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강정마을 구럼비는 보물

2011년 10월 5일 | 점박이물범

  ‘아빠, 아빠! 와~ 야호~~’ 소원이가 태어나서 책이 아닌 처음으로 만난 파도였다. 소원이의 연신 터지는 야호 소리는 수차례 반복됐다. 어떤 기분이었던 걸까? 아마도 소원이에겐 바위를 치며 밀려와 발에 닿는 시원한 바닷물이 낯설지만 설레고 기분 좋은 그런 경험이었던 같다.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에서 말이다.

  제주도 강정(江汀)마을은 제주도사람들이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흘러서 은어와 원앙이 노니는 강정천과 악근천, 그리고 전국에서 가장 많은 용천수가 솟아나고 있어 살기 좋다며 일강정(제일강정)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마을에는 세계에서도 보기 힘든 국내유일의 1.2km에 달하는 ‘한 덩어리로 된 용암바위’가 있는데 바로 구럼비다.

  구럼비는 단일 용암바위(단괴 또는 너럭바위)로서 3만 년 전 해저화산활동으로 인해 진흙층과 함께 융기해 올라 공기에 노출되지 않은 채 굳어진 현무암임에도 불구하고 표면이 거칠지 않고 매끄러운 형태를 지닌다. 이런 구럼비는 제주도 남쪽에 위치한 지귀도, 문섬, 섭섬, 범섬, 가파도, 마라도와 한라산 전경 또한 조망할 수 있어 경관1등급의 이유로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다. 아니 절대보전지역이었다.

  김태환 전 제주도지사는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하는 해군기지사업단의 요청을 받아드려 구럼비의 환경적 변화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의회에 구럼비 절대보전지역 해제 동의를 요청했다. 당시 한나라당이 다수였던 제주도의회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거센 항의를 철저히 무시한 채 전자투표기를 사용하지 않고 거수로만 날치기 해제시켰다.

  뿐만 아니라 해군은 해군기지 건설에 필요한 협의매수 부지가 50%가 되지 않자 강제매수를 위해 강정마을의 농로매각을 제주도에 요구한다. 이에 제주도는 주민들이 농로로 쓰기위해 자발적으로 토지를 내놓아 만든 농로를 포장 해준다며 주민들의 동의와 협의도 없이 기부체납 형태로 도유지로 만들어 놓고 그 농로를 해군에게 매각해 버렸다. 결국 풍림콘도 소유 토지, 외지인 지분, 도유지였던 농로 등 49%의 토지를 확보한 해군은 나머지 토지 51% 인 주민들 소유지 전량을 강제수용 했다.

  해군이 강제수용으로 해군기지 건설부지 확보를 끝내면서 구럼비는 인간이 배설해낸 쇳덩어리 중장비에 의해 파괴되기 시작하고, 강정마을은 마을의 슈퍼 두 곳 조차 찬⦁반으로 갈라져 이용할 만큼 공동체가 붕괴되어버린 비극에 치닫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백지화하지 못할망정 자주국방수호란 명분을 앞세워 오히려 해군을 옹호하고 경찰은 병력까지 동원해 지원사격을 하고 있다. 제주도를 세계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하자고 주창하면서 말이다.

  강점마을 구럼비는 해군의 모리배들과 간악한 위정자들에 의해 절대보전지역에서 해제되고 하루가 다르게 파괴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천연기념물 442호이자 세계유일의 연산호군락지가 형성되어 있는 유네스코지정 생물권보호지역이며 해양공원, 생태보호구역 등의 보호지역임에는 변함이 없다.

  구럼비 해양은 멸종위기야생동물 I급인 나팔고둥과 II급인 기수갈고둥, 금빛 나팔 산호, 진충산호, 해송, 흰수지맨드라미류의 서식지이고 고운 모래바닥이 형상되어 있어서 한치와 두족류 및 강정천, 악근천의 상징인 은어가 치어기를 보내는 소중한 장소이기도 하다. 돌고래가 노닐며 세계적 희귀종인 고래상어마저 출몰한다.

  구럼비 해상은 멸종위기야생동물 II급인 붉은발말똥게, 맹꽁이의 서식지이다. 바위 곳곳에서는 지하수가 솟아올라 흐르며 고인 곳이 많아 우리나라 유일의 바위습지지대이다. 또한 맑고 깨끗한 용천수 덕분에 생태계보전이 매우 우수하여 두루미와 따오기의 서식지이자 수많은 철새의 도래지이기도 하다.

  구럼비는 말 그대로 천혜의 생태보고이자 강정마을 주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터전 그자체이다. 이러한 구럼비를 파괴하여 환경을 해하고 주민들의 터전을 뺏으려 하는 것은 씻을 수 없는 만고의 대죄다. 때문에 그 어떠한 이유로라도, 그 어떠한 것과도 구럼비와 타협하거나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강정마을에서 수년째 힘든 싸움을 이끌고 있는 고권일 주민회장이 해군기지 공사방해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전 재판장에게 보낸 진술서를 보면 이러한 내용이 있다. ‘인간이 생명의 순환을 멋대로 손대어 망가뜨리는 권리를 누구에게 부여 받았습니까? 바다를 뒤덮는 매립공사의 권리를 누가 내주었습니까? 현행법이 그러한 권리를 부여했다고 해도 그 법이 인간이 만든 법인 이상 분명이 재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군과 이명박 정부는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다. 지금껏 그래왔듯 강정마을 주민들과 이웃생명이 구럼비에서 더불어 살아갈 때 제주도가 비로소 평화의 섬, 생명의 섬, 세계7대 자연경관의 섬으로 진정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소망한다. 해군기지 건설이 백지화되어 우리 딸 소원이가 내년에도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에서 파도를 맞으며 신나게 ‘야호’하고 외칠 수 있기를.

글, 사진 : 맹재흥(점박이물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