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생명의 이동권

2017년 4월 17일 | 양서류

4년 전, 계양산 두꺼비 집단산란지에서 겨울잠에서 깨어난 두꺼비가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제방에 가로막혀 산란지로 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다.

도로 보도턱을 넘지 못해 아스팔트 위에서 고군분투하는 산개구리도 보았다. 또 어느 봄날, 높다란 다리로 하늘길이 막힌 새들이 방향을 틀어 날개짓 하는 것을 보았다. 4대강에 건설된 보와 댐으로 인한 물고기 떼죽음 보도도 계속되고 있다.

인천지역 산에서 종종 40~50㎝ 높이의 혹은 사람 키를 훌쩍 넘는 구조물을 보게 된다. 이 구조물은 흙이나 나무 등 산림이 바람과 비에 씻겨 무너져 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사방사업의 일환으로 설치된 것이다. 2015년~2016년 사방공사지역은 42개소, 총 26㎞에 달하며, 올해 역시 12개소, 총 5㎞에 달하는 사방사업이 실시될 예정이다.

20㎝가 채 되지 않는 보도턱을 넘지 못하고 숨을 헐떡거렸던 산개구리를 떠올려보면 사방사업으로 인한 구조물이 양서류 생존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정밀조사를 진행하진 않아 원인을 단정 짓긴 어렵지만, 2014년 시공된 계양산 사방사업지역에서 3년 연속 양서류 떼죽음이 발생하고 있다.

인천 하천의 하구를 막고 있는 시설물과 하천 곳곳에 위치한 23개의 보는, 봄철이 되면 산란을 위해 바다에서 강으로 거슬러 올라오는 웅어, 숭어 등 기수성 어류의 이동을 방해하고, 하천 내에서 어류의 자유로운 이동을 제약한다. 경인아라뱃길 건설로 인해 생겨난 귤현보와 농업용으로 사용 중인 몇 개의 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 용도조차 알 수 없다.

멸종위기 조류의 중간기착지, 산란지로써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인천의 바다와 갯벌을 메워 만들어진 송도, 청라, 영종에는 건축물이 들어서고 있다. 준설이 완료된 제1영종도준설토투기장 개발계획에는 골프장, 상업시설 등도 포함되었다. 갯벌을 매립해 세워진 즐비한 건축물은 새들에겐 피해야 할 장벽일 뿐이다.

도롱뇽과 두꺼비가, 웅어와 숭어가, 저어새와 알락꼬리마도요가 존재하는 한 이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것은 마땅하다. 사방공사가 꼭 필요한 지역이라면 양서류 이동을 고려한 구조로 설계하고 사전사후 조사를 통해 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천 하천 곳곳에 위치한 보 기능 확인과 조사를 통해 불필요한 보는 철거하는 등 수생태계 보전을 위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갯벌매립은 더 이상 허용하지 말고, 이미 매립된 곳에 대해서는 생명의 이동권 배려가 필요하다.

도시에서도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휠체어장애인, 노약자, 유모차는 작은 턱 오르내리는 것도 쉽지 않은데, 지하계단을 이용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저상버스 확보도 미비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보행약자의 속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 나에게는 별것 아닌 턱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크나큰 장벽이고, 나에겐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길이 누군가에게는 생존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이제 사회적, 환경적 약자의 입장에서 도시를 설계하고 길을 만들어야 한다. 이동권은 생존권이기 때문이다. 생명이라는 그 이유만으로 이동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 박주희 인천녹색연합 사무처장 /  이 글은 4월13일 경기일보에 실린 기고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