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퀴로 바라본 세상- 박지혜

2007년 7월 31일 | 기타캠페인

[제1회 ‘자전거로 떠나는 인천 섬 순례’ 후기]

두 바퀴로 바라본 세상

– 박지혜(인천 섬 자전거순례 참가자)

 

이번 순례를 위해 자전거를 새로 샀습니다. 아니, 내 생애 처음으로 자전거를 샀다고 볼 수 있지요. 그만큼 저는 자전거와 친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던 셈입니다. 그래도 자전거 하면 떠오르는 오롯한 추억이 있긴 해요. 어린 시절 이야기로 돌아가야 하는데요. 뒤에 짐을 실을 수 있는 널찍한 판자가 얹혀있는 화물자전거 아시죠? 노을이 지는 저녁이면 아빠는 우리 집 딸 셋을 자전거 뒤에 몽땅 태우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곤 하셨어요.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릅니다. 딸들이 소리를 지르고 좋아하니까, 가까운 길을 두고 더 멀찍이 돌고 돌았던 자전거를 타고 있던 아빠의 넓은 등이 저의 기억 속에 소중히 담겨 있네요. 그때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 머리카락을 쓸어주던 바람, 큰소리로 손을 흔들며 인사했던 마을사람들, 아빠의 묵묵한 사랑… 자전거 하면 즐겁게 기억되는 저의 추억들이랍니다. 

자전거 순례를 가기 전 사전모임 때, 들었던 <무의 페달을 밟으며>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시 구절 중 ‘텅 빔의 에너지가 자전거를 나아가게 한다. 나는 언제나 은륜의 텅 빈 중심을 닮고 싶었다.’라는 부분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시간에 쫓기고, 일에 끌려 다녔던 내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구절이었습니다. ‘텅 빔’이란 무엇일까, 텅 비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성되는 ‘에너지’란 어떤 것일까를 고민하며 순례에 임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순례를 떠났어요.

겁 없이 무슨 일이든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막상 새 자전거를 끌고 안전교육을 받는 날이 되자 두려운 마음도 생겼습니다. 하루만 빡세게 자전거를 타도 엉덩이가 아프고 근육이 쑤시는데 어떻게 4박 5일 동안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가파른 언덕길도 오르고 내려야하는데 잘 할 수 있을까 염려가 됐습니다. 그런 두려움도 잠시, 첫째 날 인천시청 앞에 모인 새로운 인연들과 노란 유니폼을 갖춰 입고, 설렘 가득한 얼굴을 마주하니, 앞으로 만들어 갈 시간에 대한 기대로 충만해졌습니다.

경찰차의 호위를 받으며, 안전요원들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도로 한가운데를 질러 자전거 순례단이 출발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4박 5일 동안 시화호, 영흥도, 덕적도, 소야도 구석구석을 자전거 바퀴로 꾹꾹 누르며 다녔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꼽으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모래풀등>을 꼽겠습니다. 모래풀등은 하루에 두 번 바다에 떠오르는 모래섬과 같은 것입니다. 원래 대이작도에서 출발했어야 했는데, 안개가 심한 날씨 때문에 소야도에서 배를 타고 모래풀등으로 갔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바다의 바닥이었던 곳을 우리가 밟고 선 것이었습니다. 모래는 물결의 굴곡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었고, 온갖 바다 생물들이 모래 위에 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깨끗한 모래사장을 거닐어도 쓰레기, 깨진 유리 한 조각 정도는 나오게 마련인데, 그곳은 아무도 왔다간 적이 없는 곳 같았습니다. 그래서 발로 밟기에도 참 미안한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곳이 <인천녹색연합>입니다. 순례 첫 날, 초록지렁이님이 ‘녹색연합의 음흉한 속내’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자전거를 미끼로(?) 인천지역 젊은이들에게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운동에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내셨지요. 굳이 그런 말씀이 없으셨다고 해도 섬 지역을 순례하며 자연 훼손의 심각성을 절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은 장소였던 모래풀등만 해도 과거에는 지금보다 훨씬 큰 규모였는데, 무분별한 모래채취로 인해 그 규모가 점점 축소되어 간다고 했습니다. 영흥화력발전소가 생겨난 이후 그 주변에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오염된 바다로 인해 생계마저 위협당한 섬 주민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육지로 떠났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로 분교, 폐교, 경로당에서 숙박을 했는데,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숙소 자체가 섬의 현실을 크게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섬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힘들었고, 나이든 어르신들만이 섬을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실들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화두로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처해 있는 입장과 상황에 따라 평화에 대한 해석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평화는, ‘모든 생명이 생명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답게, 나무는 나무답게, 갯벌은 갯벌답게, 물고기는 물고기답게, 강은 강답게, 바다는 바다답게 말입니다. 이번 자전거 섬 순례를 통해 생명이 생명답게 살지 못하고 사람들의 끝없는 욕망에 희생되어 가는 것들을 많이 보고 느꼈습니다. 눈앞의 이익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나또한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부끄러워졌습니다.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부와 권력을 가진 이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이용하고, 덜 먹고 덜 싸고, 햄버거를 먹지 않고, 소비를 줄이고, 세제를 쓰지 않고, 자전거를 이용하는 작은 변화가 나로부터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섬 순례를 하는 동안 자연을 통해 배운 것도 많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로부터 배운 것이 참 큽니다.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며 정상에 오르고, 함께 격려하며 다음 한 걸음을 준비해 가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생명은 혼자서는 결코 생명다울 수 없습니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생명다운 것입니다. 지구가 병들어 가는데도 귀와 눈을 닫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병의 원인을 찾아내어 조금이라도 치유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지구에 희망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참 좋아하는 시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함께 했던 한 사람 한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아름답게 꽃피우는 사람들이 되길 바라며.


나 하나 꽃이 되어
-조동화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 성은혜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8-29 2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