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굴업도
이장수 /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장
굴업도가 다행히 CJ의 골프장 공사 위협으로부터 일단은 한숨을 돌렸다. CJ가 자회사를 통해 관광단지 지정 명목으로 골프장 건설을 강행하려는 의도가 도시계획위원회에서 몇 가지 문제로 심도있는 논의를 위해 보류됐기 때문이다.근본적으로 문제가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사안의 심각성을 도시계획 위원들이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보류 결정은 의미가 있다.
굴업도 문제는 거슬러 올라가면 1994년 정부의 일방적인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 발표로 조용했던 덕적군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었다.정부가 핵폐기장 시설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굴업도는 덕적군도에 딸린 섬으로 생태계의 보고이며 섬 전체가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보석같은 섬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거주인구는 10여명도 되지 않는 아주 작은 섬이다.
정부는 안면도에서의 거센 저항을 한번 겪은 터라 굴업도가 사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라 저항이 심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해서 일방적으로 최종 핵폐기물 처리 장소로 발표했다. 하지만 안면도 못지않은 저항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부의 발표가 있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인천의 각계 각층 사람들이 조직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굴업도 핵폐기물 반대 투쟁은 시민운동의 교과서로 불릴 만큼 정석대로 진행됐다. 정부의 발표가 있고 제일 먼저 시민사회운동 진영에서 문제제기가 일어났고 덕적도 주민들이 중심이 돼 지역주민이 앞장서고 전 시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전폭적인 인천시민들의 지지를 받아 결국 정부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마무리에서 지층문제의 결함이 발견돼 정부가 포기했지만 인천시민들이 지켜낸 것이나 다름없는, 인천 시민운동사에 찬란한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만약 그 때 인천 시민들이 굴업도를 지켜내지 못했을 경우의 굴업도를 상상해보라. 핵폐기물 시설이 들어왔다면 아마 무장한 군인 내지는 용역 보안업체의 삼엄한 경비로 인해 인천시민들은 굴업도에 접근조차 못하고 천혜의 섬을 영원히 잃었을 것이다.
굴업도의 승리는 그 동안 시민사회운동 영역이 시민참여 없이 시민단체의 독점적 의제에 머물렀던 한계를 극복하고 전 시민적 의제화에 성공한 아주 귀한 경험이며 사례인 것이다. 따라서 굴업도 승리는 시민운동만의 자랑이 아닌 시민 모두의 자랑거리인 것이다.
하지만 길 닦아 놓으니까 뭐 지나간다고 덕적도 주민과 인천시민들이 처절하게 지켜낸 굴업도의 성과를 엉뚱하게 CJ란 기업이 날로 먹으려 하고 있어 시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굴업도를 지키는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CJ가 굴업도에 관광단지를 지정받아 골프장 건설 등 막대한 개발 특혜를 독식 하려하는 것은 기업의 도의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인천시민들은 누구하나 결코 CJ한테 골프장을 진상하려 굴업도를 지켜낸 것이 아니다.
이 섬에 한번이라도 와본 사람이라면 논리이전에 상식적으로 골프장 건설이 말도 안된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매, 먹구렁이를 포함해 멸종위기 야생 동, 식물 1, 2급이 즐비하며 생태자연도 등급도 섬의 대부분이 1등급에 가까운 굴업도는 어떠한 논리로도 개발이 이뤄져서는 안된다. 굴업도는 비록 사유지가 대부분이라 해도 그 소유자 한 기업만의 재산이 아닌 인천 시민 모두가 누려야 하는 시민들의 것이어야 한다.
굴업도는 단순히 자연뿐만 아니라 인천시민의 역사정신이 살아 숨쉬는 섬이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인천 모든 시민의 에너지를 한데 묶은 굴업도는 살아 숨쉬는 시민운동사의 역사, 정신문화까지 포함한 자연사 종합 박물관이다. 보탤 필요도 없고 뺄 필요도 없는,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굴업도! 인천시민의 섬으로 영원하라.
* 이 글은 2009년 12월 17일자 인천신문에 기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