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호 대이작도 주민과 파랑기자단
대이작도에 도착하면 선착장 입구에서 섬마을 선생이라는 표지석이 섬을 찾는 사람들을 반긴다. 푸른 산과 깨끗한 공기는 박하사탕을 먹은 것 같은 상쾌한 느낌을 주고 섬을 둘러싼 파란 바다와 산이 어우러져 대이작도가 한층 더 푸르게 느껴진다. 지난번 취재 당시 안개로 인해 가지 못했던 대이작도. 다행히 이번에는 날씨가 쾌청해 대이작도를 찾을 수 있었다. 청소년인천섬바다기자단 ‘파랑’ 4기의 마지막 취재 여행이 대이작도에서 시작됐다. ▲대이작도 뒤로 펼쳐진 푸른바다 대이작도 선착장에서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해안가를 따라 목재 데크가 대이작도의 명물인 오형제 바위까지 이어져 있다. 그 길 중간에는 부아산 정상을 향하는 등산로가 이어져 있어 도보 산행을 위해 섬을 찾은 관광객들을 반긴다. 해안선을 둘러싼 목재 데크 끝에 다다르니 오형제 바위가 보인다. 고기 잡이를 나간 부모를 기다리다 망부석이 돼 버렸다는 다섯 형제의 전설이 담긴 바위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부모를 기다리는 지 바다를 향해 우뚝 솟아있었다. 데크에서 오형제 바위로 들어오는 길 중간에 이어진 등산로를 따라 부아산으로 올랐다. 쭉 뻗어진 등산로를 보니 끝이 없어보였지만 한 걸음 한 걸음 걷다보니 어느 덧 정상에 도착했다. 대이작도를 둘러싼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인근에 있는 소이작도가 눈 앞에 펼쳐지고 해안가로 밀려오는 파도의 하얀 거품이 장관을 이뤄 당장이라도 바다에 뛰어들고 싶었다. 사실 그동안 인천에서 바다라고 하면 월미도 인근에서 본 탁한 물빛이었지만 대이작도에서 바닷물은 바다색이 동해처럼 청아한 푸른빛을 띄고 있고, 바다 속에 있는 바위들이 보일만큼 물이 유리처럼 빛이 나 아름답다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최고령 암석과 풀등 대이작도를 찾아오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최고령암석.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암석이 자리하고 있는 대이작도는 한 마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땅인 셈이다. 25억1000만년. 공룡보다 더 오래 전에 이 땅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암석은 우리나라에 보고된 다른 기반암들이 약 19억년인 것을 감안하면 한참 형님뻘인 셈이다. 사실 최고령 암석이라 해서 웅장한 모습일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최고령 암석은 다양한 크기와 무늬를 띈 채로 한 눈에봐도 단단하게 느껴진다. 최고령 암석에 앉아 시원한 바다 바람을 맞아 바다를 보고 있다보니 멀리 대이작도의 명물 ‘풀등’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다 한 가운데 모래언덕이 나타나는 모습을 보니 물고기 꼬리 같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면적을 자랑하는 대이작도 풀등은 장봉도, 청산도 등 다른 섬의 풀등보다 면적이 크고 키조개와 새조개, 소라 등 많은 생명들을 품는 산란터이자 방파제 역할을 한다고 한다. 대이작도에서 운행하는 조그마한 배를 타고 풀등에 올라서보니 마치 바다 한 가운데 홀로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풀등이 줄어들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대이작도 풀등. 손꼽히는 자연경관인 이곳이 무분별한 해사 채취로 인해 자칫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30여년간 대이작도 주변 해변과 풀등 아래쪽 모래를 건설자재로 사용하겠다며 무분별하게 채취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파내도 끝이 없을 것 같던 모래는 사람들의 욕심에 의해 줄고 있고, 이곳 풀등의 크기도 예전과 같지 않을 만큼 줄어들고 있다. 썰물 때 낮과 저녁 하루에 두 번씩 모습을 보이고 완전히 펼쳐지면 대이작도의 넓이와 견줄 수도 있다는 풀등이 인간의 욕심으로 줄어들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추선희(영종국제물류고 2년)·김예림(인일여고 2년) ■ 인터뷰 / 김유호 대이작도 주민 “해사 채취로 생태계 위기 초래” 대이작도에는 무려 7대째 살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풀등에서 어업과 관광사업을 하며 살고 있는 김유호(49·사진 왼쪽)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젊은 시절, 잠시 섬을 떠나 살았지만 대이작도의 향수에 이끌려 다시 귀향했다. 김유호 씨의 주 생계수단은 어업과 관광사업이다. 이중에 눈 여겨 볼 것은 관광사업의 자원이다. 대이작도 작은 풀안 해수욕장에서 배를 타고 5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풀등을 가기 위해서는 그가 가진 배를 타야만 한다. 성수기 때에는 보름(7월 말부터 8월 초까지)동안 약 500명 정도가 방문할 정도라고 하니 그만큼 풀등이 가진 매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처음 그가 풀등을 향해 배를 운항하게 된 이유도 풀등이 보여주는 멋진 경관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순탄하게 배를 운항해왔던 것은 아니였다. 김씨는 ” 2012년 사람들이 유선을 통해 풀등에 갈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지만 허가 받는 기간만 8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바다에 잠기는 풀등은 배를 댈 수 있는 육지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허가는 그와 대이작도 주민들이 이뤄낸 노력의 성과였다. 이처럼 훌륭한 관광 산업을 운영하고 있는 그에게도 고민이 생겼다. 바로 풀등이 눈에 띄는 속도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예전에는 대이작도 해안에 서 있을 때는 풀등의 높이 때문에 건너편 바다가 보이질 않는데 요즘은 반대편도 물론이고 사방이 탁 트여 보인다”며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풀등이 사라져 버릴 것 같다”고 걱정했다. 무분별한 해사 채취로 인해 풀등이 사라지고 있는 것. 대이작도를 포함한 인천 앞바다 모래가 다른 지역에 비해 건축 재료로 품질이 좋은 탓에 해사 채취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풀등은 다양한 생물들의 산란지인데 이러한 풀등의 소멸은 생태계의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홍단비(영종국제물류고 2년)·정소현(인일여고 2년)·최인성(동산고 1년) 인천일보&인천녹색연합 공동기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