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살아갈 부평
장정구 / 인천녹색연합 사무처장
내가 부평에 온 것은 91년이다. 서울로 대학을 다니기 위해 상대적으로 집값이 싼 부평에 자리를 잡으면서부터다. 그때 지금의 부평구청 앞에서는 인천지하철1호선 건설과 굴포천 복개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판의 소음과 공장 굴뚝의 연기가 부평의 첫인상으로, 간혹 보이는 농경지와 굴포천, 한남정맥 산줄기가 유일한 숨통이었다.
90년대 초의 부평이 수많은 공장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연기로 상징됐다면, 지금의 부평은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미로의 아파트 숲이다. IMF이후 공장들이 떠난 자리를 아파트가 접수한 것이다. 산곡동의 한국종합기계 자리에는 한화아파트, 청천동의 동양철관에는 대우아파트, 전남방직에는 금호아파트, 삼산동의 코리아스파이스에는 엠코아파트가 각각 들어섰다. 그나마 숨통역할을 하던 삼산동과 계산동 논밭에까지 고층아파트가 빼곡하게 들어차면서 부평의 어디를 둘러봐도 숨 쉴 공간이 마땅치를 않다.
또한 지금 부평은 재개발, 재건축, 도시환경정비 등 개발예정지가 50곳이 넘는다. 개발업자들의 계획대로라면 이곳도 어김없는 고층아파트 단지다. 앞으로 부평에서 하늘을 보려면 고개를 한껏 쳐들어야 할 것이고 그나마도 파란 하늘은 꿈도 꿀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부평은 환경과 생명의 미래를 이야기할 수 없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만의 회색공간이 되어버릴 것이다. 도시에서 물길은 생명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이며 도시 열섬과 미세먼지 등을 줄일 수 있는 공간이다. 도심의 각박한 삶 속에서 자연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즉 물길은 도시에서 사람을 포함한 수많은 생명들의 마지막 보루인 것이다.
부평의 미래상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산곡천 복개
그러나 지금 부평의 한복판에서는 생명의 물길을 덮는 굴착기 굉음이 요란하다. 12월 4일, 부평구와 위정자들이 기공식을 갖고 굴포천의 지류인 산곡천의 마지막 숨통 끊기에 나선 것이다. 악취와 해충 등 민원해소가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개발동맹의 또 한 번의 의기투합에 불과하다. 지역민이 원하는 것은 복개가 아닌 악취와 생활하수 유입 등 열악한 주변 환경 개선이었다.
이미 많은 시민들은 물길복원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아이들의 자연학습에도 좋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임시관로를 설치해 생활하수를 차집하고, 갈대와 부들 등 수생식물과 버드나무 등 큰키나무를 심어 하천습지공원과 자연체험학습장으로 조성하는 것이 지역주민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다.
이번 산곡천 복개는 부평의 미래상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산곡천은 제6보급창이 위치한 장고개에서 발원해 부평미군부대 북측을 지나 부평구청에서 굴포천 본류와 합류한다. 현재 부평미군부대 일원에 대한 도시관리계획이 수립돼 이미 많은 전문가들은 미군기지 활용과 굴포천 복원을 연계해 부평의 마스터플랜을 세워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산곡천의 복개구간 이용률이 상대적으로 낮고 주변의 상당수 토지는 자투리텃밭형태로 이용되고 있어 연못 등 다양한 형태의 저류시설을 확보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산곡천 복개는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인천의 5대 자연형하천 사업, ‘강의 날’ 전국대회 개최 등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인천시의 하천살리기 사업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며 하천을 복원하려는 인천시 하천마스터플랜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부평, 뿌리내리고 살아갈 부평사람들과 생명들의 터전이길
이미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인 도시에서 생명의 숨결을 이으려고 막대한 예산을 편성해 도심의 물길을 복원하고 있다. 부평에서도 분명히 얼마 지나지 않아 굴포천 복개구간을 복원하려는 운동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 때가 되면 우리는 이번 복개를 예산 낭비, 근시안적 행정의 대표 사례로 손꼽으며 분명히 후회하게 될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미군부대의 담벼락이 헐리고 시민들에게 돌아온다면 부평은 큰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미군부대 부지와 더불어 부평의 미래를 좌우할 존재로 굴포천의 본류와 지류 등 과거 부평평야를 적시며 흘렀던 물길을 꼽고 있다.
지금은 비록 악취를 풍기며 벌레들의 온상이라고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 콘크리트로 덮이게 되었지만 미군부대 생태공원과 함께 자연하천으로 돌아온다면 산곡천 주변은 인천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살기 좋은 생태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앞으로 부평은 태어난 지 이제 막 100일된 나의 딸이 살아갈 곳이다. 부평에서 계속 살아갈 나와 딸아이에게 부평의 미래 모습은 아주 중요한 문제다. 그래서 나는 소망한다. 부평이 일부의 ‘토목건축족’과 돈을 모아 떠날 사람들이 아닌, 이곳에 뿌리내리고 살아갈 부평사람들과 생명들의 터전이길. 또한 나는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나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달려 있음을.
* 이 글은 12월 15일자 부평신문의 부평칼럼에 실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