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구의 인천 하천이야기]
(35) 송도 북측 수로와 습지보호지역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코로나에 갈 곳도 없고 답답해서 그냥 바람 쐬려고 나왔어요”
남동공단 앞 송도갯벌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송도11공구 조성공사 현장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과 강아지까지 데리고 나와 텐트 치고 야영하는 한 가족이 서로 멋쩍게 웃으며 이야기한다. 갯벌 안쪽으로 적게 잡아도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다. 밀물에 여기저기서 오동통한 망둥이가 올라온다. 헤아려보니 백로 65마리, 왜가리 23마리, 가마우지 17마리, 청둥오리 14마리, 뒷부리도요 12마리, 청다리도요 7마리, 그 외 다수의 흰빰검둥오리와 갈매기들, 그리고 풀밭의 참새떼와 할미새 3마리가 노닌다.
평소 같았으면 밀물에 수십마리 저어새들의 부리질이 한창이었을 갯벌에 낚시객들 눈치보며 부리질하는 아기 저어새 8마리뿐이다. 2020년 10월 3일(토) 오후 2시경 신항진입도로 가설교량에서부터 송도4교 사이의 풍경이다. 이곳은 송도갯벌 습지보호지역이다.
“쓰레기 투기 등 추가적인 환경문제가 발생하고 있어요”
2016년 10월 29일, 제3경인고속도로 고잔톨게이트 인근 한 습지를 불법훼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불법 매립한 사람은 처벌을 받았으나 4년이 다 되도록 원상복구되지 않아 쓰레기 투기 등 추가적인 문제들이 발생했다. 해당 습지는 습지보호지역이며 람사르습지인 송도갯벌의 주변습지로 인천에 얼마 남지 않은 자연형 습지로 멸종위기종인 알락꼬리마도요, 저어새, 검은머리물떼새 등이 찾아오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남동구에서 2013년 야구장, 테니스장 등이 포함된 체육시설 조성을 위해 공유수면(갯벌) 매립에 대한 행정절차를 진행하다가 계획의 부적정성, 생물 다양성‧서식지 보전 등을 이유로 환경부 최종 부동의한 곳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불법매립과 원상복구 지연 등에 행정기관의 방조와 묵인 의혹까지 제기되었다. 2020년 7월 인천시는 행정대집행으로 습지불법매립을 원상복구했고 시민들은 습지의 복원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인천 습지에서 안전하게 살고 싶어요’
2008년 11월 30일, 강화도 장흥리 논배미에 10여명의 청소년들이 모였다. 이들의 손에는 송도북측수로 외암도 인근과 남동유수지에서 구조한 새들이 들려있었다. 이날 청둥오리, 고방오리, 넓적부리 5마리가 건강한 모습으로 자연으로 돌아갔다. 2008년 가을에만 이곳에서 최소 4천마리 새가 죽었다. 감염경로가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보튤리즘균과 살모넬라균에 의한 것으로 잠정결론을 내렸다. 2008년 송도북측수로와 남동유수지의 철새 집단폐사는 10년 후 2018년 인천야생생물구조관리센터가 건립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저어새가 남동유수지 인공섬에서 둥지를 틀고 있는 것 같아요”
2009년 4월 22일, 다소 들뜬 말투의 한 통 전화가 인천녹색연합으로 걸려왔다. 전세계적인 멸종위기야생조류인 저어새가 남동유수지 인공섬에 둥지를 튼 것이다. 중앙방송 등 언론에서는 앞다투어 저어새 번식을 보도했고 인천과 대한민국을 넘어 전세계 조류학자들의 이목이 남동유수지 인공섬으로 쏠렸다. 2009년 저어새들은 이 인공섬에 7개의 둥지를 틀었고 4개의 둥지에서 6마리가 무사히 자라 둥지를 떠났다. 짝짓기하고, 알을 품고, 아기저어새를 키우는 모든 과정은 시민들에 의해 관찰되고 기록되었다. 이후에도 ‘저어새섬’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 인천시는 2009년 12월 31일 송도11공구 갯벌매립면적을 절반가량 줄이고 남는 갯벌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
2019년 7월 27일에는 숭어 150여 마리가 하얗게 떠올랐다. 이후 며칠 동안 송도북측수로에서 수백마리가 더 죽었다. 2017년에도 백여마리의 숭어가 죽었었다. 인천보건환경연구원이 물과 숭어 사체를 분석했지만 유해물질은 검출되지 않았다. 인천경제청은 수로의 수량이 줄어든 상태에서 많은 비가 내려 수로로 갑자기 많은 양의 민물이 유입되면서 염분농도가 낮아지고 용존산소량이 줄어들면서 숭어가 집단폐사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송도 북측 수로는 갯벌을 매립해 만들어진 인공수로이고 인근에는 남동국가산업단지가 있고 승기하수종말처리장이 있다. 여전히 불안정한 생태계이고 오염원 또한 건재하다.
2019년 4월 8일, 인천시는 남동공단 앞 해안철책을 대대적으로 걷어냈다. 해안도로를 따라 2미터가 넘는 제방이, 또 다시 그 위로 철조망이 있었다. 철조망이 제거한 지역 일부에는 습지보호지역을 보호하는 팬스가 생겼고 송도갯벌을 관찰할 수 있는 구멍이 새로 뚫렸다. 보호지역 팬스 너머 갯벌에 서식하는 흰발농게를 관찰하기 위해서 아직은 까치발을 해야 한다. 토목공사의 여파로 아직 흙과 모래턱이 있는 제방 아래에는 염생식물과 흰발농게들이 송도갯벌의 다양성을 고군분투하고 있다. 제방을 따라 아직 남아 있는 군 초소가 생태관찰전망대로 사용하는 장면을 상상한다.
남동유수지가 시작되는 곳에 V자 모양의 다리가 보인다. 바이오산업교라 이름 붙은 다리이다. 이곳에서부터 송도 북측의 수로는 ‘북측유수지’이다. 북서쪽 방향으로 4킬로미터 넘게 이어지는 긴 유수지이다. 양 끝은 갑문으로 막혀 있다. 지금은 흔적만 남은 외암도에서 아암도까지 ‘인천 원도심’에서 ‘송도국제도시’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유수지 위 3개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 송도국제교, 컨벤시아교, 아트센터교.
갈대, 억새, 수크령, 망초, 아카시아, 강아지풀, 족제비싸리,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외래식물들이 사람 키가 훌쩍 넘는 갈대와 듬성듬성 버짐이 피듯 붉은 염생식물 사이사이에 자란다. 갑문으로 일정 수심을 유지하는 유수지의 둔치는 더 이상 갯벌이 아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지만 수질개선, 생태복원을 위한 해수유통은 쉽지 않다.
송도국제교를 지나자 어떤 곳은 풀이 무성하고 어떤 곳에는 흙더미가 쌓여 있다. 유수지 둔치 곳곳이 파헤쳐졌다. ‘슬라럼, 나무웨이브, 통나무가로, 캡점프, 외나무다리, 더블점프, 데크로드, 뱅크 등’ 의욕적으로 만들었던 도심형 MTB 코스는 파크골프장으로 바뀌고 있다. 송도MTB파크는 ‘국민 누구나 생활체육을 통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국민체육진흥기금을 지원받아 건립한 시설’이었다.
아암대로는 인천대교로 연결된다. 유수지 내 인천대교 다리 기둥은 재미있는 장식품을 달고 있다. 어떤 다리에는 수십 마리의 새들이, 어떤 다리에는 물고기들이, 또 어떤 다리에서는 조개와 불가사리, 고둥들이 붙어있다. 원래 이곳은 새와 물고기, 조개들의 땅이었음을 기록하고 싶었던 걸까? 다리 밑으로 얼마 못 가서 갑문이다. 좁은 길 양쪽으로 주박차한 대형 트럭들 사이로 저만치 아암도가 보인다.
2020년 12월 29일자 인천in에 게재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