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순례후기]- 회원 박상미(고라니)

2009년 6월 3일 | 기타

[녹색순례후기] 안녕~ 내가 걸어갔던 길들아~

                                                                     글- 회원 박상미(고라니)


 

몸이 하나니 두 길을 모두 다 가볼 수는 없어

나는 아쉬운 마음으로 오래도록 서서

잣나무 숲 속으로 접어든 한쪽 길이

굽어져 안 보이는 곳까지 바라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하나의 길을 택하였다.

그 길은 먼저 길과 똑같이 아름답고

풀이 우거져 사람을 부르는 듯했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흔적은

먼저 길보다 좀 덜하기는 했지만…….

  

 

D-7.

단풍 물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다.

 

순례를 떠난다는 나에게 주위 사람들은 부러움 반 걱정 반의 이야기들을 한다. 
중요한 것은 아직 남편과 아이들에게 얘기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아이들에게 운을 떼 본다.

“너희들, 엄마없이도 5일동안 지낼 수 있지?”
내 도발적인 한마디에 작은 아이는 꼭 가야돼~~부터 시작해서 어디 가는데, 우린 어떻게해…. 난리가 났으나 
큰 아이는 엄마 눈을 피하지도 않고 음흉한 미소를 씩 날린다.
“어? 너 웃었어? 엄마 없는게 그렇게 좋아?” 하면서 다그치니,
“아니야, 내가 뭘 웃었다고 그래? 그리고 나 가만있어도 웃는 얼굴이야~~”
어이구 자슥, 웃기고 있네. 너는 가만있어도 웃는 얼굴이 아니라 가만 있으면 멍때리는 얼굴이거덩? 
누가 더 솔직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절반은 통과다. 
그래 요놈들아 엄마없이 실컷 자유를 누려 봐라. 잔소리 없지,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지, 
이런 좋은 기회가 또 어디 있겠노?
이제 남편만 남았다. 
이야기를 꺼내려다가 현관문에 새끼발가락을 세게 부딪쳤는데 멍이 들었는지 발톱이 시커매진다. 
남편 왈, ‘당신 이제 아무데도 못가겠네~’ 아니 어찌 알았을까? 에고, 오늘은 말할 기회가 아닌가 보다.
  

D-4. 드디어 남편에게 순례 얘기를 꺼냈다. 남편 왈, ‘너는 못가. 가다가 쓰러지려고?’
참나, 남편은 아직도 내가 대한민국 막강 아줌마 파워중의 한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나보지? 그러나 저러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아이들 때문에도 안 된다던 사람이 인터넷을 뒤져 침낭을 주문하고 등산자켓을 사러 나가자고 한다. 아니, 이 사람이 갑자기 왜 이리 착해졌지?
  

D-1. 등산배낭에 짐을 꾸려주면서 남편이 그런다.
“아, 그곳은 정말 내가 가보고 싶던 곳인데. 나랑 바꿀래?”
“하여튼,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알아서 해라 잉?”
하하. 아내가 없는 집안이 안 불편하면 그럼 그게 정상이야? 
그리고 알아서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네요. 어찌 되었든 떠납니다요!! 출발~~~

1일차(목요일) 순례단에 합류하기

매년 순례를 지켜보면서 함께 가고 싶기는 했지만 올해 내가 더욱 용기를 낸 것은 
그곳이 강원도 삼척에서 시작해서 울진으로 넘어가는 울진 숲길이어서 더 그런 것 같다. 
나와 남편이 태어난 곳, 강원도. 그리고 시부모님이 살고 계신 삼척. 
그곳에 내가 가서 발걸음을 남긴다는 것이 얼마나 대견한가.

그리고 ‘걷는다’는 행위에 대한 갈망은 작년에 잠깐잠깐 ‘걷기’에 동참하면서 시작되었다. 
걷는 것은 무척 힘들지만, 걷고 나면 자연스럽게 마음의 걱정이 치유되는 기억 때문이었다. 
운전을 배우고 나서부터 걸어 다니는 일도, 버스를 타는 일도 새삼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동서울터미널에서 탄 버스가 고속도로에 들어서고, 
고속도로 주변 풍경에 아파트나 큰 건물이 없어지면서부터 눈에 들어오는 모습들이 
언제 저런 곳에 저런 것이 있었나싶게 낯설다. 
일 년에도 몇 차례나 오르내린 그 길인데도 운전대를 잡고 있어서 보지 못했던 걸까? 

울진터미널에 내려 통고산 자연휴양림 가는 버스를 타야하는데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쳤다. 
시골의 작은 터미널이라서 그런지 이 사람 저사람 붙잡고 물어보지만 속 시원히 대답해주는 이가 없다. 사람들이 여행을 오더라도 차를 운전해서 이동하는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점점 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는 더 불편해지고, 그래서 또한 더 차를 이용하기도 하고.
이런 시스템을 조금 바꿀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어찌어찌 근처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가서 순례단의 지원팀 도움을 받기로 한다. 
울진 터미널에서 통고산 자연휴양림을 찾아가는 길.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마어마한 계곡이 아찔하다.
통고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하니 순례단은 일정을 마치고 저녁식사가 마무리되어가는 중이다. 
정신없이 인사를 하고 밥을 먹고 나니 이제야 순례단에 합류한 느낌이 온다. 
식사 후 프로그램으로 토론극이 진행되는데 울진 숲길을 걷고 난 순례단이 
울진지역의 현안 문제에 대한 역할극을 한다.
숲길 걷기를 하지 못한 나는 무슨 말인지 벌쭘하지만 
그래도 능청스런 각자의 연기에 감탄을 하며 배꼽을 잡았다. 
하루를 마감하고 잠을 자야 하는데 새로운 날이 시작되겠구나 뒤척뒤척 잠이 오지 않는다. .
 

15일(금) 고요한 자연과 만난 날

금요일의 이동경로는 ‘통고산’을 넘어 ‘애매랑재’까지이다. 산을 넘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출발하였지만 
가파르게 오르다가 내리다가 이어지는 숲길이 정상을 향해 치고 올라가는 등산이라기보다는, 조용히 걸으며 자연을 만나는 과정으로 다가온다. 

지천으로 산철쭉이, 발밑에는 은방울꽃이, 둥굴레꽃이, 멀리서 가까이서 아까시 향기와 쪽동백의 단아한 향기가, 쇠물푸레의 향기가 숲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더 더욱 짙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으면 자연은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산을 오르면서 내려다보이는 포장된 도로는 꼭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산을 깎아내고 무자비하게 자리 잡고 있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어 서걱거린다. 순례단이 ‘우리친구’라는 별명을 붙여준 검은등뻐꾸기가 계속 쫒아오면서 ‘홀딱 벗고~~’하면서 자꾸 ‘벗어버리라’고 한다. 무엇을 벗어야 할까? 내 마음에 있는 욕심? 아직까지도 따라다니는 묘한 열등감? 항상 안고 있는 앞일에 대한 걱정?

숲속에 자리 잡고 편안한 자세로 갖은 명상시간. 배낭을 베고 누우니 나뭇잎 사이로 정말 파란 하늘이, 정말 빠르게 달려가는 하얀 구름이 보인다. 조용히 시작된 초록지렁이의 목소리가 귀에 들린다 싶더니 어느 순간 그 소리보다 옆 사람들의 코고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다시 내 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숲속에서의 단잠. ‘달다’는 말이 이런 뜻이구나. ‘고단함’ 이라는 것도 이런 것이로구나.
  

16일(토) 빗속에서 자연과 만난 날

비가 내리는데 왕피천을 걷는 날이다. 우비를 입고 출발하였는데 조금 내리다 말겠지 하던 애초의 기대를 저버리고 제법 많은 비가 내린다. 비 때문에 원래의 이동경로에서 수정되었다는데 왕피천 물이 불어나고 있고 발밑이 미끄러워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몇 명의 듬직한 남자 순례단이 앞선 걸음으로 길을 만들고 천을 건너야 할 곳에 돌다리를 만들어 건네주는 스릴만점의 특공작전이 시작되었다.

빗속에서 먹는 점심 또한 일품이다. 나뭇가지 위에 우비를 걸쳐 천막을 만들고 그 밑에 쪼그리고 먹는 주먹밥의 맛. 다시 또 언제 내가 이런 주먹밥을 먹어 볼 수 있을까?

 
17일(일) 자연과 함께 하는 사람들 

모둠을 나누었는데 우리 모둠은 천축산에 들었다. 가는 길에 만난 마을에서는 비개인 후 논에 나온 농부가 모내기에 한창이다. 촌에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에 호기심으로 걸어 나온 아가의 표정이 천진하다. 바람에 누웠다 일어났다 일렁이는 청보리밭의 두근거림도 만난다.

천축산에서 특이하게 본 것은 송이채취꾼이 만들어 놓은 소나무 숲의 흔적이었다. 불 땐 자국이며 장판까지 있어 며칠 밤낮을 길게는 한 달씩 이곳에 생활하면서 송이를 채취해서 내려간단다. 감시할 인력도, 그럴만한 의지도 없어 보인다고 하는데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숙소로 돌아왔을 때는 드림팀의 특별한 저녁식사준비가 한참이다. 지글지글 고소한 기름 냄새가 맛나던 해물전이며 매콤하고 담백한 닭볶음탕. 그 맛이 오래 남아서 집에 돌아와서도 아이들에게 해준 특식이 해물전과 닭볶음탕이었다.

  

18일(월) 순례를 마치면서 

이제 조금 몸이 적응되었다 싶으니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돌아올 곳이 있으니 과감히 떠나가도 하는 것이겠지만 떠나간 그 길에서 만난 것은 평소에 만나지 못한 청정한 오지의 자연이지만 내내 나를 따라다닌 것은 검은등뻐꾸기 소리와 함께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순례단에서 나누어준 엽서에 남편에게 글을 쓴다. 아마 남편에게 부치지도 아니, 보여주지도 못할 엽서가 되겠지만 함께해준 그동안의 세월과 요즈음의 배려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집에 돌아오니 아이들이 반가움에 깡충거린다. 엄마가 없는 집에서 아이들이 밥도 먹고, 설거지도 하고, 그러면서 나를 기다려주었구나. 하지만 숨 돌리기가 무섭게 사건을 하나하나 만들어 내는 아이들. 눈이 벌겋게 되어서 결막염으로 병원에 달려가게 만드는 큰아이와 엉뚱하게 교복치마를 분실하고 울면서 집에 들어온 작은아이. 너희들, 엄마 이제 정신차려~~ 하는 거지? 알았어.
 


아마도 울진에서의 기억은 한 평생 나의 마음에 남아있을거야. 

그래서 가끔 살다가 지치고 힘들 때 꺼내 볼 수 있는 

청량제 역할을 해 줄 것 같아.


안녕~ 내가 걸었던 길들아.

바람아.

비야,

구름아.

나뭇잎아.

 

 

길이 그곳에 있다. 
사람들은 그 길 끝에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떠난다.

나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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