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섬마을 여백이 늘어가네

2014년 10월 17일 | 섬•해양

한적한 섬마을 여백이 늘어가네

바다에서 인천의 미래를 보다 2014청소년기자단 파랑과 함께-볼음도

 

산역에서 모여 버스를 타고 외포리 선착장에 도착했다.

선착장에 올라 배를 타니 어느 덧 햇빛이 쨍쨍하게 비추는 날씨 속 트럭에 올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파랑기자단의 4번째 취재여행이 시작됐다.

볼음도에 도착하니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800살의 은행나무가 파랑기자단을 맞이한다.

800여년 전 홍수로 볼음도 앞 바다에 떠내려 온 은행나무를 심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나무는 멀찌감치 떨어져야 그 자태가 육안에 다 담길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한다.

은행나무 가지를 다치게 하거나 태우면 마을에 재앙이 닥친다는 전설 때문인지 나무가 더욱 신성스레 느껴졌다.  

이번 취재도 별탈없이 끝내길 기원하며 은행나무 뒤편 산길로 올라서니 멀찌감치 북한과 교동도가 바라보이는 전망대가 우릴 반겼다. 

▲ 파랑기자단 학생들이 볼음도 갯벌에서 조개잡이 체험을 하고 있다.
▲ 파랑기자단 학생들이 오형단 작목반장으로부터 섬과 관련된 주민들의 생활에 대해 듣고 있다.
▲ 파랑기자단 학생들이 볼음도 해변가에서 낙조를 배경으로 점프를 하고 있다.

 

 

800년 전 떠내려온 은행나무 섬 보살피는 신성스런 존재

한국전쟁 때 피난온 소녀는 구멍가게 지키는 노파 되고

생기 잃은 교정 존폐위기에 


북녘 동포들의 모습이 보일까 전망대에 설치된 망원경에 눈을 가져갔지만 높고 낮은 건물들의 모습만 보였다.  

망원경 사이로 보이는 북녘 땅의 모습을 보니 분단된 현실이 더욱 실감나는 듯했다.

전망대를 지나면 바다와 볼음 저수지 경계를 나누는 제방을 따라 강화 나들길의 13코스가 지난다.  

풀들이 무성히 자라있는 13코스는 다소 험해보일 수도 있지만 무성한 수풀 사이를 헤치며 저수지를 오가는 백로와 여러 철새들의 모습은 눈을 더 즐겁게 해준다.

최근 비가 내리지 않아 저수지 수위가 낮아보였지만 여러 철새들의 먹이터이자 보금자리 역할을 하는데는 문제가 없어보였다.  

저수지에서 멀어지고 있을 무렵 보이는 논에서 친환경 농업을 위한 오리와 우렁이가 보인다.

친환경 농업으로 대표되는 볼음도의 농업방식을 한 눈에 증명이라도 하듯 여기저기 오리와 우렁이들이 논에 가득했다.  

▲시간의 흐름을 담고 있는 여인숙 

논이 끝없이 펼쳐진 볼음 2리의 길과는 다르게 숭어를 말리는 풍경이 펼쳐지는 볼음 1리의 길을 따라 가다보면, 볼음도의 유일한 슈퍼를 접하게 된다.

그 옆에는 오랜 시간을 대변하듯 낡은 나무에 ‘황해 여인숙’이라는 글씨가 쓰여져 있다.

6·25 당시 북한 황해도에서 피난온 뒤 콩나물과 두부,미역 등 음식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는 김지희(76) 할머니는 강화도에서 음식을 사와서 팔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여인숙과 슈퍼를 운영하다 현재는 슈퍼마켓만을 운영하고 있는 김 할머니는 “6·25 전쟁 때 16살이라는 어린나이에 볼음도로 피난을 왔다”며 “이곳에서 결혼도 하고 살다보니 볼음도에 뿌리를 내렸다”고 말했다.  

이어 “여인숙은 10년 전에 그만 뒀지만, 여인숙에 대한 애정이 남아 도저히 간판을 내릴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존폐 위기에 놓인 학교들 

볼음 저수지를 가로질러 난 길을 따라가면 아담한 크기를 가진 인천 서도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나타난다.  

단촐한 분교의 모습이 정겹기도 하지만 학생들이 없어 초등학교는 수 년전에 이미 그 기능을 잃어버렸고 중학교 역시 2학년 1명, 3학년 2명 등 총 3명 밖에 되지 않아 내년이면 2학년 1명만이 홀로 남게 된다고 한다.  

결국 서도 중학교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이 다니지 않는 학교가 돼 폐교 위기에 처해있다.

작은 크기의 분교는 볼음도를 비롯한 섬 지역의 심각한 고령화문제를 보여주는 듯 했다.

학교 시설 경비를 맡고 있는 강용규(71)씨는 “옆에 있는 3개의 건물은 기숙사로써 선생님들이 평일에 이곳에서 지낸다”며 “부족한 과목은 주문도에 있는 중학교에서 담당 선생님이 출장 오시거나, 학생들이 찾아 간다”고 말했다.  

강화에 있는 산마을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싶다는 3학년 박성준(16) 군은 “처음 학교에 다닐 때는 과외처럼 1대 1 수업 분위기에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익숙해져서 괜찮다”며 “우리들이 졸업하면 학교에 아무도 없게 되는 데 나중에 커서 학교에 왔을 때 학생들이 없는 쓸쓸한 교정을 보게 된다고 생각하면 씁쓸하다” 며 아쉬워 했다.  

경찰이 되고 싶다는 장래희망을 밝힌 2학년 박유진(15) 양은 “내년에 혼자 남게 돼 학교를 옮겨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하고 있다”고 말해 혼자 남게 될 학교에 대한 걱정을 했다.

또래 아이들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학교를 나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선착장 방면으로 걷다보면 조갯골이라는 이름의 해수욕장과 마주친다.

해송들로 가려져 있는 해수욕장은 때마침 해질 무렵 도착해 밀물로 해안가로 들어온 바닷물에 석양이 아른하게 비춰 장관을 이뤄낸다. 

/김영수(인천예일고 1년)·류지인(학익여고 2년)·송예준(김포고 2년)

■’30대 신혼부부 귀농’ 창백한 볼음도 생기가 돈다 

어일우·이혜리 씨 “청년 농업 지원해 농촌 고령화 해결해야”

고령화가 가속화 되고 있는 현재, 농촌에서는 젊은 농부와 어린아이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강화 볼음도 역시 고령화를 피해갈 수 없는 듯 하다.

현재 볼음도 서도중학교볼음분교는 중학교 2학년생 1명과 중학교 3학년생 2명으로 총 전교생 3명이 재학 중이다. 

내년에는 3학년생 2명이 졸업을 해 2학년생 1명만이 남아 학교는 폐교위기에 놓이게 된다.

볼음도에는 유독 주인 없는 빈집이 많이 있다.  

교육을 위해, 도시의 편리함을 쫓아 젊은 사람들은 떠나갔고 이제 모든 농촌의 모습이 그러하듯 노인들만이 남아 섬을 지키고 있다. 

이런 볼음도에 도시보다는 농촌에 있어야 비로소 숨이 트인다는 농부 신혼부부가 있다.

하루하루 즐거운 게 최고라며 도시의 삭막함에 질려 볼음도로 찾아왔다는 이들은 고령화 된 볼음도의 유일한 ‘젊은 사람’들이다. 

“처음 섬을 밟았을 때 별 느낌은 없었어요. 그런데 마을에 들어서면서 여기서 살 수 있겠구나, 포근하고 예쁘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혜리(36·여)씨는 섬에서의 첫 느낌을 포근하다고 표현했다.

20대 때부터 땅에 발이 떨어져 있는 기분을 느꼈다는 이씨는 2년 전 도시를 떠나 남편 어일우(37·남)씨와 함께 농촌에서의 귀농을 선택했다.  

그녀는 땅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평생을 해도 질리지 않고 늘 신기하고 재미있다며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콩알 하나 심어 몇 십배, 몇 백배로 나오는 게 너무나도 신기하다며 농사를 하며 느끼는 작은 기쁨을 표현했다. 

이들 부부가 농사에 대해 얼마나 깊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그들의 책장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책장에는 온통 자연과 땅, 농사법에 관한 책들 뿐이다.

귀농에 대한 관심만큼 두 부부는 그들과 같이 농사에 도전하는 젊은 인력들을 위한 바람이 있다.

남편 어씨는 “일본 같은 경우에는 농사를 짓는 청년들에게 월급같이 돈을 지원해준다”며 “전라도처럼 귀농한 사람들에게 지원을 해주는 정책이 인천의 섬에서 귀농을 도전하는 젊은 농부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귀농은 숨 가쁜 도시생활을 벗어나 몸과 마음의 여유를 얻을 수 있는 안식처일 뿐만 아니라 고령화 현상의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이혜리, 어일우 부부는 갈수록 심화되는 농촌의 고령화 현상의 해결책으로 젊은이들의 귀농을 지원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힘든 농사일을 왜 굳이 택했냐는 질문에 두 부부는 “사람들한테 안부대껴도 되고, 스트레스를 안받고 거짓된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선택했다”고 말했다.

/김예림(인일여고 2년)·강수민(인명여고 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