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무게

2009년 5월 27일 | 성명서/보도자료


                                       생명의 무게


 
                                                                                                유종반 / 인천녹색연합 공동대표

어떤 구도자가 길을 가다 사냥꾼에게 잡힌 새를 보았습니다. 새를 가엷게 여긴 구도자는 새의 무게만큼 자신의 살을 떼어주면 새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팔 하나를, 그리고 나머지 팔과 다리를 올려도 저울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마침내 그가 온몸으로 자신의 생명을 올려놓자 저울이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생명의 무게는 작은 새나 사람이나 더하고 덜함도 없이 똑같습니다. 하물며 풀 한 포기조차도 그러합니다.

몇 년전 천성산 관통터널 공사를 수차례 백일단식 등을 통해 반대하였던 지율스님에게 건설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꼬리치레도롱뇽이 사람 목숨보다 더 중요하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계양산 롯데골프장을 반대하는 환경단체 사람들에게 찬성하는 주민들은 도롱뇽보다 우리가 더 못하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동강댐 건설, 새만금 매립, 천성산 관통터널, 경인운하사업, 4대강 정비사업 등 자연생태계를 파괴하는 대규모 건설현장에서 개발을 찬성하는 업자나 주민들은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이런식으로 물었습니다. “사람이 중요하냐? 동물이나 식물이 중요하냐?”고 말입니다.

생명이란 살아 있는 목숨이란 의미입니다. 생명이 살아 있기 위해서는 어떤 생명이든 홀로서는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싸움 실력을 가진 맹수들도, 아주 뛰어난 두뇌로 첨단 과학기술을 통해 우주를 나는 인간들도, 아니 광합성 작용을 통해 스스로 생명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풀이나 나무들도 홀로서는 생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생명이 생명다워지기 위해서는, 생명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명이 생명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홀로가 아닌 다른 생명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생명은 낱 생명이 아닌 다른 생명과 함께하는 공동체 생명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드워드 오슨본 윌슨이 주창한 ‘생명애 이론’을 보면 생명애란 ‘다른 동식물과 관계를 맺으려는 의지’로서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자연 세계와 친밀감을 느끼며 이것은 개인이 성장해 나가는 데 생물학적으로 자연과의 친밀한 관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이처럼 스스로 자연생태계의 다른 생명체와 깊은 교감을 원하는 것은 다른 생명체와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만이 자신의 생명이 유지될 수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공동체 속에서만 의미가 있으며 사람이든 동물이나 식물이든 홀로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온전한 생명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생명의 세계에서는 서로 나누거나 분리할 수 없는 공동체 생명입니다. 네가 있어야 내가 있고, 내가 있어야 네가 있으며, 도롱뇽이 있어야 우리가 있고, 나무가 있어야 명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자연이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우리보다 더 소중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잘 유지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연 속의 숱한 생명체들이 건강하게 살아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이름만 다를 뿐 한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한 부모에서 태어난 자식들입니다. 손과 발, 눈과 귀처럼 한 몸에 붙어 서로 같은 목적을 위해 돕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공동생명체입니다. 이것이 생명의 이치와 삶의 방식입니다. 공동생명체인 자연은 서로 생명을 위해 상생과 공생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자는 생명의 도(道)와 법(法)이 바로 자연이라고 하였습니다.

생명의 가치는 비교하거나 따질 수 없습니다. 어떤 생명이든 다른 생명이 꼭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내 몸에서 손이 중요한가, 발이 중요한가, 눈이 중요한가, 귀가 중요한가를 따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산과 강, 바다를 파괴하는 것은 곧 내 자신을 죽이는 것이며, 내 자식을 죽이는 것이며 인류를 죽이는 것입니다. 계양산이 우리 목숨처럼 소중한 이유는 계양산이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 2009년 5월 26일자 인천신문 환경칼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