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저당잡힌 결정
이장수 /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장
얼마전 인천도시계획위원회에서 계양산 골프장 건설이 통과되었다. 도시계획위의 이번 결정으로 인천의 진산은 대규모 환경재앙을 피할 도리가 없게되었다. 도시계획위원들은 그들의 소신에 따라 어떤 결정이든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이번 결정도 환경 보호론자들의 시각에선 불만이 많지만, 그들은 얼마든지 다른 결정을 할 수 있고 가능하다. 그리고 절차적인 문제나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 도시계획위원들이 롯데의 로비에 넘어갔느니, 안 넘어갔느니 하는 확인할 수 없는 본질을 흐리는 불필요한 논쟁도 하고 싶지 않다.
다만 법적·절차적 문제가 없는 것이 꼭 정의로움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산 한쪽 면을 완전히 파헤치는 이 결정이 옳은 것이냐 하는 도덕적, 역사적 책임을 묻는 것은 법과 절차 문제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20년 혹은 50년, 백년후에 우리의 미래세대에게 골프장을 물려주는 것이 좋은 일인지, 아니면 잘 보존된 산하를 물려주는 것이 좋은 것인지는 롯데의 자본과 로비가 개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민적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다.
건전한 시민의 상식으로 판단할 때는 골프장 보다 자연을 물려주는 것이 백번 옳은 것으로 이미 시민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는 상태이다. 이를 무시하고 시민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공간을 재벌 총수 한 사람을 위해 골프장으로 진상한 결정은, 너무 부끄럽고 정의롭지 못한 바보들의 결정이란 비난을 받고있다.
계양산이 인천 시민들에겐 얼마나 소중한 산인가? 인천시는 진정 모르고 있단 말인가? 불과 수년전만 해도 계양산은 인천 전체에서 보면 인천의 진산으로서 북쪽으로 치우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검단신도시 개발 등 급속히 팽창하는 도시화로 인해 이제 계양산은 인천의 한복판에 자리잡은 명실상부한 진산이 되었다.
계양산은 사방으로 넉넉하게 인천을 품고 우리의 삶터를 만드는데 기꺼이 그 자락을 내어준, 인천의 모태(母胎)와 같은 존재의 산이다. 모태와 같은 산을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 쉽게 파헤치는 인천의 의식수준은, 인천이 겉은 치장할 수 있겠지만 내면은 결코 명품도시가 될 수 없는 천박한 도시임을 드러낼 뿐이다.
서울 남산이나 목포 유달산에 골프장을 짓겠다고 하면 과연 그 도시의 구성원들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과연 인천처럼 쉽게 골프장을 낼 수 있을까? 아마 그 해답은 ‘천만의 말씀’일 것이다. 서울이나 목포는 문화 생태적인 가치를 인정할 줄 아는 높은 의식 수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서울시는 죽어 있는 남산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물길을 만들 계획을 실천하고 있으며, 목포는 유달산의 지형적 특성을 살려 이미 전국적으로 유명한 목포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만들었다. 최소한 그들에게서 보이는 높은 수준의 문화와 생태의식은 없더라도 골프장 하나 건설하면 지역 경제가 살고 관광 명소가 된다고 생각하는 인천시의 천박하기 이룰 데 없는 사고방식은, 인천이 아무리 높은 빌딩 짓고 큰 건축물을 만들어서 겉을 화려하게 치장한다 하더라도 명품도시가 될 수 없는 치명적 약점이다.
우리의 아름다운 산하는 대대손손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하지만 미래세대, 혹은 후손이라 불리는 앞으로의 세대는 개념적으로는 존재하지만 현실적인 실체가 없어 눈뜨고 미래를 도둑맞고 있다. 단지 조직화되지 않고, 정치세력화되지 않은 이유로 그들의 미래와 관련된 아주 중요한 결정에 대해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배려할 수 있는 사회구조, 그것이 선진국이고 명품 사회인 것이다. 미래세대를 위해 미래에 투자하지 못할망정 미래를 저당잡히는 어리석은 결정은 지금이라도 철회되어야 한다. 그것은 시혜가 아니라 책무이다.
* 2009년 10월 6일자 인천신문 환경칼럼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