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순례의 마지막 기록

2006년 5월 8일 | 미분류

현지사정으로 녹색순례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날의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인천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녹색순례편지를 관심있게 읽은 회원들의 말씀과 어떤 형태로든 마무리를 해야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에서 순례에 대한 마지막 기록을 남깁니다. 순례 다섯 번째 날(5월2일) 오전 11시경, 상훈사를 출발하여 형제봉으로 향하던 순례단은 골짜기로부터 들려오는 다급한 구조신호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빠듯한 일정으로 순례단은 예정대로 형제봉의 패러글라이딩활공장으로 향하고 부대장인 조회은 활동가와 홍보팀의 배제선 활동가가 남아서 구조를 시도했으나 워낙 깊은 산이라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데 실패하여 119구조대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는 지역주민이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들것을 실은 사다리차가 현장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끝까지 남아서 구조상황을 지켜보고 싶었으나 본대로부터 너무 멀어져 있었고, 핸드폰이 불통인 지역이라 회남재에서 합류하기로 되어있는 기자들에게 연락할 길이 없어 119구조대에 상황을 인수인계한 후 서둘러 회남재로 향했습니다. 50여분을 차로 이동하여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되었던 악양면 평사리에 이르니 양흥모대장으로부터 순례단이 더위에 지쳐있으니 막걸리를 마시면 어떻겠느냐는 메시지가 날아들었습니다. 순례중간에 술을 마시는 것이 순례의 기본취지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땡볕에 아스팔트를 걷고 있는 순례단은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구나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해서 함께 지원차에 타고 있는 준비팀(양흥모대장을 제외하고 모두 지원차에 있었음)에게 의견을 물어보니 어떻게 순례대장 입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냐며 모두 발끈하더군요. 저도 다소 일방적이고 즉흥적인 대장의 순례준비와 일정진행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격렬한 거부반응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씁쓸하더군요. 이날 숙소는 청학동의 묵계초등학교로 오후5시경에 도착했습니다. 운동장의 한켠에 짐을 푼 순례단은 피로를 풀고 모둠별 친목도모를 위해 운동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재기차기, 단체줄넘기 그리고 이어달리기를 하였는데 전체모둠 저녁식사준비와 설거지를 걸고 진행하다보니 즐거워하면서도 모두 필사적이었습니다. 서울의 서재철국장으로부터 지리산 빨치산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7시에 등교(청학동에서 7시15분 셔틀버스가 도착한다더군요. 이곳도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하는 학생들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했습니다. 여섯째 날은 비교적 짧은 코스로 삼신봉터널을 거쳐 몇 년전 문제가 되었던 양수발전소 상부댐을 지나 마지막 숙소인 산청군 시천면 반천리 서지농원에 도착하였습니다. 지리산에서도 부유한 촌락인 반천리의 마을주민들은 일년내내 녹차재배, 고로쇠채취, 밤수확, 민박 등을 통해 도회지에 집 한 채씩은 기본으로 마련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순례단은 그동안 몸에 덕지덕지한 때를 벗겨내고 덕산막걸리로 짧은 순례일정의 아쉬움을 달래며 목청컷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튿날, 오랜만에 달콤한 늦잠을 잔 순례단은 외공리 양민학살현장과 남명조식선생의 덕천서원을 방문하는 것으로 2006녹색순례 지리산 ‘길에서 길을 묻다’의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지원팀으로 비록 함께 걷지는 못했지만 짧은 순례길에서 과거의 삶과 현재의 모습을 통해  긴 인생의 여정을 그려보았습니다. 아직은 아집에 사로잡혀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 서투르고 모든 생명과의 관계맺음이 내 중심적이지만 꾸준히 퍼내다보면 언젠가는 마르게 된다는 우물물을 생각하며 부단히 정진하리라는 맘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2006년 5월 8일 부평 집에서  나무꾼 * 인천녹색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3-04-22 1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