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치(他治)가 아닌 자치(自治)의 삶터
[환경칼럼]성은혜 인천녹색연합 녹색교육부장
일본 큐슈지역의 아야정마을은 지역활성화운동의 밑거름을 만들기 위해 사람을 꾸리고,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도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공간 확보에 주력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야정 마을이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선진지로서 괄목할만한 변화를 이뤄내기까지 전환점이 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이는 행정의 말단조직이던 구장(한국의 이장)제도를 폐지하고 1965년 ‘자치공민관’ 제도를 시행한 것이다.
한 때 위기로 다가왔던 아야정 조엽수림의 대규모 산림벌채계획을 저지할 수 있었던 것도 자치공민관이라는 구조 덕분에 가능했다. 정장은 일방적으로 본인의 의견을 밀어붙인 것이 아니라 자치공민관 안에서 주민들과 함께 모여 왜 조엽수림을 보존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토론하며 설득했다.
구장제가 폐지되기 전까지 구장은 행정의 손과 발 노릇을 하며 행정이 하라는 대로 움직이던 구조였지만 지역주민의 힘으로 산림벌채계획을 저지한 경험을 통해 마을의 문제는 지역주민 자치의 힘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자치공민관은 우리로 말하자면 주민자치센터와 개념이 비슷한데 주체나 성격은 다소 다르다. 하는 일을 살펴보면 총무부, 산업부, 보건체육부, 교통부, 생애학습추진원으로 이뤄져 각 부서에서는 예산관리, 마을 사업 계획, 건강증진활동, 교통안전, 평생학습교육 등 지역의 일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예산은 지역주민이 매달 내는 회비로 전체 운영경비의 70%를 해결하고, 나머지 30%는 행정 보조금으로 운영된다.
운영책임자인 공민관장의 보수도 보통 연간 25만엔 정도, 부장은 4만엔 정도를 받고 있는데 이는 다른 지자체에 비해 매우 적은 보수를 받고 있는 셈이다. 자치공민관의 각 부서장은 지구의 반장이 맡고 각 부서의 활동들은 지역주민이 참여해 토론하고 논의한 후 내린 결정들로 진행되므로 지역의 일을 자치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이를 보면 지역주민 스스로가 자치공민관의 예산 및 운영 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성숙하고 활발해진 자치공민관 활동으로 아야정의 실질적인 주민자치가 이뤄졌고 이후 대등한 입장으로서 민관 협력 관계가 맺어진다. 매월 1회 마을의 대표라 할 수 있는 22개의 자치공민관장과 아야정장이 만나 회의를 하는데 이 때 마을 사업에 대한 의견을 조절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제안하고 논의한다. 1년에 한 번씩은 정장, 공민관장, 행정직원, 지역주민이 모두 모여 대대적인 마을 공청회 및 토론회를 진행하는데 이는 40여년 간 한 번도 빠짐없이 매년 진행해오고 있다고 한다. 모쿠도 자치공민관장인 ‘모리야마 키요카’씨는 현재 아야정의 자치공민관과 행정과의 관계를 마치 수레의 두 바퀴처럼 뗄래야 뗄 수 없는 매우 유기적인 관계라고 설명했다.
자치공민관제를 도입할 당시 아야정장은 지역주민이 너무 행정에만 의존하는 의타심은 지역활성화운동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라 생각했다. 지역의 일은 마을주민 스스로가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 아래 자치공민관제를 도입한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야정 마을에서 알 수 있듯, 타치(他治)가 아닌 자치(自治)는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힘이다. 이미 우리 안에 있는 자치의 힘을 살리고 북돋는 과정,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고 진보로 가는 길이 아닐까. 지속가능한 자치의 삶과 삶터를 만들어가는 원동력을 어디에서 누구와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지방선거를 몇 개월 앞두고 있는 요즘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 이 글은 2월 2일자 인천신문 환경칼럼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