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장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장정구 /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장
환경부 중앙정책위원 장정구입니다. 중앙정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몇 번 뵌 적은 있지만 아마 저를 잘 알지는 못하실 겁니다. 인천에서 살고 있지만 저는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강원도 두메산골의 나무꾼입니다. 행정구역상으로 설악산의 절반정도에 해당하는 내설악 인제군에서 태어났으니 설악산이 고향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산좋고 물좋고 인심좋은, 지금도 혼자되신 어머니를 비롯하여 많은 일가친척들은 여전히 살고 있는 강원도를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백두대간의 허리에 해당하는 향로봉–설악산 구간은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인천경기만의 도서·갯벌과 더불어 서해안갯벌·비무장지대·백두대간의 한반도 3대생태축 중 2개가 교차하는, 우리나라에서 단 두 곳뿐인 자연생태보고라 환경운동가로서 더욱 자랑스럽습니다.
그런 제가 이렇게 장관께 길지 않은 글을 쓰는 이유는 그런 설악산의 정상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심지어 호텔까지 짓겠다는 계획이 추진 중이라는 소식 때문입니다. 설악산이 어떤 산입니까? 설악산은 1970년 국립공원으로, 1982년에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산입니다. 또한 천연보호구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백두대간보호구역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5개의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설악산의 정상까지 자연환경보호의 주무부서인 환경부가 개발에 앞장선다니 도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설악산의 정상까지 개발한다면 도대체 우리나라 어느 곳을 미래세대와 이웃생명을 위해 보전할 수 있겠습니까?
장관께서는 박근혜 정부 초대 환경부장관으로서 모든 국민이 환경복지를 골고루 누리면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현하는 환경보전 모범국가의 기틀을 다지겠다고 하셨습니다. 혹시 장관께서 말씀하신 모든 국민의 환경복지가 설악산 정상까지 케이블카를 설치하여 장애인들도 설악산 정상을 밟는 것인지요? 그런데 장애인들에게 지금 필요한 환경복지는 설악산 정상 케이블카보다는 편안한 도시공원과 안전한 대중교통 이용이 아닐까요? 정상까지 케이블카를 설치한다고 해도 입구까지 갈 수 없다면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하겠지요. 환경오염이나 자연파괴의 피해가 사회적, 생물학적 약자들에게 더 먼저, 더 치명적으로 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장애인들의 위해서라도 자연환경보전이 환경복지의 첫걸음입니다.
또, 장관께서는 개발과 보전의 조화를 강조하셨습니다. 개발과 보전의 조화, 저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장관께서 말씀하신 개발과 보전의 조화가 전국토 면적의 2%도 안되는 국립공원, 자연환경을 절대보전하겠다고 지정한 국립공원마저 유원지로 만드는 것인가요? 환경부는 수년째 반달가슴곰, 황새, 산양 등 멸종위기야생동물을 복원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식지를 파괴하면서 추진하는 종복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동물원 울타리 안에 기르기 위해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복원하는 것인가요?
잘 아시겠지만 설악산 케이블카사업은 이미 두 차례 부결된 바 있는 사업입니다. 정부정책이 계속 떼를 쓰면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주듯 한다면, 5년마다 선출된 정부에 따라 제도의 근간이 바뀐다면 도대체 국민들에게 무엇이 원칙이고 무엇을 지키라고 하겠습니까? 삼 세 번 만에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한 강원도는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인 가리왕산을 밀어버리고 3일짜리 활강경기장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세 번 만에 설악산 정상 케이블카 유치에 성공한다면 이제 모든 지자체들은 앞을 다투어 ‘지역이 낙후되었다 경제활성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국립공원 등 보호지역도 개발해야한다‘고 주장할 겁니다. 자연환경을 단순히 돈벌이대상으로만 여기고 환경파괴 막개발에 더욱 혈안이 될 겁니다. 무려 5개 보호지역인 설악산 개발을 승인한 환경부가 무엇을 근거로 이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은 금수강산 전체를 파헤치는 신호탄이 될 것입니다.
장관님, 수많은 전문가와 환경단체들이 반대했던 MB 4대강사업 과연 결과가 어떻습니까? 맑아야 할 강물은 ‘녹조라떼‘가 되었고 전국민은 분노를 넘어 조롱하고 있습니다. 4대강의 ‘녹색성장‘에 환경부는 책임없다고 결코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이제 국립공원은 환경부의 마지막 자존심입니다. 과분한 역할이지만 환경부의 중앙정책위원인 저는 일주일째 정부세종청사 환경부 앞에서 이를 간곡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환경부뿐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환경인들의 자존심인 국립공원을 지켜주십시오. 환경정책기본법에 따라 환경부의 환경정책과 관련하여 심의·자문해야 하는 중앙정책위원으로서 편지를 씁니다. 부디 장관님과 환경부 공무원들의 환경인으로서 현명하고 자존감 있는 판단과 결정을 기대하겠습니다.
* 이 글은 국립공원위원회가 열리기 하루 전인 8월 27일 인천일보 환경의창에 실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