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산 나무 위 일기: 19일째-30일째

2006년 11월 28일 | 한남정맥•공원녹지

꿈을 꿨다. 걷어두었던 천막이 다시 처지는 꿈. 지난밤 일기예보에서 비가 올리라는 말에 내일 천막을 처야겠다는 생각하며 잠들었는데…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던 날 밤에 쳐놓았던 천막은 햇볕을 가려 불편하다. 11월13일(월) “19일째” 허나, 다시 비가온다니… 아침에 눈을 뜨니 역시 꿈은 꿈이다. 다시 천막을 씌웠다. 이젠 비가와도 안심이다. 11월14일(화) “20일째” 또 비가온다. 밖의 생활이 길어지니 날씨에 민감해진다. 비, 바람, 어둠…. 각각 다 나름의 매력은 있겠지만 한꺼번에 나타나지는 말아라… 제발… *나를 즐겁게 해주는 문자메세지 -요즘 커다란 새 한마리가 커다란 집을 짓고 살고있다고 계양산 산새들이 모일때만다 재잘대겠죠? -무슨새가 이렇게 크냐 헉. 우리들의 왕이 되려고 하겠구나 헉. 근데 말이 안통해 어떠나라에서 왔지? 새들은 날 친구로 여길까? 11월16일(목) “22일째” 조곤조곤 살가운 부분와의 즐거운 수다. 오랜만에 아랫동네 사람과 늦은 저녁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날이 추워지고 밤이 깊어지고 시위도 길어져 익숙해진 탓에 아랫동네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많이 줄었었는데…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고마워라~~ 이쁜 부부!! 바른생활 윤기돈, 똘똘이 정명히 ^_^ 11월17일(금) “23일째” 날이 갈수록 머릿속이 비어진다. 고민도 적어지는 것 같고… 이것은 직무 유기다. 점점 나중심이 되어간다. 내가 원하는 것으로, 내가 할수있는 것으로… *오늘의 글 이지누 샘터 사람의 손길이 닿았음에도 자연과 모나지 않는다는 것은 몹시 중요한 것이겠지요. 그것은 사람이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것과 같습니다. 한번쯤 눈 여겨 보셨는지요. 우리의 대문은 안으로 열리고 서양식 건물들은 현관문이 밖으로 열린다는 것을 말입니다. 받아들이는 자세와 나아가려는 생각인 것이지요. 그 생각은 자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겠지요. 그러나 자연을 그대로 두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은 그 안에서 사람이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세계에 자연이 마실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자연의 세계를 잠시 빌려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뿐임에도 사람들은 그 일을 망각하기 일쑤입니다. 그 탓에 사람들이 자꾸만 자연을 자기들에게 맛게 부수어 잘라내곤 하는 것은 아닌지요. 11월 18일(토) “24일째” 30일 심의에 계양산롯데골프장 개발 건이 들어있는 개발제한구역과 관련된 내용을 배제한다고 들었다. 적어도 12월 중순까지는 이 생활이 지속될 것 같다. 부모님께는 차마 말씀을 못 드리겠다. 오늘저녁에 엄마가 오신다는 전화를 받았다. 어찌해야하나…. 11월 19일(일) “25일째” 늘 상 혼자지내는 1.5평 공간에 참 많은 사람들이 오르락내리락했던 날이다. 지난밤을 함께 보낸 윤지선과 촬영을 위해 올라온 MBC 화재집중의 PD, 주영이 용미 퐁당까지… 아! 사람과 산 사진기자님까지. 늘 상 아래로 내려다 봐야만 만날 수 있었던 그들과 눈을 마주치며 만난 것은 반갑고 즐거웠으나 참 정신없는 하루였음에는 틀림없다. 다들 나를 생각하고 올라오는 것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이곳으로 다른 사람이 올라오는 일은 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시간대에 여러 사람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인다는 것은 나무 위 1일시위의 의미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더라도 잘 견디겠습니다. 11월 20일(월) “26일째” 오랜 환경운동가 선배로부터 금식해볼 것을 권유받았다. 이곳 생활을 통해 습관화된 일상을 지우고 맑은 정신으로 나 자신과 세상을 밝힐 수 있도록….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난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운동을 하고 싶다. 나무위에서 홀로지내며 음식을 거부하고 명상을 하며 자연과 생명을 생각하고 내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는 것도 좋지만 언제까지 될지도(예측이 없는) 나무 위 생활 속에서 금식기간이 길어질 경우, 화제꺼리가 되어버리는 결과를 만들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금식, 아직은 잘 모르겠다. 허나 금주나 절식, 채식위주의 식사를 하도록 하겠다. 원래 육식을 즐겨하지 않았는데 올라온 뒤 나의 몸을 열려하는 많은 회원 분들이 챙겨주신 보양식들을 먹으며 몸과 마음이 불편했다. 육수냄새를 풍길 때면 이곳의 주인인 새들과 짐승도 냄새를 맡을텐데하는 생각과 왠지모를 미안한 마음이 든다. 몸에서도 잘 안받는것 같고… 평소 먹지 않은 음식들을 최근에 너무 많이 먹었다. *바라는 말씀 나무위에 올라있으며 음식투정하는게 죄송합니다만, 점심, 저녁을 챙겨주시는 회원님들…. 특별한 음식보다는 집에서 드시는 음식으로 챙겨주세요. 그냥 국, 밥이 저는 최고로 좋아요. ^^ 반찬도 한 두가지면 되요~~ 11월21일(화) “27일째” 멋진 운동기구가 생겼다. 스텝퍼와 같은 운동기구로 제자리에서 걷기 연습을 도와주는 기구다. 소모임 녹색친구들의 부회장님인 재용선배님께서 딸과 부인이 쓰는 운동기구를 시위하는 후배를 위해서 힘들게 지고 오셨다. 기천이나 요가로 몸을 풀고는 있지만 하체 운동부족하다보니 무릎에도 슬슬 무리가 오고 있었는데… 하루에 2시간씩 그 이상을 하라며 놓고 가신 선배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운동해서 내려간 뒤 무리 없이 바로 산행에 쫒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께요. 내 몸을 염려해주시고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함께 있기에 건강히 긍정적으로 보낼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나의 이곳 생활이 과한 것은 아닌지 고민이 든다. 난 시위중인데… 11월15일(수) “ 21일째” 정호승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은 옳지않다. 폭풍을 두려워하며 폭충을 바라보는 일은 더욱 옳지않다. 스스로 폭풍이 되어 머리를 풀고 하늘을 뒤흔드는 저 한그루 나무를 보라 스스로 폭풍이 되어 폭풍속으로 날으는 저 한마리 새를 보라 은사시 나뭇잎 사이로 폭충이 휘몰아치는 밤이 깊어갈지라도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은 옳지않다. 폭풍이 지나간 들녘에 핀 한송이 꽃이 되기를 기다리는 일은 더욱 옳지않다. 11월22일(수) “28일째” 지난 일요일 용미에게 좋은 차를 선물로 받았다. 그 뒤 나에겐 하루 일과 중에 즐거운 시간이 새로 생겼다. 차마 시는 시간, 뜨거운 물에 잘 건조된 금국 2송이를 띄우면 은근한 향기를 내며 물을 점점 노랗게 물들인다. 잘 우려진 차를 한 모금 마시면 내 입속에도 국화향기가 한 가득이고 차가운 손과 몸을 서서히 따뜻하게 해준다. 연일 산자락 물안골, 가을녁이면 산자락은 노란빛으로 물들였던 노란 산국 꽃향기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11월 23일(목) “29일째” 계양산 롯데골프장 반대를 위한 삼보일배. 나도 동참하고자 나무위에서 함께 절을 했다. 비록 10시 30분부터 12시까지 1시간 반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동안 계양산 정신을 향해서 했던 절이지만. 한번한번 몸을 굽힐 때 마다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탁한 도심 한복판, 자동차 매연을 마시며 아스팔트에 엎드렸을 여러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죄송한 마음이 든다. 다음 주 목요일에는 5시까지 함께해야겠다. 그렇게 해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다.

한달 나무위시위가 어느새 한 달이 되었네요. 너무 오랜만에 글을 보내서 일기가 아닌 편지로 띄웁니다. 오랫동안 일기가 끊겨서 무슨일있나? 내려왔나? 하며 걱정하시는 분들도 많고 또 소식이 올라오길 기다리신 분들도 많을 거예요. 다행히도 아직 나무위에서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낮설은 공간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이 처음이라 그런지 여러 생각들이 오고갔는데 이곳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것도 같아요.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계양산롯데골프장 문제와 이곳에 골프장이 들어서면 안돼는 당위성이 제법 알려졌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외부와 단절되어서 여론이나 시청의 상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조금은 답답하기도 해요.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이 주변을 찾은 등산객들의 변화된 반응들(힘내세요라는 메세지를 보내거나, 음식을 나누어준다거나, 그냥 지나치지 않고 주변분들에게 열성적으로 말씀하시는 모습들 등)을 통해서 위로를 받습니다. 11월30일로 알려진 시 도시계획위원의 심의에 “개발제한구역”과 관련된 사안이 제외되어 12월 중순이나 혹은 그 이상 더 있어야 롯데골프장건설계획 여부를 알 수 있다는 말에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미뤄질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같이 움직였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생각해요. 아무쪼록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지치지 않고 잘 견디어 나갔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