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순례]

2011년 5월 15일 | 기타

4/29~5/1, 남도로 떠나요. 걸으며 자연을 느끼고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간. 함께해요. 

4월 13일 이 문자를 받고는 ‘금, 토, 일 ?! 와, 나도 갈 수 있는 거야?’. 녹색순례 이야기는 친구 퐁당을 통해 간간이 들어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고 싶은 마음이야 있었지만 8박9일이라는 기간 때문에 나하고는 먼 이야기구나, 퐁당은 좋겠다 했지요.

 
녹색순례. 이 단어를 만났을 때, 이것이 내가 바라는 삶 자체구나 생각했습니다. 2박3일의 녹색순례는? 나의 길은?
 – 홀로 때로는 더불어
 – 자연랄라, 뻘낙지, 감자, 촌닭, 돼지감자, 자운영, 부싯돌(라이타)
 – 청보리밭 선율, 다정한 동백나무, 대숲 바람소리
 – 좌은빛 우청물결
 
서울 양재역.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데 아는 사람이 없어 멀뚱멀뚱 한켠에 서있었습니다. 조금후 하늘다람쥐가 도착해 나란히 버스에 앉아 남도로 향했지요. 목포를 찍었을 때 남도의 날씨는 매우 좋았습니다. 우리는 남도의 한 기사식당에서 점심을 모둠별로 먹었습니다.

인천녹색연합에서는 서로 자연이름을 부르는 게 자연스럽고 좋았던 저는 우리 모둠은 자연이름을 정해부르자고 했습니다. 그렇게해서 탄생한 이름들이 (자연)랄라, 뻘낙지 –우리 모둠장이었지요-, 감자, 촌닭, 돼지감자(혹은 뚱딴지), 자운영, 부싯돌(사실은 라이타)였습니다. 

 
월출산을 바라보며 순례시작. 햇빛 쨍쨍 바람 시원~ 선명한 남도의 정취를 온몸으로 느끼며 걷는 시작길. 발 아래로 자운영, 봄까치꽃이 산들거리고 보송보송한 연두빛 산내음이 순례단에게 불어왔습니다. 석탑만 남아있는 월남사를 향해가며 만난 월남마을은 낮은 돌담, 보리밭을 품고 있는 아기자기한 곳이었습니다. 함께 걷던 자운영이 어릴 때 먹으며 놀았다는 찔레순을 꺾어주셔서 새콤하게 나누어 먹던 기억이 남아있네요. 야트막한 산과 마을을 지나가는 순례길은 저녁밥 짓는 냄새와 연기가 피어오르던 어렸을 때 동네의 풍경이 떠올라 내 안에 숨어있던 어린 마음들을 랄랄라 깨우던 길이었습니다. 또 돼지감자님은 강진에서 태어나셔서 우리가 지나는 길목 길목마다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주셨습니다. 월남사 옛절터를 지나 만난 설록다원 곳곳에 있던 바람개비가 차나무의 습도 조덜을 위한 것이라는 얘기도 해주셨지요.
 

먹고, 걷고, 마시고, 쉬고,

생각하다, 쉬다, 말하다, 바라보다
분명 내 안의 여러가지 감정과 생각들, 여전했을텐데 그냥 그것들이 쉬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몸은 조금 불편했고(화장실 가기도 만만치 않고 배낭의 무게는 왜 점점 늘어나는지!) 때로는 일상에 두고 온 생각들이 어지러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그건 그냥 그것일 뿐이었지요. 때때로 남도의 연두가, 함께 걷는 이들이 생각의 짐을 흩어주었습니다.


 

둘째날, 금당마을을 지나 고성사까지 가는 오전이었습니다. 그 숲길은 숲내음에 푹 빠질 수 있는 멋진 길이었는데, 고개를 두개 연속으로 넘는 오전이어서 그랬는지 헥헥대는 마음에 주변의 정취도 모른채 다들 말한마디 없이 넘어갔지요. 그렇게 넘어 맞이한 고성사에서의 점심시간은 ! 그렇습니다, 꿀맛 같은 도시락에 지원팀의 시원한 말걸리 모둠별 한병씩! 그리고 그늘아래 낮잠시간. 평화롭고도 향긋한 봄의 원기를 몸과 마음에 담뿍 충전하는 시간이었지요. 그렇게 출발하니 물먹은 솜처럼 마냥 무거워지던 배낭도 한결 가뿐해졌더라구요. 그리하여 우리는 영랑생가에 도착했습니다. 한바탕 시낭송 경연을 했답니다. 곳곳에 가득한 시들을 고르거나 혹은 직접 시를 지어 모둠별로 뽐냈습니다. 자작시들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으나 영랑시인의 “오매~ 단풍들것네”를 발표한 우리모둠이 1들을 했지요. 심사위원단은 영랑생가 앞의 매점아주머니셨는데 전라도의 감탄사인 “오매”를 사랑하셨던 분이었던겁니다. 하하. 

 
그렇게 시낭송 후 영랑생가 잔디밭에 앉아, 아니 누워 쉬다가 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모둠끼리의 남도음식 맛보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낙지삼합이라는 조금 새로운 삼합메뉴를 먹었는데, 역시 남도 밑반찬이 맛있더라구요. (살포시) 강진의 막걸리도 곁들이고 우리는 남포마을회관을 찾아나섰습니다. 그 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종일 꾸물럭거리다 해나다하던 하늘이 , 드디어 서울의 그 비가 오셨지요. 우비를 찾지 못해 그냥 마을회관까지 걸었더니 결국은 쫄딱 젖어버린채 남포마을회관에 도착했습니다. 그래도 시원하게 내리는 비와 비냄새가 참 좋았던 저녁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 회관에 비하면 어제의 마을회관은 정말 최고급 호텔이었던 것입니다. 남포마을회관에는 남녀공용화장실 딱 하나로 40여명이 씻고, 싸고, 설거지 할 물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이제 지나와 생각해보니 참 재밌는 추억이 되었지만 그 당시 그 밤을 지낼 것이 어찌나 막막하던지요. 화장실 문 밖에 포스트잇 한장을 붙여놓고 샤워순서를 기다리는 이름을 죽 적어놨답니다. 남자소변기를 옆에 두고 화장실 세면대에서 양치하고, 세수하고, 머리감고, 샤워를 했습니다. 밖엔 봄비 오시는 서늘한 밤에.
 
저는 그 밤이 기억에 남는 한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회관도 싸늘했지만 옷도 다 젖어 여기저기 옷을 빌려입었어도 얇은 침낭으로 스미는 한기와 싸워야 할 밤이 걱정됐습니다. 침낭입구까지 꼭 묶어두고 아침을 맞이했는데 손전화에 문자 한 통. 밤사이 하늘다람쥐가 보낸 문자였습니다. “자다 일어났는데 추우면 나 깨워요 내 침낭은 두꺼우니까 바꿔요 난 추위별로 안타니까 추우면 나 깨워요” 라는 정말 정말 내맘 따뜻하게 해주던 문자.
 
그 따뜻한 감동과 어제 시낭송 1등 모둠의 특혜- 배낭 지원팀 트럭에 싣기-로 가뿐하게 걷기 시작한 셋째날 오전. 게다가 풍경도 정말 특별했습니다. 왼쪽엔 강진만의 은빛 풍경, 오른쪽으로는 넘실대는 청보리밭 물결. 그런 제방길을 걸었지요. 와, 저 물결! 하며 함께 남도의 정취를 나누고, 홀로 은빛 바다에 생각을 담구기도 하며 걷다보니 백련사 오르는 길은 또다른 풍경. 흙빛과 동백, 파란 하늘이 어우러진 봄세상의 빛깔들이 펼쳐졌습니다.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쉬며, 사과도 먹으며, 백련사도 둘러보며.
그렇게
좋은
봄 날
순례길을 다녀왔습니다.
 
백련사 오르는 길을 걸으며 생각했었지요.
여행을 다녀오면 여행지에서는 즐겁고 좋았어도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간 그 힘을 잃기도 한다고. 
그런 경우가 여행은 단지 기분전환만 되는 것일까, 어떻게하면 여행의 힘을 일상으로 끌어올까 …… 
그런데 녹색순례는 일상에 힘을 실어주는 여행이지않나 하고요.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와 이리저리 치이는 일들은 여전하여도 내 안에 녹색중심이 든든하게 뿌리내리기 시작했음을 알았습니다.

* 인천녹색연합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1-05-16 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