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늘, 계양산품에 들다

2008년 7월 22일 | 한남정맥•공원녹지

어렸을 때부터 난 계양산과 인연이 많았다. 등산을 좋아하시는 어머니 아버지 덕분에 나는 계양산과 접촉할 기회가 많았다. 때문에 계양산과의 추억도 많았다. 산에서 내려온 뒤 외할머니께서 직접 해주신 콩국수를 먹으며 영심이를 보던 추억, 산을 두 다리로 내려가기 싫어서 꼬리뼈가 다친 척 꾀병을 부린 사촌언니를 아버지께서 직접 업고 내려오셨던 추억, 유난히 겁이 많으신 할아버지께서 아이처럼 어머니의 팔을 꼭 붙잡고 산을 내려오셨던 추억…….그땐 별거 아니었던 이런 추억들이 지금 까지 내 가슴속에 남아있었기에 난 계양 산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입시와 항상 반복되는 일상 때문에 계양산은  내 관심사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3년간 입시라는 굴레에서 슬럼프에 빠져 허우적대는 내게 학교 선생님께서 봉사활동 차 인천녹색연합에서 주관하는 계양 산 청소년 체험학교 ‘인천의 진산, 계양산 품에 들다’에 갔다 오라고 하셨다. 고 3이라는 신분에서 내신과 수능 때문에 시달렸던 나는 이틀 동안만은 모두 잊고 다른 것에 눈을 돌리자는 생각에서 난 흔쾌히 가겠다고 했다. 그 순간 내 가슴에 걸려있던 기억 한 줌은 계양 산에 대한 애착을 다시 불러일으키며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난 부푼 마음을 안고 계양산 청소년 캠프에 참가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계양 산 이라는 한 범주 안에 들어가는 곳이었지만 첫날 갔던 계양 산의 습지와 둘째 날 갔던 계양 산 등산코스에 대한 느낌은 매우 달랐다. 첫날 갔던 다남동일대는 계양 산을 많이 다녔던 내게도 정말 생소한 공간이었다. 내가 자주 가던 길은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전형적인 등산로였기 때문이다. 전혀 계양 산 이라고 느껴지지 않은 그 습지에서 난 정말 ‘귀한’ 생물들을 봤다. 잎을 먹고 있는 애벌레와 나비가 되기 위해 번데기가 된 애벌레를 보면서 문득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분명히 이 애벌레들도 나비가 되기 위해 잎을 먹고 성장하여 번데기가 되어 기다리며 희망을 품고 있을 것이다. 이 희망을 짓밟지 않기 위해선 나중에 나비가 되었을 때 서식할 계양 산을 파괴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본 장수풍뎅이도 인상 깊었다. 동물 키우는 것을 좋아하는 남동생덕분에 집에서 장수풍뎅이를 키운 적이 있었다. 그때 장수풍뎅이가 흙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아서 몇 개월 동안 키웠는데도 잠깐잠깐만 봤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나비농장에서 장수풍뎅이를 보자 뭔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은 이모네서 잘 크고 있을 장수풍뎅이들에 대한 생각을 잠시 접은 채 나는 나비농장의 장수풍뎅이들의 광택에 넋을 잃고 말았다. 



이 앞의 나비와 장수풍뎅이도 멋졌지만 정말 인상 깊었던, 내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은 ‘개망초 밭’이었다. 온 세상에 소금을 뿌려놓은 듯이 새하얗던 그 꽃밭은 내가 소설을 보면서 상상했던 아름다운 광경을 누군가 그대로 옮겨놓은 듯이 정말 멋지게 펼쳐져 있었다. 만약 ‘메밀꽃 필 무렵’을 영화로 제작한다 했을 때 마땅한 메밀꽃 밭이 없다면 이곳을 촬영지로 선정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찔한 꽃 내음을 맡으며 하얀 들판 사이에 난 길을 걸어가며 난 꿈을 꾸는 듯 했다.알고 보니 그 곳은 롯데에서 2006년에 골프장을 짓기 위해 훼손되었던 ‘숲’이었다. 롯데가 계양구청으로부터 원상회복 명령을 받고  심었던 나무들이 죽는 대신 이 곳에 많은 개망초가 피게 된 것이었다. 이것을 보면서 자연의 뛰어난 자생력에 대해 많이 놀랐다. 그곳이 울창한 숲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개망초가 2년 만에 번성하였다는 것은 우리의 환경 보전에 대한 노력과 자연의 뛰어난 자생력이 결합한다면 틀림없이 예전처럼 좋은 환경으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겨주었다.

첫째 날이 자연의 아름다움과 놀라움에 대해 감탄을 한 날이라면, 둘째 날은 계양 산의 생태 파괴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게 된 날이었다. 그날 내가 어렸을 때부터 많이 갔던 등산로를 가게 되었다. 계양 산에 대해 내 머릿속에 남아있던 추억이 남아있는 공간이라 첫째 날보다 좀 더 기대를 많이 했었다. 그런데 몇 년 만에 찾아온 그 곳은 예전보다 등산로가 더 넓어져 있었다. 예전보다 좀 더 삭막해 졌다고 생각한 것은 내 기분 탓이었을까. 차라리 어제 갔던 곳이 더 낫다고 할 정도로 볼품이 없어보였다. 계양구청 쪽에서 등산로 너비에 로프를 이용해 제한을 두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었다. 넓어진 등산로 덕분에 흙탕물 웅덩이가 생겨 등산을 할 때 많이 미끄러웠고 그 덕분에 신발 밑창이 떨어져버렸다. 신발 밑창이 덜렁거리고 나서야 계양 산의 환경 파괴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계양 산의 자연 파괴에 대해 더 큰 심각성을 느끼게 된 때는 인천 녹색연합 사무실을 왔을 때였다. 사무실에서 조끼리 게임을 하게 됐다. 그 게임인 즉, 조마다 사진을 부여받은 뒤 다른 조에서 그 사진을 찢고 나서 그 사진을 다시 퍼즐처럼 맞추는 게임이었다. 내가 속한 조는 정말 어떻게 맞춰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고 결국 제한시간 내에 퍼즐을 맞추지 못했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을 파괴한 뒤 원상태로 돌려놓는다는 것이 정말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동안 나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생명들을 가리가리 찢어버리고 짓밟았을까. 그리고 그 생명들은 나에 의해 얼마나 피를 흘리고 죽어갔을까 라는 생각을 하자 뭔가 잘못돼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 또는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뿐인데, 그 인간이란 종하나, 나 하나 때문에 너무나 많은 생명들이 죽어나갔다. ‘이제 더 이상 이 생명들을 죽게 해선 안 된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떻게 하면 생명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불현듯 생각난 화제는 ‘계양 산 골프장 개발’이었다.
 
요즘 인터넷 검색창에 ‘계양산’을 치면 관련 블로그나 신문 기사에는 ‘계양산 골프장’이라는 내용이 주로 나온다. 롯데에서 계양 산에 골프장을 비롯한 테마파크를 만들려고 하고 있고 그것에 대해 인천시민의 대부분이 반대를 하고 있지만 계양구청장은 그들에게 일방적인 특혜행정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나로서는 이것이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연히 골프장 유치보단 생태보호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그들의 의견에 대해 들어보지도 않고 내 의견을 밀어붙이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계양산에 골프장을 유치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들은 어떤 논리로 이런 주장을 내세우는가에 대해 의견을 들어보고, 그것에 하자가 없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그들이 내세우는 논리중 하나는 ‘계양 산에서 나올 수 있는 산소량이 약 12톤으로, 인천시 인구 270만 명을 부양할 수 없는 적은 양이기 때문에 계양 산을 골프장으로 만들어도 별로 지장이 없다. 이것을 가지고 인천시민의 허파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여 지역주민을 혼란하게 한다.’는 논리이다.  2005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계양구에서 약 32만 명의 시민이 산다고 조사됐다. 그리고 계양 산에서 나오는 산소 12톤은 54만 명의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양이다. 그렇다면 이 양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계양 산에 있는 산소만으로도 계양구 시민이 산소를 이용하고도 산소가 남으며, 이것이 산소 이용에 있어서 인천시 인구의 약 5분의 1을 부양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만약 계양 산에서 나오는 산소 12톤이 없어진다면 인천시 인구의 20퍼센트가 이용할 수 있는 산소량이 없어지므로 나머지 양으로 인천시 시민 모두가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인천시 시민들에겐 치명적인 상황이 된다. 이것으로 봤을 때 계양산은 인천시의 허파구실을 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꼭 인천시 인구 전체를 부양할 수 있는 만큼의 산소가 나와야만 인천의 허파구실을 할 수 있다는 그들의 논리는 어불성설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두 번째 논리는 ‘골프장 사업자가 가지고 있는 면적은 75만평 정도이고 현행법상 개발이 불가능한 해발 130m이상은 건드리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 사업이 조성될 수 있는 면적은 30만평정도이다. 게다가 그곳은 친환경 골프장을 전제로 한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사업자가 가지고 있는 곳에서 실제로 우리가 보호해야 할 동식물은 108과 333속 540종이다. 이것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인데, 아무리 친환경 잔디로 골프장을 만든다 해도 골프장을 건설할 때 땅을 1미터정도 파낸 뒤 골프장 잔디를 심기 때문에 그 곳에 살고 있던 모든 동식물은 살 곳을 잃게 된다.  또한 친환경적인 잔디를 심는다 해도 그 잔디의 종은 한 가지이다. 만약 정말 골프장을 세운다면 우리는 골프장 때문에  동식물 540종이라는 다양성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 자리엔 한 종류의 획일성으로 인한 황량함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30만평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그 곳에 손을 대는 순간부터 어마어마한 양의 생물들이 죽게 되며 그들이 말하는 ‘친환경적’이라는 단어는 무용지물이 된다.
 

  나는 인천에서 태어났고 앞으로 사범대에 진학해서 인천에서 교사가 되어 인천에서 결혼한 뒤 애를 낳고 살 생각이다. 그리고 내가 가르치는 학생과 내 아이를 데리고 계양 산으로 가서 내가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느꼈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슴 벅참을 그 아이들에게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단순히 입시지옥에서 잠시만이라도 한 발짝 물러서기 위해 참가했던 이 프로그램은 나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상기시킴과 동시에 나에게 많은 것을 가슴에 안겨주었다. 그리고 내가 이 아이들에게 계양 산에 대한 추억을 남겨주는 동시에 내가 느낀 모든 것을 그대로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나는 대학에 진학한 뒤 환경 운동에 참가해 계양 산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전개할 것이다. 그 때까지 인천시 시민 분들이 계양 산을 골프장 개발로부터 보호해 주시길 바라며 인천시와 계양구청에서도 골프장 개발에 대해 좀 더 검토해 봤으면 한다.


                                                                                           인천 진산고등학교 3학년 이하늘



* 이 글은 지난 7월에 있었던 제1회 청소년체험학교 참가후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