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은 한 달 여 전에 다녀가고 두 번째이다. 따뜻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렘이 나를 부추기고, 일상의 동지인 녹색연합 퐁당의 새만금에 대한 애절한 비통함이 나를 부추겼다. 잊고 있던 새만금의 바람소리, 바닷소리가, 법원 판결이 나던 새벽 막막한 이 사회의 악마 같은 파괴와 개발과 자본의 위력이 나를 재촉했다. “만금이가 내게 준 것” -새만금, 그 ‘절실함’을 만나고… 생명을 위한 저항에 함께 하는 우리 [img:IMG_8524.JPG,align=right,width=200,height=275,vspace=6,hspace=6,border=1] 이른 새벽부터 인천 녹색연합 앞에서 사람들은 약속 시간에 거의 맞춰서 오순도순 모여 있었다. 4살 된 어린 아이부터 아이의 어머니 아버지까지 모여 시끌벅적하게 새만금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과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바다와 새를 함께 보는 것을, ‘저항’에 대한 목소리를 함께 한다는 것은 단순한 물리적인 공존, 그 이상의 느낌이었다. 4시간여를 지나 부안에 도착하여 정말 맛있는 바지락 죽을 먹고, 지난 새만금에 왔을 때 보았던 새만금 장승들이 있는 해창갯벌에 도착했다. 갯벌에 바람은 세차게 불었다. 바람이 세상을 뒤 엎어야 후회라는 것을 할 것인가. 해창갯벌에서 불어오는 힘찬 바람소리가 인간을 혼내는 자연의 목소리 같았다. 불고 불어오는 바람이 세상을 뒤 엎어야 후회라는 것을 할 것인가. 후회란 것을 할 수는 있는 존재인가. 서울녹색연합 간사님의 전반적인 새만금과 관련된 논쟁의 쟁점과, 새만금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갯벌의 생명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이 곳이 삶의 터전인 어부들의 빈곤과 어떻게 직결되어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다. 해창갯벌에서 아이들과 새 모양의 조각을 위에 달은 대나무도 심고 밀려오는 공사의 현장의 느껴지는 조약돌 들 사이로 조개도 보았다. 뱃놀이를 부르며… 배는 다시 바다로 [img:IMG_8532.JPG,align=left,width=275,height=200,vspace=6,hspace=6,border=1] 해창갯벌을 돌아보고 새만금 전시회장 앞에서 펼쳐진 대대적인 집회를 찾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수 백 명의 사람들이 벌써 자리해 있었다. 다양한 단체와 개인들이 모여 무대를 보며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고 새만금을 지켜야 하는 이유, 절망하지만 희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말하고 또 말했다. 그 곳에서 그 많은 사람들은 함께 울부짖었다. 그 투박한 쇠 끈으로 묶은 바위 덩어리에 짓눌릴 ‘존재’들 때문에 울부짖고,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어부들의 잃어버릴 ‘공간’에 함께 울부짖고, 희망 없이 치닫는 파괴의 사회에서 희망 없이 개발을 말하는 사람들의 ‘무지’에 울부짖었다. 뱃노래를 부르며 배는 바다로 가야 한다고 울부짖었다. 공사를 하기 위한 트럭사이로, 그 많던 전경들 사이로 배를 들어갈 수 있게 함께 밀었다. 다시 태어난 건 ‘나’ 집회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만금이가 내게 준 것은 절망스런 이 사회에 대한 애통함 만은 아니었다. 애통과 절망에 함몰될 때 희망은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언제까지 답답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던 집회 속 풍경에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함께 하는 경험이 갖는, ‘공존’의 의미를 느꼈을 것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살아야 그것이 진짜 ‘사는 것’임을. 처음으로 자연과 삶과 인간의 의미를 알려주었던 만금이와의 만남 속에서 내가 만금이를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다시 태어난 것은 ‘나’일지 모른다 가톨릭대여성주의소모임딸세포 희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