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와 송도
장정구 / 인천녹색연합 사무처장
2009년 11월 26일, 사막의 신화가 무너졌다. 중동 두바이가 모라토리엄(채무상환 유예)을 선언한 것이다. 세계 최고층 빌딩 ‘두바이 버즈’와 인공섬 ‘팜 주메이라’, 사막의 스키장 등 인간의 상상력과 기술력의 한계를 뛰어 넘었다는 찬사를 받으며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 개발의 성공모델로 꼽히던 두바이가 몰락한 것이다.
같은 시각, 인천 송도에서는 ‘저어새섬, 100일간의 기록’이라는 작지만 매우 소중한 보고서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이 보고서는 2009년 4월부터 7월까지 100일간 송도갯벌과 남동유수지에서 저어새가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워낸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전문가의 연구보고서가 아닌 시민들이 직접 저어새의 모든 성장과정을 관찰·기록한 세계 최초의 시민보고서로 저어새가 멸종되지 않고 아이들과 늘 함께 하길 바라는 시민들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광활한 사막에서 중동의 금융·관광허브를 꿈꿨던 두바이와 드넓은 갯벌 위에 동북아 IT, BT, R&D의 허브도시건설로 한국판 두바이라 불리길 원하는 송도. 전 세계의 타워크레인과 덤프트럭이 두바이에서 사막의 신화를 칭송할 때 대한민국의 타워크레인과 덤프트럭들은 송도갯벌에서 국토확장, 경제발전을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부동산 거품붕괴와 금융위기로 자금조달이 끊기면서 두바이는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외국자본유치, 지역경제발전의 목소리를 높이던 송도도 결국 중앙정부의 실패진단과 스스로의 낙제평가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국제도시, 경제자유구역 송도는 오간데 없고 수익성이 높은 오피스텔과 주상복합단지, 아파트만 빼곡하게 들어서고 있는 게 현실이다. 명품국제도시라는 환상으로 고분양가 아파트가 분양 즉시 팔리고, 오피스텔 분양에 수만명이 몰려 부상자까지 생기는 촌극을 더 이상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시민들은 송도를 콘크리트, 마천루의 회색도시가 아닌 이웃생명과 아이들이 함께 하는 생태도시를 꿈꾸고 있다. 그들은 모두 송도갯벌에서 아기저어새와 처음 눈맞춤했을 때의 전율과 경이로움을 기억하고 있다. 아파트와 공장, 냄새와 소음, 더 이상 열악할 수 없는 곳에서 저어새는 온몸으로 갯벌과 생명의 의미를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어새섬, 100일간의 기록’은 희망을 품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의 결과물로 저어새 뿐 아니라 송도갯벌의 생명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다.
우리 아이들은 송도에서 인천의 갯벌이 고향인, 이미 인천의 상징이 되어버린 멸종위기 저어새를 만났다. 망원경으로도 보기 어려워 사진이나 TV화면으로만 볼 수 있던 저어새와 친구가 된 것이다. 지금은 황무지를 갈아 엎어 새 역사를 만들자며 국민을 현혹하던 그 배고픈 시절이 아니다. 또한 분배와 환경보다 발전과 경제를 이야기하며 불도저와 포크레인을 앞세워 일방적으로 밀어 붙일 수도 없다. 송도가 벤치마킹하던 두바이는 우리에게 두바이발 쇼크라는 ‘전세계금융위기’와 ‘몰락은 과욕에서’ 시작된다는 동서고금의 교훈을 남겼다.
한 때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져 ‘국토확장, 서해안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간척·매립의 대상이던 갯벌이 이젠 오염물질 정화, 홍수 조절, 생물다양성 등 경제적, 환경적,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서해갯벌과 함께 세계 3대갯벌로 불리는 독일과 네덜란드의 바덴해가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전 세계는 앞다투어 갯벌보전에 나서고 있다. 송도는 지금도 세계적 멸종위기조류들의 번식지이고 호주와 시베리아를 오가는 수십만마리의 도요새들의 중간기착지이다.
아기저어새는 겨울을 나기 위해 따뜻한 남쪽으로 떠났다. 내년 봄, 첫 생일에 고향인 송도갯벌과 남동유수지에서 처음 사귄 친구들과 재회할 날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시민들도 기원하고 있다, 마지막 송도갯벌이 지켜지기를, 그래서 내년에도 먼 미래에도 우리 아이들이 저어새와 갯벌의 이웃생명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 이 글은 2009년 12월 1일, 인천신문 환경칼럼이다.