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의 본질을 왜곡하지 말라
장정구 / 인천녹색연합 사무처장
저탄소 녹색성장이다, 녹색뉴딜이다, 그린스타트다 등 지금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 기업체는 온통 녹색타령이다. 속된 말로 요즘은 ‘녹색’을 팔지 않으면 장사가 되질 않는다. 진정으로 녹색의 가치를 알고 일을 벌인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지만, 대부분이 ‘녹색’을 2MB시대용 돈벌이수단으로, ‘삽질과 돈질’밖에 모르는 일부세력의 시커먼 속내를 가리려는 덧칠용으로만 사용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한반도대운하의 또 다른 이름인 ‘4대강정비사업’은 녹색뉴딜사업의 핵심이고 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서도 논란이 된, 미래세대가 위험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원자력발전을 ‘녹색에너지’라 규정하고 확대하려는 것이 녹색성장의 실체다.
부평구는 어떠한가? 최근 부평구가 국토해양부의 ‘살고 싶은 도시만들기’의 시범도시로 선정됐는데, 응모한 내용이 굴포천과 주변지역의 특성화전략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굴포천 녹색문화회랑 조성사업’이란다. 15억원의 국비를 지원받는 이 사업에서 부평구는 지속가능한 생태환경 회복을 위해 굴포천 자연형하천 조성사업과 더불어 도시경관디자인·저탄소녹색교통체계 구축을 통해 굴포천을 녹색문화회랑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회랑이란 복도와 비슷한 구조로 한쪽 면이 열려 있는 통로를 말하는데 보통 사원이나 궁전 등에서 건물 중앙의 정원을 둘러싼 지붕이 있는 긴 복도를 가리킨다. 이런 회랑은 통로의 양끝에서만이 아니라 어디서든지 중앙에 위치한 정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다. 즉 이번 녹색문화회랑 조성계획에서는 굴포천을 언제 어디서든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정원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굴포천이 부평구민들에게 정원 같은 느낌일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이 아닌 ‘이웃생명’을 위해 가급적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공간을 허락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파트와 공장, 도로 등 온통 회색과 검은색뿐인 부평에서 우리아이들과 이웃생명이 생태의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굴포천 뿐이기 때문에 자연형하천 조성사업을 시작했음을 기억해야한다.
부평유일의 생태축인 굴포천을 단순히 사람들만의 이용대상이 아닌 이웃생명과 함께 나누는 공간으로 인식하고, 굴포천에 살고 있는 맹꽁이와 물총새를 우리의 당당한 이웃으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이웃생명으로부터 이미 많은 공간과 시간을 빼앗아버렸다. 마지막 피난처인 굴포천마저 공유할 수 없다면, 이웃생명을 단순히 정원에서 키우는 동식물정도로만 여긴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아이들은 그들을 모니터나 책 속에서만 보게 될지도 모른다.
갈산동 배수펌프장에 ‘기후변화체험관’을 배치하고 굴포천과 청천천, 갈산천 등을 종·횡단하는 ‘그린웨이’ ‘블루웨이’라는 보행축을 만들 계획이란다. 굴포천 주변에 들어설 친환경재료박물관·친환경자동차전시관·맹꽁이체험학습관과 교육·생태문화프로그램 등 수많은 계획 속에서 진정한 ‘녹색’은 찾을 수 없다. 단지 이번 녹색문화회랑 조성사업은 하천생태계복원과는 거리가 먼 역사문화회랑, 생태회랑 등의 이름으로 사람중심에서 굴포천 이용을 극대화하겠다는 계산이다.
멸종위기에 처한 맹꽁이도 생태체험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의 놀이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친환경·기후변화체험이라는 이름으로 굴포천을 사람들만의 관광명소(?)로 조성하는 것이 녹색일 수는 없다. 그나마도 장마철에만 잠깐, 그것도 대부분은 울음소리로만 확인할 수 있는 맹꽁이의 생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단순히 보는 것 위주의 전시관과 박물관, 학습관은 사람만의 관광지로서도 이미 시대에 뒤쳐진 현실성 없는 계획이다. 차라리 주변지역에 크고 작은 빗물저장소를 마련해 굴포천의 유지용수를 확보하고, 미군기지주변의 산곡천 미복개구간과 굴포천본류 복개구간에 대한 복원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녹색은 경제성장과 분배만을 강조한 인간중심의 개발이나 진보, 인간만의 행복추구가 아니라 모든 생명의 가치가 존중되고 생태계 순환이 보장되는 사회의 상징이다. 우리사회가 녹색덧칠로 본질을 왜곡하지 말고 진정한 녹색의 가치를 되찾길 희망한다.
* 이 글은 2009년 3월 24일자 부평신문 부평칼럼에 실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