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린 놈, 외면하는 놈 그리고 치울 놈

2010년 1월 19일 | 성명서/보도자료


                         버린 놈, 외면하는 놈 그리고 치울 놈

                                                                                       장정구 / 인천녹색연합 사무처장
 

 2000년 가을, 문학산 기슭에서 석유가 나온다는 괴담(?)이 인천 전역에 퍼졌다. 그러나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포크레인을 동원해서 땅을 파보니 수십년 전 그곳에 있었던 미군 저유탱크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땅을 오염시키고 우물도 오염시켜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당시 환경부와 인천시는 지역주민들의 높은 암 발생률의 원인은 밝혀내지 않은 채 서둘러 오염정화작업을 마무리해버렸다.

  폭설과 혹한으로 온 나라가 갈피를 잡지 못하던 지난 1월 14일, 대한민국 정부는 부산의 미군기지인 캠프 하야리야를 비롯해 6개 미군기지의 반환 협상을 완료했다면서, 환경오염 치유와 관련해서는 캠프 하야리야 부지의 0.26%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은 미군이 정화할 필요가 없어 그대로 반환받았다고 밝혔다. 정부는 작년 3월 캠프 하야리야를 비롯해 7개 미군기지를 미군이 주장하는 KISE ‘밝혀진(known), 급박한(imminent), 실질적으로(substantial) 인체에 유해한(endangerments to human health)’ 기준에 따라 환경오염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정화 협상을 한다는 내용의 ‘공동환경평가절차서’를 미군과 합의한 바 있다. 그 합의에 의거해 이번 반환기지는 환경오염 위해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돼 미군의 정화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2009년 12월 16일, 부평구청에서는 부평미군기지 캠프마켓의 2단계 환경기초조사 결과 설명회가 있었다. 미군기지 주변에 대해서만 실시한 이번 조사에서 환경관리공단은 석유계탄화수소(THP)·벤젠 등 유류 오염과 구리·납·아연 등의 중금속오염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토양오염의 경우 조사지역 5곳 모두 오염 우려기준을 초과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미군기지 내부에서 발생한 오염물질이 외부로 유출됐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번 조사가 미군기지의 주변지역에 국한된 것으로 미군기지 내부의 오염정도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고 밝혔다. 결국 변죽만 요란하게 울린 셈이 됐다. 

  10년 전, 문학산 미군기름 유출 사건을 서둘러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30년이나 지나 미군에게 그 정화의 책임을 물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1950년대 초 미군이 세웠던 기름 탱크에서 기름이 유출됐으나 1970년대 초 저유소가 이전해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것이었다. 결국 오염원인자가 불명확한 경우 토지소유자가 연대책임을 져야한다는 바뀐 법에 따라 복원과 복구의 책임을 연수구와 인천시가 졌다. 두 자치단체는 공동책임으로 환경조사를 실시하고 2004년까지 수천만원을 들여 정화작업을 벌여야 했다.

  지하수와 토양오염은 오염 징후가 대기나 수질오염과는 달리 서서히 나타나며 부지불식간에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면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특히 유류와 중금속 같은 경우는 중독 메커니즘도 다양하고 서서히 진행되며, 미량일지라도 생물체에 흡수, 축적되기 쉬운 반면 확실한 치료법이 없고 대(代)물림 기형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어 사회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하는 것이다.

  앞으로 2017년까지 부평 캠프마켓을 포함해 여의도 면적(2.95㎢)의 14배에 달하는 미군기지가 반환될 예정이다. 이들 대부분은 기지 밖으로 기름이 흘러나오고 중금속 오염이 확인될 정도로 환경오염이 심각한 기지다. 어떻게 누가 복원할 것인지가 남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알지 못하고 있다. 부평미군기지가 얼마나 오염됐는지 그 복구비용으로 얼마가 들게 될지. 다만 부평미군기지 주변지역이 심각한 수준으로 오염됐다는 것과 2007년 반환된 기지들의 정화 비용만도 2000억원에 달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시민들은 소망하고 있다. 부평미군기지가 얼른 반환돼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또 오래전부터 주장하고 있다, 미군기지를 부평의 미래세대와 이웃생명들이 원하는 생태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서는 유해물질에 대한 올바른 환경정화가 반드시 선행돼야한다는 것을.

* 2010년 1월 19일자 부평신문 부평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