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도 여강의 기억이 있습니다.
여주는 저희 아빠와 고모, 삼촌들이 나고, 자란곳이고, 저의 유년의 추억이 많이 있는 곳이지요.
할머니가 여주에 계셨고, 방학이면 옷가방을 한보따리 지고
맞벌이 하는 부모님 손을 덜어주기 위해 어쩔수 없이 시골로 갔어야 했던 곳이었습니다.
물론 전 시골 가는것이 무척 좋았지만요… ^^
여주는 저희 아빠와 고모, 삼촌들이 나고, 자란곳이고, 저의 유년의 추억이 많이 있는 곳이지요.
할머니가 여주에 계셨고, 방학이면 옷가방을 한보따리 지고
맞벌이 하는 부모님 손을 덜어주기 위해 어쩔수 없이 시골로 갔어야 했던 곳이었습니다.
물론 전 시골 가는것이 무척 좋았지만요… ^^
저희 시골은 여주여도 남한강과 가깝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시외버스로 여주까지 가서 시내버스로 할머니집까지 갈때 꼭 남한강 다리를 건너서 가야만 했지요.
그렇게 버스에서 내려다 보기만 했던 남한강을
언젠가 한번 할머니, 고모, 삼촌, 그리고 우리 식구들 모두 함께
텐트를 갖고 놀러간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농사지으시는 할머니가 큰맘먹고 새끼들데리고 나서셨던게 아닌지…
기껏해야 중학생이었던 막내삼촌이 제게는 엄청 멀게만 느껴졌던 저 건너 바위까지 헤엄쳐 갈때
얼마나 마음조리면서 바라봤던지…
여울님의 글을 읽으며 그때가 다시 생각났습니다.
전 기억합니다.
제가 여름방학이면 논두렁길을 따라 수영하러 갔던 시골개울이(그 물은 흘러흘러 남한강으로 갔을 겁니다.)
어느 해던가 포크레인들이 골재를 채취하기 위해 강변에 가득했었고
그 다음해 갔을때는 개울 폭이 넓어지고, 한가운데 보가 생겼는데…
그 뒤로는 수영하면 사고 난다고 어른들이 개울에 가서 놀지 못하게 했었지요.
그 때부터 잠수해가며 다슬기잡고, 피트병으로 어항 만들어 떡밥넣고 물고기를 잡거나,
물속의 수초들 사이를 헤집고 물고기 잡으며 놀던 시골 개울은 사라졌다는 것을
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몇년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정말 금모래 가득하고, 강변따라 커다란 바위와 숲이 있는 남한강.
이 사진이 이젠 정말 귀한 사진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안니지…..
이 사진이 이젠 정말 귀한 사진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안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