석루 둘레가 약 4백 칸이고 전부 분리되었다는 기록과 고려시대 한 노파가 하룻밤에 쌓았다고 ‘노고성’이라는 이름 붙여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한 전국에 산재된 문화재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간행된 문화유적총괄는 마고선녀라 불리는 한 노파가 성을 축성했다는 전설로 일명 ‘할미성’이라 한다. 하지만 2005년 경기도박물관의 시굴조사에 의하면 성 내부에서 수구지, 토광, 건물지가 확인되고 유물로 철제류 일부와 신라계 토기류가 채집되어 신라가 한강유역 진출시기인 6세기경에 축조되어 한정적으로 사용된 성으로 보고 있다. 한남정맥을 밟고 있는 시민탐사단 미끄러지듯 숲을 헤치고 빠져나가는 능선 길은 차량의 경적소리가 울릴 무렵 절개지를 피해 오른쪽 콘크리트 수로를 따라 내려서면 바로 작고개이다. 양보라는 도로 표지판이 반기며 도로를 조심스레 건너라고 경고하는 듯싶다. 차량의 흐름을 보아 무단횡단을 다시 한다. ‘용인의 산수이야기’의 저자 이제학(57)씨는 “작고개는 원래 잣고개로 잣나무로 만든 배가 지나갔다는 전설과 잣나무가 많았다는 고개로 한자는 백현이다. 동백지구의 백현과 같은 고개로 전대리에서 어정으로 넘던 고개다.”고 말한다. 도로 건너에는 터키군 참전기념비가 푸른 하늘을 품고 있다. 터키 참전기념비를 두고 왼쪽으로 뚜벅뚜벅 몇 걸음 걸으면 에버랜드 마성요금소가 보이고 산길로 들어서는 축대 앞에 검은 마가실서낭(麻姑仙人) 비석이 겸허하게 세월을 억누르고 서 있다. 용인의 진산 석성산 근처에 꽃향유와 고마리가 환한 미소로 지친 산행을 격려한다. 완만할 줄 알았던 길은 서서히 고도를 높이고 숨을 고르며 땀을 닦아낼 즈음 동백리 이정표가 보이는 바위봉에 도착한다. 잠시 오던 길을 되돌아보면 할미성과 주변의 향린촌이 손에 잡힐 듯 한 눈에 들어온다. 석성산에서 바라본 용인의 택지개발지역 발걸음을 옮기면 편하게 가다가 바위지대가 나오고 나무계단이 이어지는데 계단과 줄을 매단 비탈길을 오르니 쉼터와 태극기가 펄럭이는 석성산(471m)에 다다른다. 여기선 대규모의 택지 단지인 용인의 동백지구와 끊임없는 난개발이 지속되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타워크레인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얕은 산들이 마을을 품었을 저곳은 급격한 도시화로 야금야금 그칠 줄 모르는 훼손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신 간사는 “예전의 용인과 지금의 용인을 비교할 수 있는 항공사진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무분별한 개발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제학 씨는 “석성산은 용인의 진산으로 옛 성이 있어 성산으로 불리고 옛날 통신수단인 봉수대가 있던 곳으로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을 피워 나라의 변고를 알렸다.”고 말한다. 석성산 안내판 석성산에서 몇 발짝 옮기면 헬기장이 나오고 직진하면 통신대의 철망을 지나가야 하는데 가파르게 떨어지는 경사라 위험하다. 정맥의 의미만 새기고 왼쪽 나무계단으로 내려서면 가시여뀌가 수줍은 미소를 띠고 손짓하고 곧 또래산악회가 세운 성산등산로표지판 옆으로 성산샘터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성산샘은 서울에 사는 큰 벼슬아치가 돌아가신 부친을 모실 명당을 찾아 지관을 데리고 남쪽지방을 다 둘러 봐도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용인을 지나다가 성산이 마음에 끌려 올라가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중에 동부 8부쯤 높은 곳에서 명당을 찾았다. 날을 잡아 이곳으로 부친의 묘를 이장하기로 하고 상여가 길도 없는 현장에 도착, 인부들이 땅을 파니 땅 속에서 큰  물이 솟구쳐 가만두면 산 아래 마을에 홍수가 날 것 같았다. 벼슬아치는 크게 놀라 지관에게 연유를 물었더니 “이 산이 호랑이 형상이고, 이 터가 호랑이의 눈으로 눈물샘을 건드려 물이 나오는 것으로 이 일을 막으려면 저기 큰 바위를 옮겨 물구멍을 막아야 한다.”하여 천신만고 끝에 큰 바위로 물을 막으니 물이 잡히고 바위틈에서 조금씩 샘물이 솟아 지금의 약수터가 됐다고 한다. 호랑이 눈물샘이었다는 석성산 샘 약수터에서 통화사로 가는 길은 내리막길로 좁다. 통화사에서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가면 문화 복지나 행정타운 쪽으로 가는 이정표가 나오고 진행하다보면 편안한 산책길이 이어진다. 거대한 송전철탑이 떡하니 자리하고 길고 가파른 나무계단을 땀 뻘뻘 흘리며 오르면 나무의자가 반기지만 오른쪽으로 조금 가면 324봉이다. 봉우리에서 곧바로 가는 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송전철탑이 나오고 더 내려가면 고개에 이른다. 동백지구에서 삼가동으로 넘는 메주고개는 멱조현고개다. 예전에는 2차선이었는데 이젠 건너기도 힘들 정도로 도로 폭이 넓다. 이곳은 수여선 증기열차가 힘겹게 넘었던 고개로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살리려 등에 업은 아이를 호랑이에게 주었다는 슬픈 사연이 전해 내려온다. 그런데 길 따라 경천철공사가 진행 중이다.   용인경전철이 들어설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 42번국도의 고갯마루 건너편에는 용인정신병원과 효자병원이 자리 잡고 현대오일뱅크 주유소가 차에게 먹을거리를 먹이고 있다. 길을 건너 신작로를 따라가다 절개지에 오르니 고마리 군락지가 나오고 서서히 오르면 송전탑공사 때문에 만들어진 임도가 나오고 왼쪽 뒤에 거대한 송전탑이 거인처럼 서 내려다보고 있다. 어찌나 높은지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임도를 따라 진행하면 김해김씨의 묘지가 있고 주변에는 봄에 핀다는 제비꽃과 조개나물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곧게 나가면 65번 송전탑이 나오고 이곳에서 부아산에 오르른 길엔 송전탑이 계속 따라온다. 아니 송전탑이 길을 안내한다. 임도는 건장한 어른 두 사람이 다닐 만큼 그 폭이 넓고 여전히 바퀴자국은 선명했다. 시민탐사대를 이끄는 신 간사는 “공사를 마치고 복원을 하여야 하는데 슬그머니 방치한 느낌이 든다.”며 “안식년을 두 해만 두어도 숲은 되살아나지 않을까.” 조심스레 말을 잇는다. 송전탑 설치후 방치된 산길 줄줄이 이어진 마루금 위의 송전탑 좌우측에 들어 선 송전탑 주변엔 가을들꽃이 환하게 미소를 보내주고 있다. 쥐꼬리망초를 비롯하여 산부추, 쑥부쟁이, 좁쌀풀, 왕고들빼기, 톱풀, 장구채 등 다양한 종들이 자라고 있었다. 마루금을 따라 이어지는 송전탑은 폭격을 받은 공간처럼 산자락을 커다랗게 도려내었다. 과연 생태를 살리고 고압선에서 나오는 전자파로 여러 문제가 되고 있는 현재, 기술적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철탑을 지나갈 때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신갈선과 수원선의 철탑을 번갈아 지나 24번 송전탑을 기점으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갈림길에서 왼쪽 숲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절개지가 나오고 철제계단을 이용해 절개지를 내려오면 영진골프랜드 앞 도로가 놓여있다. 이 도로는 기흥읍 지곡리와 용인시 산가동을 이어주기도 한다. 건너편 절개지를 도로 따라 조심스레 오르다 정맥을 알리는 리본이 여러 개 걸려있는 숲으로 들어가면 좁은 길이 이어진다. 이곳부터 서서히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조금 올라가면 산길 옆으로 서어나무 100여 그루가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다. 정상으로 발길을 옮길 무렵 길 가운데 이상한 연체동물이 쓰러져있다. 하얀 색의 동물이 밟혀 상처가 난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는데 쭈그려 살펴보니 민달팽이 암수가 사랑을 나누고 있지 않는가. 두 마리 어른 손가락만 하다. 흰색과 여한 밤색을 하고 있는 두 친구를 낙엽에 담아 숲으로 옮기고 나서야 가파른 길을 올랐다. 급 오름길 오른쪽에 밧줄이 매달려 있다. 정상에는 통신중계탑과 육각정자와 운동시설이 있는데 여기가 바로 부아산(403m)이다. 왼쪽으로 내려가면 부아산 거북바위가 부아산 정상을 올려다보고 있다. 이름뿐인 에코브릿지 다시 올라와 오른쪽 급경사에 설치된 나무계단으로 내려가다 올라와서 다시 완만한 능선 길로 내려가면 사용하지 않아 이끼와 낙엽이 뒹구는 운동시설이 쓸쓸하게 놓여있다. 가다 오르면 위험표지판과 이정표가 있는 부이산 정상에 이른다. 왼쪽 길로 걷다보면 용인대가 시야에 들어오고 오른편엔 공원묘지가 보이는데 119긴급표지판이 있다. 여기서 다시 내려가면 하고개 절개지 상단부에 서 있게 된다. 아찔하게 깎아놓은 절개지는 15m는 훨씬 넘는 낭떠러지였다. 하고개 에코브릿지의 실체 1 하고개 에코브릿지의 실체 2 원래 터널을 뚫어야 했는데 산허리를 절단하고서 차량통행에 지장이 없는 높이만큼 복개한 후 하중을 고려 흙만 살짝 덮어 놓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곳을 에코브리지로 선정한 것일까. 생태보호와 환경보존을 위하여 단절된 동물의 이동통로를 확보하고 기존의 임상과 연계하여 자연친화적으로 설치했다고 당당하게 표지석을 만들어 놓았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뱀같은 파충류라면 몰라도 네발달린 동물은 굴러 떨어져 크게 다치거나 추락하여 죽을 것 같은 느낌이다. 오른쪽 비탈길로 내려가니 운동장 크기의 상판에는 볼품사납게 가장자리만 나무를 심어놓고 나머지는 무릎만큼 자란 잡초가 가득하다. 마치 전시행정의 표본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다시 길을 나서는데 어린 뱀 한 마리 쑥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다 이내 꼬리를 감춘다. 마루금에 들어서니 시들었지만 자태가 우아한 삽추가 인사한다. 편안하게 걷다보면 숲길은 참 아름답고 고요하고 난개발이 일어나지 않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오른쪽 길로 들어서니 서울공원묘원이 눈에 들어오고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오다 함박산 못 미쳐 작은 갈림길에서 명지대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하루를 정리해야할 시간이다.                                                                                                       글쓴이 : 시민탐사단 이종대 ◎ 시민탐사 석성산 탐사일짜 : 2007년 10월 13일~14일 탐사구간 : 향린동산~할미성~석성산~멱조고개~부아산~명지대 갈림길 참가자 : 정맥탐사팀 – 이종대, 장영록, 추성남기자 , 신정은             하천조사팀 – 장정구, 노현기 도움주신분 : ‘용인의 산수이야기’ 저자 이제학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