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파랑. 청소년의 끝에서 섬을 가다.

2015년 9월 4일 | 섬•해양

 
19, 파랑. 청소년의 끝에서 섬을 가다
.

글 서현지 (인첨섬바다기자단 ‘파랑’ 5기)   

바다의 파도소리가 그런 압박감을 씻어내듯 덜어주었던 것을 기억한다. 차갑게 출렁이는 바닷물이 위로하듯 내 발을 간질이던 것도.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 고등학교 3학년. 난 지금 섬에 와있다.

청소년 인천섬기자단 파랑을 봉사활동 시간이나 스펙 때문에 신청한 건 아니었다. 그저 바다를 보러 갈 수 있다는 그 하나의 이유로 기자단에 신청서를 냈다. 검은색이나 회색, 밝아봤자 흰색이었던 빛깔 없는 내 세상에 푸른빛을 얹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바다가 나를 부른 것일지도 모른다. 딱딱한 책상 앞, 딱딱한 의자에 딱딱한 펜으로 자신의 책상만 바라보며 살아왔다. 남들보다 더 좋게, 더 빨리 취업을 하려 열심히 공부했다. 압박감은 세월이 갈수록 늘어나고, 엄마의 얼굴 주름도 함께 늘어만 갔다. 그 무렵 찾아간 바다의 파도소리가 그런 압박감을 씻어내듯 덜어주었던 것을 기억한다. 차갑게 출렁이는 바닷물이 위로하듯 내 발을 간질이던 것도. 그리고 일 년 뒤, 바다가 다시 한 번 나를 부른 것이다. 파랑 기자단으로.

파랑기자단 활동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섬은 연평도다. 연평도는 포격 사건과 연평해전 같은 사건으로 사람들이 위험한 섬이라 생각한다. 물론 나도 그랬다. 그러나 직접 찾아가 본 연평도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런 섬이었다. 걸어가는 우리에게 트럭을 태워주는 아저씨가 있고, 뛰어 노는 아이들이 있는.

연평도에서 봤던 백로 서식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모래사장이 아닌 자갈로 이뤄져있는데, 동글동글한 자갈이 흰색이나 검정색 같은 색으로 이뤄져 있어 파란 바다의 색감과 무척 잘 어울렸다. 백로들은 뒤편 절벽 위에 고고하게 자리 잡고는 한쪽 다리를 접고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멋있는지 주변 갈매기들이 따라할 정도였다. 자갈과 푸른 바다, 하얀 백로. 이곳은 아마 신선과 바다 요정들이 모두 모여 함께 설계하고 만든 곳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망원경으로 백로를 보고 있는 후배에게 망원경을 건네받아 초점을 푸른 하늘로 맞췄다. 흰 백로가 내 망원경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평소 일상에서 내게 백로란, 500원짜리 동전 안에 있는 새였을 뿐이었는데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한 백로는 내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웠고 고고했다. 백로는 저 위에서 무엇을 보고 있을까? 선비처럼 저리 고고하게 있는데, 그럼 저들은 과거시험을 본 것일까? 아니면 수능을 봐서 성공한 사람들일까?

다시 망원경을 가져간 후배 덕분에 현실로 돌아왔다. 바다로부터 들려오는 파도소리는 그런 내 생각들을 모두 빼앗아갔다. 공부와 취업에 대한 부담감까지도. 그 뒤 섬에 있는 내내 그런 생각들이 소금이 물에 녹듯 사라진 것 같았다.

파랑기자단은 나의 고3인생에 있어서 가장 좋은 선택이자, 내 삶의 전환점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멀리, 수평선 너머 바다와 하늘 사이 경계의 전환점을 바라보며 생각을 가다듬는다. 앞으로만 달려왔던 압박감을 천천히 내려놓는다.

————————————————————————————————
서현지 님은 정석항공과학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다. 바다가 좋고 글쓰는 것이 좋아 청소년 인천섬기자단 파랑에 지원해 5기로 활동하고 있는데, 막상 기사라는 걸 써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아 고군분투하고 있다. 

※ 위 글은  8월 타오름달에 실린 글입니다. 
월간 는 녹색연합의 출판전문기구 (사)작은것이아름답다에서 펴내는 생태환경문화월간문화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