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아도_두번째 인천섬연구모임

2013년 6월 27일 | 섬•해양

백아도에 대한 첫 기억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 ‘’, ‘무게감 있으면서도 가볍게 칼을 내리치며 생선을 손질하던 이장님에 대한 기억. 섬에서 여성이 이장을 하기 위해서는 저 정도로 씩씩해야 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산에서 맡았던 더덕냄새. 밤에 바닷가에 나가 같이 한 사람들의 노래와 이야기를 들었던 시간. 해안도로를 걸으며 만났던 수많은 생명들.
 
인천섬연구모임원들과 나래호를 타고 백아도에 가까워 오니 마을과 해안도로가 보인다. ‘맞아, 백아도가 이랬지.’라며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백아도 선착장엔 신발이 젖을 정도의 바닷물이 꽤 많이 올라와 있었다. 이렇게 백아도는 우리를 반겼다.
 
면적은 2가 채 되지 않고 해안선길이는 약 12km인 크지 않은 섬. 선착장과 가까운 보건소 마을’. 건너편 발전소 마을로 나눠져 있고, 30가구정도 살고 있는 백아도는 사람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니다. 해수욕장이 발달해 있거나 딱히 민박이 발달할 만한 곳은 아니다. 백아도 주민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다른 섬들에 비해 관광지로 알려지지 않아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산세가 수려한 백아도




백아도는 산세가 수려하다. 야생화 보는 재미와 깎아지른 절벽, 그리고 드넓은 바다를 볼 수 있는 숲길이 발달해 있다. 중간중간 쉽지 않은 길과 밧줄에 몸을 의지해 가야하는 길도 있었다. 알지 못하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작은 봉화대들을 보며 이 곳에도 역사의 흔적이 있음을 실감했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흔들바위라는 이름을 붙여줘 존재를 드러낸 바위를 보고 직접 만져보고 흔들어보기도 했다. 지루할 틈 없이 숲길을 걸었지만, 아쉽게도 안개가 많이 껴서 깎아지른 절벽과 드넓은 바다를 보기에는 어려웠다.

 

주로 남부지방에서 서식하는 동백나무가 특이하게 백아도에서 군락지를 이루고 있는 것도 확인했다. 5~6그루 정도 모여 있는 것을 군락지라고 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표가 있긴 했지만, 초록잎들 사이로 붉은 꽃들이 알알이 박혀있는 듯한 풍경 보는 재미가 있다.
 
새들의 휴게소. 백아도

 
(사진 : 민운기(인천섬연구모임 회원/스페이스빔 대표)) 

백아도에 다니며 유난히 죽은 새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인천야생조류연구회 전문가들이 새에 대해 조사할 것이고, 저녁에는 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계획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새를 유심히 관찰한 덕분인 듯하다. 인천야생조류연구회 김대환 선생님과 일행이 별도로 움직이며 조사한 내용을 공유하는 시간은 꽤 흥미로웠다. 이 새가 그 새 같고, 그 새가 이 새 같아 보이는 것처럼 새를 보는 눈은 까막눈이지만, 슬라이드로 보여지는 새의 모습과 색감은 감탄사를 유발할 정도로 멋졌다. 한국은 시베리아, 중국 동부, 만주 등지에서 번식하고 일본 남부에서 호주에 걸쳐 월동하는 철새집단의 주요 이동경로지라 할 수 있다. 봄과 가을에 100종 이상에 달하는 수백만의 철새집단이 한국을 통과하는데, 서해안 끝에 있는 외곽 섬들이 휴게소 역할을 한다.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쉬지 않고 수백km를 날개짓 해 바다를 건너온 끝에 쉴 수 있는 곳이 보이니 얼마나 반가울까. 또 얼마나 빨리 쉬고 싶을까. 이렇게 수백km를 쉼 없이 건너온 새들 중 꽤 많은 수가 죽기도 하고, 너무 지쳐 사람이 가까이 접근해도 멀리 도망가지 못하기도 한다. 시기와 운이 맞으면 하늘에서 새들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그 광경을 한번은 꼭 보고 싶어졌다.
 
김대환 선생님은 4~5시간 동안, 보건소 마을 인근에서만 관찰한 새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해 주셨다. 2~3년에 한번 볼까 말까 할 정도로 보기 어렵다는 흰눈썹울새을 비롯해 흰등발종다리’, ‘할미새사촌등 총50여종을 관찰했다 한다. 4~5시간 만에 그렇게 많은 새를 볼 수 있다니. 그것도 섬의 절반만 관찰했는데 말이다. 김대환 선생님 지인들이 문갑도에 새 조사를 위해 들어가 있는데 70~80여종의 새를 봤다는 말에 또 한 번 놀란다. 백아도를 비롯해 문갑도, 소청도 등 인근 섬도 철새의 휴게소이다. 외국에서는 새 탐조를 관광 컨셉으로 잡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철원, 순천만 등에서 새 탐조를 주제로 관광 컨셉을 잡기도 하고, 전남 신안군에는 한국 최초의 철새관련 상설 연구기관인 철새연구센터가 설립돼 철새연구를 통한 탐조관광, 철새생태교육의 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인천 섬 뿐만 아니라 내륙 갯벌은 한반도 철새의 60%이상이 도래하는, 동아시아지역의 핵심적인 철새 중간기착지임에도 불구하고 철새 전문기관이 설립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일이다. 오히려 물떼새의 먹이터인 인천 갯벌을 매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전체 갯벌의 35%가 인천에 위치해 있어 저어새, 노랑부리백로, 두루미, 검은머리물떼새 등 수많은 멸종위기종들을 포함해 연간 10만 마리 이상의 도요·물떼새류가 도래한다. 하지만 2011년 인천 내륙의 마지막 갯벌인 송도갯벌 매립이 결정됐다. 강화남단갯벌은 조력발전건설계획으로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 갯벌은 물론이고 인천 섬이 위치한,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지형적 위치의 특성을 잘 살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해사채취
새에 대한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인하대 최중기 교수님이 해사채취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셨다. 건설용 모래채취의 역사는 강모래 채취로 시작된다. 후에 강에 댐이 생기면서 강모래 채취 용이성이 떨어지게 되고, 이때 해사채취에 눈을 돌렸단다. 인천 앞바다는 수도권과 가깝기 때문에 건설업자들이 더 눈독을 들였다. 그동안 인천 앞바다에서 25천만가 넘는 바다모래가 채취되었다. 이는 폭 25m, 높이 25m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천리(千里)의 모래성을 쌓을 수 있는 양이다. 모래채취를 허가한 옹진군은 1당 약3,300원이라는 점·사용료로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바다모래의 생태적인 가치를 간과한 것이다. 해양생물들의 산란, 보육, 성장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바닷모래가 사라진다면 어족자원이 감소할 것이고, 해수욕장과 해안사구의 모래유실 등의 막대한 손실을 입을 것이다. 실제 해수욕장 모래 유실로 인해 다른 곳에서 바닷모래를 사서 뿌리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
 
지난 1224일 인천시는 옹진군 덕적면 굴업도 옆 굴업지적과 덕적지적을 골재채취예정지로 고시했다. 골재채취지역이었던 덕적도와 자월도의 채취기간이 만료되니 다른 곳으로 변경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이 내용의 골재채취가 허가되면 2017년까지 5년간 이 일대 해역에서 연간 700, 3500의 해사를 채취할 수 있게 된다. 이 예정구역은 굴업도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5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물론 백아도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백아도의 미래는
?


 (사진 : 민운기(인천섬연구모임 회원/스페이스빔 대표)) 

어느 정도 해사채취 이야기가 마무리 되고, 짧은 시간동안 백아도 이장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장님은 앞으로의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셨다. 지금 본인의 생계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백아도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주제로 말이다.
 
백아도 주민이 더 고령화 되고, 백아도에 들어와 살 사람이 없다면 백아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누군가가 백아도에 살 수 있으려면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나온 주제가 해삼종묘배양장’. 해삼은 고가의 해산물로, 현재 배양기술은 중국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2년 전 백아도에서 들어온 해삼종묘배양장은 작년에 첫 시공을 했고, 중국 기술자에게 기술을 전수받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 책임을 질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백아도 내에서는 마땅한 사람이 없어 고민이란다. 이 해삼종묘배양장 사업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게 되면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이 보장되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바다와 함께 한 삶
 (사진 : 민운기(인천섬연구모임 회원/스페이스빔 대표))
 
이 곳에 오면 어때요? 어떤 생각이 들어요?” 모임원들에게 회를 떠주시고 싶은 마음에 바다에 그물을 던져놓으려 가는 길에 전 어촌계장님이 물어보신다. “, 좋아요. 바다도 좋고, 산도 좋고요. 그런데 이렇게 12일로 짧게 다녀오는 거니 이 섬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긴 어려운 것 같아요.”
 
짧은 대화를 하다보니 도착한 포구. 5~6척 배가 바다에 떠 있었다. 90도로 깎아지른 포구 아래에 있는 배에 어떻게 접근해 탈 수 있을까 싶었는데, 한 손으로 잡기도 어려운 두꺼운 밧줄에 몸을 의지에 내려간다. 마치 암벽등반을 하듯. 밧줄을 놓칠세라 손에 단단히 힘을 주고, 혹여나 미끄러질까 발 디딜 곳을 조심조심 살피면서 겨우 배에 올랐다. 배에 오르고 난 뒤에는 그물을 던지기 위한 준비를 했다. 나도 도우려 했으나 한 번도 해보지도, 제대로 보지도 않았던 일이라 설명을 해 주셔도 헤맸다.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씀을 드리니 웃으시며 도와주셨다. 그렇게 그물을 던질 수 있도록 준비를 마친 뒤, 그물 끝을 바다에 던지니 주렁주렁 달려있는 추의 무게 때문에 스르륵 바다 속으로 잠수한다.
 
섬의 기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입고 온 얇은 옷 속으로 찬 공기는 들어오고,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안개가 짙어졌다 옅어졌다를 두어 번 반복했다. 순간 두려움이 일기도 했다. 포구에 가까운 곳에 있긴 했지만, 바다 위는 바다 위인지라 혹여나 먼 바다로 나가게 되는 것은 아닐지, 짙은 안개로 길을 찾지 못해 몇 시간을 바다 위에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닐지. 짧은 순간에 별의 별 생각을 다 했다. 그물을 던지고 난 뒤에 다행히 안개는 걷히고 육지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90도로 깎아지른 포구를 밧줄 하나에 의지해 내려가고, 언제 변할지 모르는 날씨에도 바다에 나가는, 바다와 함께 하는 백아도 주민들의 삶. 앞으로 백아도의 미래는 어찌될까? 어떻게 그려나가야 할까? 충분히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그려나가고 있나? 이런 생각이 교차하며 백아도에서의 12일이 마무리됐다.

-박주희 (인천녹색연합 생태보전팀장/인천섬연구모임 회원)

* ‘인천섬연구모임’은 인천 연안 섬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를 수행하며, 
섬 문화의 보존과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꾸려진 모임이다. 인천녹색연합도 함께 하고 있다.
(위 글은 5월 초에 다녀온 ‘백아도’ 답사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