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로 폭 최고 12m 넓어져
나무·돌 뿌리 드러내 위험
지자체 둘레길 조성도 원인
중복 안내시설물 샛길 죽여
등산로의 사전적 정의는 ‘등산하는 길’이다. 다시 말하면 산을 찾는 사람들이 정상을 더 쉽게 오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등산로 폭이 확장되면 자연생태계에 변화를 초래한다.
자연 그대로의 숲에 사람이 오르내리면 맨땅이 드러나고 길이 생기게 되는데, 산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많아질수록 침식으로 인해 등산로 폭이 넓어지고 흙이 쓸려나가게 된다. 이에 따라 나무와 돌은 그 뿌리를 드러낸다.
이것이 방치되면 등산객의 안전문제가 발생하고, 또 다른 등산로가 생겨나 산림 생태계를 파괴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지금 한남정맥에서는 이러한 악순환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22일 오전 10시. 인천시 서구 원적산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한남정맥 4번째 답사를 시작했다. 이번 답사에서는 2007년 경인일보 조사 이후 등산로 폭의 변화를 더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지난 조사에 참여했던 인천녹색연합 신정은 녹색참여국 국장도 함께했다.
2007년 경인일보와 녹색연합은 한남정맥 465개 지점의 등산로 폭을 측정했다. 그 결과 너비가 2m 이상 되는 등산로가 126곳이었고,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인 5m가 넘는 지점도 30곳이 조사됐다.
신정은 국장은 “지난번 조사에서도 급격히 훼손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드러났다”며 “지자체에서 그 이후 별다른 관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넓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등산로에 들어서자 신 국장의 추측이 정확하다는 것을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대부분 등산로가 지난번 조사때보다 1m 이상 넓어진 것이다.
2007년 조사에서 2m로 측정됐던 2개 지점의 등산로는 각각 2.9m와 4.6m로 확장됐다. 심지어 1.2m인 것으로 조사됐던 등산로는 세 갈래 길이 생기게 되면서 12m로 넓어지게 됐다. 이는 승용차 2대가 동시에 지나칠 수 있는 너비다. 대부분 등산로가 가족단위 등산객 3~4명이 나란히 길을 걸어도 충분했다.
이 때문에 등산로 주변의 나무들은 죽어가고 있다. 등산로 폭이 넓어지면서 침식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 부근의 등산로는 이미 흙이 하나도 없는 암석 바닥이 드러나 있었고, 등산로 사이에 있는 나무들은 뿌리가 드러난 채 말라가고 있었다.
신 국장은 “원적산은 등산로 바닥이 잔돌과 모래알갱이가 많은 화강암 풍화토로 돼 있어 침식이 잘 된다”면서 “등산로 폭이 늘어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인공 등산로 조성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여러 지자체에서 서로 다르게 조성한 둘레길도 등산로 확장의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2007년 조사당시, 5m 너비의 원적산 등산로와 인천 둘레길이 지나고 있던 곳은 이미 43㎡ 규모의 등산객 휴식장소가 돼버렸다. 철마산과 가정동 방향의 갈림길이 있던 곳에는 지름 10m, 높이 3~4m인 정체불명의 돌무더기가 생기면서 등산로 너비가 2m 이상 확장됐다.
과도하게 설치되고 있는 안내문도 문제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산림청이 실시한 한남정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남정맥에는 1㎞ 당 2.54개(총 394개)의 안내 시설물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북정맥(경기도 안성시 칠장산에서 태안반도 안흥진까지 지나는 산줄기)의 안내시설물이 1㎞당 0.47개인 것과 비교하면 월등히 많은 숫자다.
산림청은 “한남정맥 능선을 기준으로 여러 지자체의 경계에 둘레길 사업이 확산되면서 각 지자체에서 지정한 둘레길을 설명하는 안내시설물들이 중복적으로 놓아지고 있다”고 원인을 설명했다.
장정구 인천녹색연합 사무처장은 “안내문이 많아지게 되면 등산객들은 혼란을 겪게 되고 이로 인해 샛길로 등산로를 이동하게 되면서 (등산로가) 더 넓어지게 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인천시에서는 안내시설물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 김주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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