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가 이사하는 소리가 들려요.

2006년 9월 8일 | 섬•해양

[img:IMG_09241.jpg,align=right,width=207,height=162,vspace=5,hspace=10,border=1]20년 동안 그리고 신도시 열풍이 불었던 90년대를 기점으로 대이작도 인근지역은 바다모래채취로 몸살을 앓았고 2005년 1월 18일, 주민들의 노력으로 옹진군은 채취 중단과 휴식년제를 실시하였다. 아래의 글은 대이작도의 초등학생 눈으로 본 대이작도의 주민과 자연의 변화를 담을 글이다. “애들아. 해변으로 나가서 현장학습을 하자.” “우와! 신난다!” 선생님의 말씀에 우리들은 신이 나서 호미도 챙기고, 돋보기와 시험관, 물조리, 그물망을 찾아 선생님보고 먼저 학교 바로 앞에 잇는 바닷가로 뛰어 내려갔다. 오늘은 바닷물의 작용에 대하여 공부를 하러 가는 것이다. 섬에서 사는 우리들은 바닷물의 작용에 대하여 공부를 하는 것은 문제없이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부보다는 먼저 바지락을 캐고 고동을 줍는 데 열중해서 정신없이 갯벌을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팠다. 그렇지만 조개들은 가끔 한개 씩만 발견할 수 있었고 속이 빈껍데기들만 많았다. “에이, 힘만 들고 잡히는 것은 별로 없잖아.” 혼자 중얼거리며 선생님께로 달려갔다. 올해는 조개들이 많이 죽은 것 같다. [img:DSCN0200.jpg,align=,width=550,height=412,vspace=5,hspace=10,border=0]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공부에 관심이 없는 우리들을 그냥 보고만 계시며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선생님께서 화가 나신 것 같아 슬그머니 선생님 곁으로 가서 잡은 조개를 보여 드렸다. 그렇지만 내가 잡은 조개는 몇 개 되지 않았다. 쑥스러워서 난 혀만 낼름 내밀고, “선생님 오셨다. 선생님 오셨다!”   하고 아이들은 향해 냅다 소리쳤다. “모두 모여 공부해야지.” 하시며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을 부르셨다. “여기 이 모래등성을 좀 보아라. 여기에 이 만큼 쌓여있던 많은 모래들은 어디로 갔을까?” 하시며 바닷가 안쪽에 쓸려 나간 모래언덕을 가리키셨다. 우리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 보고 암 말도 하지 못했다.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난 깜짝 놀랐다. 분명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키보다도 많이 쌓여 있던 하얀 모래언덕이 없어지고 있었다. “해변에 가득 쌓여 있던 모래들은 어디로 갔나?“ 학교 앞 해변에는 고운 모래로 가득한 해수욕장이 있었는데 어느새 보기 흉하게 시커먼 바위들이 갯벌위로 여기저기 불쑥불쑥 솟아나와 있었다. “아! 모래들이 모두 이사를 했구나! 이렇게 넓은 해수욕장을 만들었던 모래들이 언제 어디로 갔을까?” “바닷물이 삼켜버렸나? 바닷물은 항상 하루에 두 번씩 나갔다가 들어오는데 나갈 때 모래만 데려가고 들어올 때는 가져오지 않은 것일까?” 그래서 6월엔 KBS TV “떴다 우리 동네촬영”과 “내 마음의 여행” 촬영을 우리 학교를 중심으로 했다. PD 아저씨와 촬영 팀 아저씨들 그리고 작가 언니들과 풀등에 촬영을 하러 갔었는데 예전보다 큰 소라나 조개들이 많이 잡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들은 아주 재미있게 모래섬 위를 뛰어다니며 촬영을 했다. 6월 11일과 18일에 방송된 TV에 나오는 우리들은 너무 신이 나고 즐거웠다. 선생님께서는 녹화를 해서 여러 번 보여 주셨다. 작년에는 MBC TV와 SBS TV에 우리 섬이 소개 된 적이 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아름다운 해수욕장에 모래가 많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img:DSCN0151.jpg,align=,width=550,height=412,vspace=5,hspace=10,border=0] 모래가 이사하는 것 때문에 이작도가 텔레비전에 많이 나왔다. 좀 쑥스럽다. 모래가 이사를 가서 풀등에 낙타 등처럼 쌓여있던 모래가 지금 평평하게 되었다. 그래서 모래가 이사 갈 때 풀등에 살던 많은 골뱅이, 조개 등 이런 것들이 같이 이사를 간다. 그래서 오늘도 배를 타고 풀등에서 조개와 골뱅이를 잡는데 하나도 없어서 그냥 왔다. 모래가 이사를 가면 이런 경우도 잇는 것이다. 그래서 모래는 절대로 이사 가면 안된다. 어저께 밤이였다. 바닷가에서 “샤르르륵 샤르르륵” 조용한 소리와 함께 모래는 파도의 도움을 통해 나 몰래 이사를 갔다. 아빠께서는 그 소리에 귀가 번쩍 뜨셔서 새벽3시부터 잠을 안 주무시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가만히 누워만 계셨다. 이제부터는 모래를 퍼가는 사람들도 이제는 좀 포기 좀 했으면 좋겠다. 우리 아빠께서도 모래 채취 때문에 속상하셔서 프랜카드를 만들어 객선부두나 학교 담장에 걸어놓으시고 화를 잔뜩 내신 적도 있다. 우리 마을 사람들도 모래가 이사를 가는 것 때문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해서 대책위를 만들어 밤낮없이 섬을 지키신다. “해사 대책위 사람들이 늘으면 모래가 이사를 안 갈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어젯밤 모래를 퍼가는 소리가 들려서 집 앞 해수욕장으로 나가보았더니 아주 큰 빨대로 모래를 빨아 드리고 있었다. 모래는 벌써 짐을 다 싸고 배에 타있었다. “저 모래는 다시는 못 보는 걸까?” 좀 헤어지기가 아쉬웠다. 요새는 모래가 쓸려나가지 말라고 대나무로 칸을 만들어 놨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효과가 조금 있는 거 같다. 매일매일 밤이 되면 모래가 이사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들을 때 마다 아빠께서는 망원경으로 다 훌터 보신다. 아빠께서는 어떤 때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다. “가람아, 모래는 어디로 이사 가는 줄 아니?” “모르겠어요” 아빠께서는 나에게 조용히 물으시며 어디로 이사 가는지 알려주셨다. “저 모래들은 집을 만들거나 우리처럼 길을 포장할 때 쓰인단다. 모래가 쓸려 내려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모래를 사람들이 퍼가거나 이런 것 들은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아니야.” 아빠는 모래 지킴이처럼 말씀하셨다. 나는 모래 한 톨 한 톨이 주고 싶지 않다. 그것은 아빠께서도 아마 그러실 것이다. 우리 마을 분들 중에 어떤 분은 모래를 퍼가는 대신 돈을 받자. 뭐 이러시지만 내 생각에는 환경보호가 우선이니까 나는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모래를 한 톨 한 톨 필요한데만 쓰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그렇다면 왜?” 곰곰이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선생님께서는 각자 모두 탐구해서 다음시간에 발표해 보자고 하시며 우리들을 데리고 교실로 들어오셨다. [img:DSCN0210.jpg,align=,width=550,height=412,vspace=5,hspace=10,border=0] 아버지께서는 오늘 늦게까지 집에 돌아오시지 않으셨다. 요즈음은 매일 마을 회관에서 이장님과 무슨 회의만 하시며 집에 늦게 까지 들어오시지 않으신다. 아마 마을에 중요한 대책회의가 있으신가 보다. 항상 마을에 중요한 일이 생기면 학교 앞 마을 회관에서 동네분들이 모여 회의를 하신다. 그럴 때는 종종 나를 교실에 남아 기다리라고 하시고 밤늦게 까지 회의를 하실 때도 여러 번 있었다. 아버지께서 늦게 돌아오시면 나는 학교 갈 걱정을 먼저 한다. 왜냐하면 내가 살고 있는 계남리엔 학교가 폐교가 되어 아버지께서 매일 트럭으로 태워다 주시고 데려가고 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늦게 집에 돌아오시면   “내일 학교는 어떻게 가야 하나?” 하고 걱정만 하다 잠을 잔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께 운전을 배워 보려고 애쓰시지만 트럭운전을 하려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 어머니께서는 속상하셔서 아버지께 제발 일찍 돌아오셔서 애 학교에 보내는데 신경 좀 써 달라고 다투신다. 난 이럴 땐 얼른 잠자는 척하고 부모님께서 싸우시는 소리를 듣는다. 아버지께서는 민박을 하는 우리 집 앞 해수욕장에다 대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모래언덕에 쭉 둘러 쳐 놓으시고 매일 나가 보신다. 아버지께서는 모래와 힘겨루기를 하시는 것 같다. 그렇게 한다고 모래가 바닷물에 쓸려 내려 내려가지 않는다면 우리 아빠는 모래들의 이사를 막아내시는 것이다. 그래서 할아버지들은 모래가 쓸려 내려가는 것을 보시고서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시는지 “가람아배, 괜찮아 꼭 할 수 있어.” 하며 아빠께 믿음을 주셨다. 이런 아버지께서는 밤에는 혹시 모래채취를 해가는 배가 나타나지나 않나 해서 망원경을 가지고 마을 어른들과 바다 위를 지켜보신다. 어떤 때는 밤에 배를 타고 나가tu서 바다를 지키고 새벽에도 들어오신다. 풍경이 아름다운 대이작도. 해수욕장이 4곳이나 있는 내가 살고 있는 대이작도는 인천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이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섬에 가장 큰 자랑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해수욕장과 하루에 두 번 물이 나갈 때만 볼 수 있는 넓은 모래섬이다. 이 모래섬은 자전거도 탈 수 있는 단단한 넓은 모래섬이다. 이곳엔 손으로 주울 수 있는 많은 조개들과 커다란 소라 또 물고기 들이 많이 살고 있다. 예전에는 100만평이 넘는 모래섬이었으나 이제는 30만평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아파트를 짓거나 도로 포장을 하느라고 이곳의 모래를 모래채취회사에서 배를 대고 모두 퍼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 5월에는 커다란 배로 해양수산부에서 우리 섬을 조사하러 오셨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모래섬 풀등을 조사하러 많은 소님들이 오셨을 때, 손님들과 아버지와 마을 어른들은 밤늦게 까지 마을 회관에서는 회의를 하셨다. 그래서 이곳 이작도는 자연생태보존지역으로 지정이 되었다. 해양자원으로 지정된 풀등과 이작도 둘레의 바다는 우리 섬의 가정 큰 자랑거리가 되었다. 인천남부초등학교 이작분교 삼학년 부아반 김 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