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눈물의 기억 ‘태안’을 다녀오다
‘우리나라의 자연생태계나 자연 및 문화경관을 대표하는 지역’이라는 의미를 지닌 국립공원. 그 국립공원 중 유일하게 해안국립공원인 태안은 작년 12월 7일 큰 피해를 입었다. 삼성중공업의 바지선과 홍콩에 정박 중인 허베이스트리트호가 충돌하면서 어마어마한 원유를 흘렸기 때문이다. 약 1여년의 시간이 지난 11월 8일 지금의 태안을 가게 되었다.
12시경 태안 해안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 도착했다. 들어가 보니 당시 상황을 짐작케 해주는 돌들이 있었다. 방제 작업으로 서서히 깨끗해져가는 돌들의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그런데 비교를 하는 듯 돌 2개가 나란히 있었다. 앞에 있는 푯말을 보니 하나는 바닷물로, 나머지는 민물로 방제 작업을 한 돌이라고 한다. 설명해주시는 분의 말씀을 들으니 방제 작업을 한 후, 바닷물로 한 돌은 원유가 덜 닦이긴 했으나 서서히 사라져가면서 생물들이 살기 시작했고 민물로 한 돌은 정말 깨끗하지만 생물들이 살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리고 포크레인으로 땅을 갈면서 원유를 하나하나 다 닦았지만 예전처럼 생물들이 살지 않는다고도 하셨다.
저 깨끗한 돌만큼 땅만큼 인간의 이해 없는 욕심이 점철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우리식’의 이해와 방제 작업이 결국 자연에게는 도움보다는 피해가 되었다. 우리의 눈으로는 복구가 되어 아름다운 광경으로 보이는 곳이지만 자연의 눈으로는 생물이 더 이상 살지 못하는 곳이다. 그걸 보면서 정말 마음이 아팠다.
최종관 대장님께서는 여러 말씀을 해주셨다. 지금 태안은 그나마 중동 원유의 특성으로 방제 작업이 수월했지만 임포섹스 현상이 일어난다고 말이다. 중동 원유는 바닷물 위에 잘 뜨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 피해를 줄여주었다. 하지만 아예 피해가 없진 않았기에 한 몸에 두 가지의 성별을 모두 지니는 임포섹스 현상이 많다고 한다. 그들의 삶의 장소를 망가트리는 것도 모자라 육체까지도 비정상으로 만들게 하다니 사람으로서 자연 앞에 서기가 참으로 부끄러웠다. 일을 벌여 자연과 생물들을 곤란케 하고 수습하려다 그들의 장소를 없애다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태안 해안 사무소를 떠나 10~20분 정도 가니 기지포 해변이 있었다. 기지포 해변은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갯벌과 해안사구가 펼쳐져 있었다. 특히 해안사구가 잘 발달되어 있었는데 그것을 관찰할 수 있는 자연관찰로까지 있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해설사분들과 3조로 나뉘어서 설명을 듣게 되었는데 우리 조는 제일 먼저 자연관찰로로 갔다. 자연관찰로는 나무로 된 길이었는데 일정 거리만큼 땅과 떨어져 있었다. 세심한 배려로 자연을 보호하는 모습에 감동받았다. 자연관찰로를 따라 해안사구를 보았다. 해안사구는 모래가 바람에 날려 생긴 이름 그대로의 모래언덕인데 다양한 사구식물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특히 갯그령이 인상적이었는데 1m도 안 되는 그 자그마한 키로 5~10m정도의 뿌리로 모래를 잡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면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작은 풀은 나를 반성케 했다.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자연관찰로를 걸었다. 설명이 끝나고 기지포 해변을 둘러보았다. 기지포의 아름다운 모습은 쉴 틈 없는 학교생활과 자연을 접하지 못하는 도시환경으로 어느새 삭막해져버린 나의 마음을 훤하게 뚫어주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자연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람사르 습지에 이어서 태안에서도 다시 한 번 깨달으니 해외의 유명한 자연 경관에만 눈을 돌리던 나를 머쓱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만리포로 갔다. 만리포는 사고가 일어난 지점과 가장 가까운 곳이어서 피해가 가장 컸던 장소였다. 국립공원 직원분께서는 도구들을 가져와 태안 해안 사무소에서 봤던 것을 채취해 보여주셨다. 채취한 장소에서는 물이 흘러나왔는데 자세히 보니 기름이 둥둥 떠 있었다. 깊은 곳에서는 아직도 작년 기름유출사건의 흔적들이 여실히 남아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임포섹스 현상을 보이는 생물들. 더 이상 생물들이 살지 않는 아름다운 자연. 곳곳에 보이는 쓰레기들. 이 모든 것이 사람들이 벌인 일이었다. 일으킨 사건을 복구하려는 마음은 좋았다. 하지만 자연을 생각했으나 이해를 하지 않았기에 그만큼 피해가 있었던 게 아닐까? 이번 태안을 다녀와서 가장 크게 깨달았던 점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움을 주려는 것은 좋으나 자연의 눈으로 바라보고 행동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자연과 사람은 더불어 살아간다. 때때로 사람은 자연에게 태안의 사건처럼 피해를 주기도 한다. 그리고 자연을 사랑하는 손길로 다시금 복구하려 한다. 그 손길과 함께 진정한 눈으로 자연에게 힘을 준다면 녹색연합의 의미와 같은 궁극의 녹색 세상을 일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 게눈 김현영(박문여고 1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