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인천섬순례] – 넷째날 이야기

2007년 8월 9일 | 섬•해양

넷째 날 아침, 잠에서 깨어 경로당 밖으로 나와 보니 전날 밤 걷히기를 바랐던 안개가 오히려 더 짙어지고 있었다. 아직 배를 타기까지 시간이 있으니 좀 더 기다려보자며 모둠별로 아침식사를 했다. 그러나 아침식사를 하고 숙소정리를 다 할 때까지 덕적도를 에워싸고 있는 안개는 걷힐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 배를 탈 수 있을까?


배가 뜨는 데에는 거친 풍랑보다 더 무서운 것이 ‘안개’라고 한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덕적도에 하루 더 남아 표류(?)해야 할 것 인가. 아스라한 안개의 섬이 되어버린 덕적도에 남아 배가 뜨기만을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출발시간을 1시간 앞두고 진행팀에서는 덕적도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대이작도에서 소야도로 일정을 변경하기로 했다.


소야도는 덕적도에서 불과 500m밖에 떨어지지 않아 배로 이동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소야도에 도착해서 출발 준비를 하자마자 우릴 기다리는 것은 90도 경사라고 해도 무방한 매우 가파른 언덕! 근데 하루하루 순례의 일정이 지나갈수록 언덕을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뭇 다르다.

                      

가파른 언덕길 앞에서는 먼저 얼굴이 찌푸려지는 게 당연했고 언제 올라가려나 까마득하기만 했던 언덕이다. 허나 90도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다들 거침없이 올라가는 모습이란! 제일 뒤로 쳐져 가던 사람도 언덕을 오르며 옆 사람에게 미소를 날려주는 여유까지 잊지 않는다. 순례단은 마주하는 자연 그리고 두 발이 되어주는 자전거와 점점 하나가 되어 가고 있었다.


# 바다 속 신비한 산부인과, 모래풀등으로의 초대


폐교를 고쳐 근사한 휴양원으로 탈바꿈한 상록수 휴양원에 짐을 풀고 모래풀등으로 갈 채비를 마쳤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모래풀등. 모래풀등이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다들 그렇게 기대를 하고 있는 걸까? 모래풀치라고도 하고 모래풀등이라고도 하는 이 곳은 조수간만의 차이로 인해 하루에 두 번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거대한 모래섬이라고 한다.


약 30만평이나 되는 드넓은 모래섬이 바다 한 가운데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다니? 소야도에서 배를 탄지 40여분이 다 되어갈 쯤. 갑자기 저 멀리 푸른 바다의 수평선 위에 무지하게 긴 갈색 띠가 보이기 시작한다. 배를 타기 전, 직접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고 소리치던 한 순례단원은 희미하던 갈색 띠가 점점 가까워오면서 거대한 모래섬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자 환호성을 지르며 깜빡깜빡 눈을 감았다 다시 뜨기를 반복한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순례단이 타고 있던 배가 드디어 모래풀등에 닿았다. 사다리를 놓고 한 명씩 한 명씩 배에서 내려와 맨발로 모래를 밟아본다. 부드러운 모래의 감촉이 발끝에 닿자 몇 명은 어린아이처럼 바지를 걷어 부치고 바다 속에 뛰어들고, 또 다른 몇 명은 포장마차에서 보았던 골뱅이(큰구슬우렁이)를 잡았다며 친구들에게 소리친다.


몇몇 친구들이 1시간여를 걸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가보지 못했다고 하니 모래풀등의 규모는 생각한 것 보다 더 거대했다. 파도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물결무늬, 엎드려 살펴보면 귀엽게 걸어간 흔적을 남긴 작은 고둥들, 미안하지만 보기만 하면 소주 한 잔이 생각나던 큰구슬우렁이, 근사한 소라를 집으로 얻어 살아가고 있는 소라집게 등 우리가 마주친 것보다 많은 바다생물들이 이 모래섬에 알을 낳는다.

 

모래 속에서 부화된 치어들은 모래섬이 제공해주는 풍부한 먹이들로 인해 건강하게 성장해서 우리 앞에 지금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바닷모래는 그냥 우리가 육지에서의 시름을 잊고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곳만이 아니었다. 바다에 기대어 살아가는 무수한 생명들의 없어서는 안될 감춰진 산부인과이자 보육원이자 놀이터였다. 이런 중요한 곳이 또 인간의 욕심에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바다를 좀 더 알면 알수록 미안한 마음은 왜 더해만 가는지….


# 푸른 바다가 건네준 이야기

                   

마지막 날 밤, 추억을 그리며 앨범을 넘기듯 진행팀이 찍은 사진 속에서 지난 4일간의 여정을 다같이 떠올려 보았다. 우리를 숨 가쁘게 만들던 오르막길, 시원하게 내지르던 내리막길, 실미도 훈련을 연상시키듯 없는 힘 있는 힘 다 보태어 걸어갔던 흙탕물길, 울퉁불퉁 비포장길, 희뿌연 안개가 덮여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길….


순례단이 두 바퀴로 달려온 그 동안의 길의 모습은 우리의 성격과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매우 다양했다. 걷는 길의 모양새보다는 어떠한 길이든 그 길을 걷는 나의 마음과 자세가 중요하다. 이번 자전거순례를 통해 우리는 어떤 곳에서든 ‘더불어 함께’ 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았다. 내 옆에 바로 그 한 사람의 소중함을 알았고, 무심코 지나치던 꽃, 나무, 모래, 바다 등 자연이 제 자리에서 얼마나 큰 역할들을 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서로에게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점점 무르익어 가는 마지막 날 밤. 순례 기간동안 두 바퀴의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길을 달렸던 우리에게 저 푸른 바다가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순례단원 한 명 한 명의 소감을 나누며 주고받았던 관계의 실타래처럼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이 지구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어느 것 하나 혼자인 것은 없고 혼자서 살아갈 수도 없음을, 홀로 존재할 수 있다고 외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바다가 아니고 숲이 아니고 우리가 아니고 생명이 아님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글/사진  자전거섬순례 현장이야기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