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강 이름은 여강입니다.

2010년 6월 15일 | 회원소모임-기타

아버지의 고향은 여주입니다.

 그곳엔 친척들이 대대로 물려받은 땅에 농사를 지으면서 아직도 살고 있지요.
 
 제 나이 열두 살 여름 방학 때, 기차를 타고 여주에 놀러갔었지요.
서울에서 온 친척이라고, 여주에 있는 언니와 오빠들은 제게 무척이나 잘 해주었습니다.
밤이면 모깃불을 키고 옥수수를 먹으며 별을 헤고, 반딧불 구경도 했지요.
더운 낮에는 신륵사 앞 강변에 가서 수영을 했습니다.
나지막한 강물은 시원하면서도 따스하게 몸을 휘감고,
강변의 나무들은 바람에 흔들리며  반짝이고, 
고운 모래는 발을 간지럽혔지요.
 
아이는 자라서 이제 엄마가 되었지만, 감미롭던 강변의 추억은 가슴 깊이 남아 가끔씩 미소짓곤 합니다.
 

요즘 나라에서는 ‘4대강 사업’을 한다면서 ‘4대강을 살리겠다’고 하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지만, 공사는 빠른 속도로 강행되고 있습니다.

강바닥을 넓고 깊게 파고, 강 옆엔 콘크리트로 만든 자전거 도로와 시민공원을 만들고,
강물에는 물을 조절하는 거대한 보를 쌓는 것, 그것이 4대강 사업이랍니다.
그러기 위해 30조라는 큰돈이 든답니다.
 

어떤 공사를 해서 어떤 모양을 만들겠다는 것인지, 직접 가보고 싶었습니다.
신문으로만 읽고, 인터넷 사진으로만 봐서는 잘 실감이 나지 않았지요.
그러던 차에, 인천녹색연합에서 남한강 공사 현장에 간다고 하기에 따라나섰습니다.
 
가서, 보았습니다.
곱기로 소문났던 금모래 은모래도 사라지고,
강변에 아름답게 줄지어 있던 나무들도 베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강물을 깊이 파내다가 나온 커다란 돌들은 어디론가 실려갑니다.

 

아름답던 강변의 풍광은 콘크리트 구조물로 덮여가고 있었지요.
강변에 자전거 도로와 시민 공원터도 만들어 놓은 것이, 서울시의 한강과 똑같은 모양새가 되어가고 있었지요.
 

 

 

 
 
 

 
 
 
 
   
 
 
저는 서울의 한강을 좋아합니다.
주말이면 수많은 시민들이 한강변에 나와서 자전거를 타고 연을 날리고 운동을 하면서 휴식을 합니다.
 
그렇지만 그 강물은 아득히 넓고 깊어서 바라볼 수만 있는 강입니다.
치마나 바지를 걷고, 찰박 찰박 걸어볼 수도 없고, 조약돌을 집어 수제비를 뜰 수도 없는 강입니다.
그러기에는 더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깨끗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지류를 관리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쓰레기를 거둬가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아직 서울의 한강은 더럽습니다. 강물 속에 가로막고 있는 ‘보’때문이라지요.
 
 

4대강 사업구간은 613 킬로미터라고 합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가 400킬로미터 정도라지요.
그 길고 긴 강변을 모두 다 서울의 한강처럼 만들어 놓을 건가요?
낙동강 금강 영산강 남한강 !!!!
그 아름다운 풍광이 있는 모든 구간을 몽땅 다 서울의 한강처럼 만들어 놓을 건가요?
 
에이, 설마요! 아니겠지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가 봅니다…… 

   2010년 6월 14일 오늘 아침,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4대강 사업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세월이 흐르고 나면 지금 하는 4대강 사업이 잘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과연 그럴까요? 저는 미래를 예견할 능력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4대강 사업이 풍부하고 다양한 생물종들을 사라지게 하는 사업이라는 것은 알 것 같습니다.

 CBD협약(생물 다양성 협약)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다양하고 풍부한 생물종은 단기간적인 이익으로 따지기는 힘들지만,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소중한 자원입니다.
 
낮은 곳도 있고 깊은 곳도 있는 강에는 물의 깊이와 흐름의 차이에 따라 수없이 많은 종류의 생물이 살아갑니다.
강을 똑같은 깊이로 파면, 그 강에는 그 깊이에 적응된 몇 종의 생물들만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경제를 삶의 1순위로 보는 사람의 눈에는 더 소중한 보물이 보이지 않나 봅니다.
실질적인 현금이 오가는 것만을 경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더 소중한 보물은 보이지 않나 봅니다.

강을 살리고 싶다면, 지류를 깨끗이 관리하고, 제방을 든든히 쌓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일에는 30조라는 큰 예산도 필요없습니다

얼마나 깊이 하려는지 알아봤습니다. 4- 6 미터라고 하더군요. 아이의 배꼽근처를 노닐던 강물이 말입니다.
 

곧 파헤쳐질 운명을,   함초롬히 비에 젖어 있던 이 모든 꽃들은 알고 있을까요…………

 
 
 
 
 
 
 
 
 
 
 
 
 퐁당샘과 게눈 아이들과 함께 오르는 가파른 저 산길도 파헤쳐지고, 
 박넝쿨님이 서 있는 자리도 물에 묻힐 거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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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륵사 앞 그 강물의 이름은 지도에서는 남한강이지만, 전해 내려오는 이름은 여강입니다.

큰 장마가 지면 아슬아슬하게 넘실거릴 때도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제방을 쌓고 든든히 하면서 큰 피해 없이 살아왔지요.
 
이제 여강은 ‘몸을 담을 수 없는 강”이 되려고 합니다.
“바라 보기만 해야 하는 강” 이 되려고 합니다.
 
강변의 반짝이는 모래도, 
        물수제비 뜰 수 있는 조약돌도 다 사라지고
그 대신, 반반한 자전거 도로와 시민 공원이랍니다.
 
이제는
자맥질을 하고 싶거나 물수제비를 뜨고 싶으면,  멀리 돌아 들어가서 작은 지류로 가야겠지요.
다리를 적시며 참방참방 걷고 싶어도, 지류에서만 해야겠지요.
 
그렇지만, 내 가슴속에 살아 숨쉬는 여주의 강은,
금모래 곱디 곱던 여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